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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소설, 시

[올리버 트위스트 / 찰스 디킨스] 다시 읽기

by 릴라~ 2025. 1. 9.

30년이 넘는 세월을 훌쩍 건너 뛰어 디킨스 소설을 다시 읽었다. 중학생 때 왜 디킨스 소설이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그 이유를 이제 알겠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생생하게 몰입하게 되고, 영화 같은 장면 전환이 계속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탄탄한 서사, 선악이 뚜렷한 캐릭터, 감정적으로 울컥하게 만드는 해피엔딩까지, 대중소설의 모든 매력을 골고루 갖춘 소설이었다. 영국 여왕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할 정도였으니. 신문 연재로 발표된 소설이라 각 장이 더욱 긴박감 넘치고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것 같다. 디킨스는 25살 때 이 작품으로 큰 명성을 얻는다. 그 나이에 이 정도 필력이라니, 대단하다 싶다. 
 
 
1.
<올리버 트위스트>는 권선징악과 가족 찾기라는 모티프로 보면 한편으로는 세련된 신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신파로 치부할 수는 없다. 19세기 영국사회의 보육원과 빈곤층, 아동학대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정신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고아 올리버 트위스트는 구빈원에서 태어나 보육원을 거쳐 장의사 집에서 어린이 일꾼으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모욕에 집을 뛰쳐나가고 런던 소매치기 일당에 포섭되며 각종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내게 이 소설의 백미는 올리버가 태어나 자라난 구빈원과 그곳의 현실을 묘사한 초반 부분이다. 그가 겪은 아픔과 공포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듯이 생생하게 묘사하기에 독자들은 처음부터 올리버라는 소년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올리버가 페이건 일당에게 이용당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고, 구출되었을 때는 마냥 울컥했다. 소설 초반의 탄탄한 설정이 이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되며 후반부의 전개는 다소 통속적인 면이 있다.
 
2.
이 작품의 캐릭터들은 평면적인 성격이 강하다. 선과 악이 명확이 구분되고 숨겨진 의미나 복잡한 감정선이 없다. 아마도 그래서 중고생들이 읽기에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올리버를 구해주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영국 중산층의 윤리와 도덕, 신사도라고 할 만한 것들을 내면화하고 있으며, 페이긴 일당은 전형적인 악당의 모습을 보인다(유대인을 부정적으로 그린 건 당대의 편견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가장 안타깝게 다가갈 인물은 페이긴 일당에 속한 낸시일 것이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범죄에 가담하지만, 어린 아이들에 대한 동정심을 갖고 있어 올리버를 도와주고 그 때문에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구빈원 원장, 범블 씨였다. 그는 위선적인 인물의 전형이다. 빈자를 돕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깊이 경멸하며 자신의 이익만 챙긴다. 그의 '위선'이 너무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그려져 있어 작가에게 탄복하면서 읽었다. 올리버가 자기를 괴롭히는 또래에게 저항하자 범블은 너무 많이 먹여서 그렇다고, 힘이 없을 정도로 먹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이익을 챙기고 거짓말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이 없다. 구빈원 사람들에겐 최소한의 것을 제공하는 것이 그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라는 그릇된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범블 씨 캐릭터는 디킨스의 세련된 풍자가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3.
중학생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 이 소설을 읽으며 깊은 인상을 받은 점이 있다. 바로 19세기 영국사회에 대한 묘사다. 학생 때는 19세기가 어떤 시대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에 올리버 트위스트의 이야기가 단지 약간 먼 나라의 이야기나 동화처럼 다가왔던 것 같다. 지금 읽으니 산업혁명 초창기에 빈부격차가 얼마나 심했는지, 빈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당시 런던은 소매치기가 극성을 부렸고 강력범죄도 많아서 치안이 엉망이었다. 중산층 이상은 풍요롭고 따스한 인간미가 있는 삶을 누렸지만, 빈자들은 악취나는 환경에서 살아가며 범죄와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동전 몇 개를 훔쳐도 교수형에 처할 만큼 엄벌주의가 지배한 시대였지만 범죄는 줄어들지 않았다. 또한 아동노동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너무 많은 아이들이 가혹한 노동으로 시들어가고 있었다. 
 
4.
이 이야기는 올리버가 중산층 사회에 안정적으로 편입되면서 끝이 난다. 이러한 결말을 두고 계층 구조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올리버라는 아이가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환경이 필요하다. 아동 복지적인 측면에서 올리버에게 그런 가정이 필요하다는 의미 정도로 읽어도 좋으리라. 
 
<올리버 트위스트>는 캐릭터도 결말도 모두 분명하여 다층적인 의미를 가진 소설은 아니다. 작가가 생각하는 사회적 이상이 중산층의 모럴을 넘어서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가 그려낸 인물들은 모두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가 있다. 올리버가 처한 사회적 환경은 우리에게 깊은 슬픔을 주고, 올리버가 어떤 상황에서도 선을 택하려고 노력하는 장면은 인간의 의무를 상기시킨다. 
 
19세기 영국사회의 실상을 풍자적이고 세련된 필치로 그려내면서 우리로 하여금 그 시대로의 특별한 여행을 허락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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