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의 아침은 돈보스코 기숙학교에서 드리는 매일미사로 시작되었다. 수녀님들과 함께 툭툭을 타고 이른 아침 바람을 맞으며 한 15분 정도 달리면 살레시오회에서 운영하는 돈보스코 기숙학교가 나타난다. 누추한 거리를 지나다가 갑자기 유럽에 온 것 같다. 넓다란 정원이 주는 정갈한 느낌은 여느 수도원과 다르지 않았다. 성당은 학교 건물 안에 있었는데 바닥에 앉는 걸 제외하면 내부는 익숙한 모습이다. 미사는 캄보디아 출신 신부님께서 크메르어로 집전하셨다. 크메르어는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평을 듣는 말이다. 나는 외국어 발음을 들으면 그대로 잘 따라하는 편인데 크메르어는 듣고 발음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 물론 쉬웠다 해도 뜻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겠지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미사 참례를 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첫날, 별 생각 없는 가운데 미사가 시작되었다. 신부님의 익숙한(크메르어는 모르지만 미사 전례문은 전세계가 동일하다) 기도문에 뒤이어 성가가 울려퍼졌는데, 순간 깜짝 놀랐다. 아직 십대인 아이들이 내는 그처럼 깊고 풍부한 소리를 낼 줄이야.... 세련되진 않지만 어떤 애절함이 묻어 있는 있는 소리, 마음 깊은 곳에서 연민을 자아내는 소리였다.
이 학교 아이들은 대개 부모가 없거나 매우 가난한 집 아이들이라 한다. 신을 향한 호소와 자신을 꾸미지 않는 데서 오는 어떤 힘이 타지에서 온 여행자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런 소리를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구나 했다.
우리나라 미사도 80년대쯤엔 이런 순수한 울림이 있었을 것 같다(그 시대가 좋다는 건 결코 아니고). 요즘 미사가 음악적으로는 훨씬 세련되었지만, 노래에 담긴 '진심'의 크기는 그때와 비교할 만하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가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 이곳에 살려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여기 지내면서 가장 좋은 게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사람들한테 받아들여지는 거. 여기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하는지 관심이 없어. 나란 사람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단다." 오랜만에 들른 마을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몇 시간 트럭을 타고 찾아온 자신들에게 진심으로 손을 흔들며 환영하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노라고 했다. 그 장면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사람을 감동케 하는 건, 빛나는 재능, 편견을 뛰어넘은 용기 같은 것만은 아니리라. 우리를 살맛 나게 만들어주는 건 우리를 환영해주는 작은 몸짓, 진심이 담긴 작은 친절과 미소...... 이런 것들이 아닐까. 우리 일상에 감동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그런 작은 환영의 몸짓들을 더이상 느끼지 못해서가 아닐까. 타인을 평가하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들여주는 마음을 잃어서가 아닐까.
사랑받기 위해 무언가를 자꾸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미 갖고 있는 힘, '받아들여짐'의 감동을 삶의 자리에 다시 불러들여야 할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에게 서로의 존재를 축하하고 환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그 어떤 성취 못지 않게 소중할 것 같았다. 이곳 사람들이 우리보다 '덜' 가진 이들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더' 많은 것을 가진 이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2011/1
(프놈펜을 떠날 때 친구가 싸준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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