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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기록/동남아시아

폐허 위의 아름다움, 캄보디아 앙코르왓의 사원들

by 릴라~ 2011. 6. 3.
앙코르톰

 

사흘권을 끊었지만 앙코르 유적을 다 보진 못했다.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다. 앙코르왓, 앙코르톰, 바이욘, 타프놈, 프놈바켄, 프레야칸, 네펀..... 어느 순간 이름을 다 기억하기 어려워졌고 내가 소화시킬 수 있는 만큼 보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사원들은 배경지식 없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정글 한가운데, 그 어떤 인공적인 덧칠도 없이 폐허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그 신비로움이 더한 것 같다. 사원군으로 들어가는 입구엔 왕국의 게이트라 할 수 있는 웅장한 앙코르톰이 서 있었다. 이 왕국, 이 문명 세계가 자연에 대한 일종의 극복/정복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인간이 만든 새로운 세계, 그것이 문명이었다.  

 

바이욘 사원

 

 

이 거대한 사원군은 12~13세기 동남아 일대를 지배했던 앙코르 제국의 힘과 번영을 보여주는데, 사원 벽면의 부조를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삶이 녹록치 않았음을 알게 된다. 힌두교, 불교, 힌두교, 불교의 지배를 차례로 받으면서 사원의 조각들도 변형을 겪었다. 바이욘 사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힌두교의 색채가 진하게 남아 있다.

 

앙코르왓의 부조는 사원 건축을 시작한 수리야바르만 2세의 치적도 있지만 대부분 힌두교 우주 신화를 담고 있다. 바이욘 사원은 건설자 자야바르만 7세를 위해, 프레야칸은 그의 아버지를 기념해서 지어졌다. 각각의 사원들이 개성을 지니고 있었고, 마치 한 권의 책처럼 그 시대 사람들이 지니고 있었던 신념 체계와 과학과 예술의 총체를 전달하고 있었다. 건축이 그런 것이듯이.

 



바이욘 사원에는 전쟁 말고도 당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면면들이 조각으로 재현되어 있다. 탄생, 음악, 공물...... 그들이 남긴 기억의 편린들이 애틋했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삶의 특정 순간들, 그들이 기억하고자 했던 것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들에게 이 세계는,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사원들은 다리와 문, 혹은 계단을 지니고 있는데 이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상징처럼 여겨졌다. 겹겹의 문들을 하나 하나 통과하면 사원 한가운데 성소에 이르게 된다. 한편으론 아름답지만 한편으론 이토록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던 절대 권력의 힘이 위압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당시는 삶이 단순했을 것이므로, 왕들이 신의 대리자로서 초월적 권위를 이용하여 백성을 지배했을 것이므로.

 

사원 조각의 첫 페이지는 대개 전쟁 이야기로 시작된다. 당시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의 핵심엔 전쟁이 있었다. 사원은 부족간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키우고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문명의 본질이 전쟁과 분리될 수 없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앙코르왓의 건설자 수리야바르만 2세만 해도 백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며, 전쟁을 통해 왕국을 확장하고 강력한 왕권/신권의 상징으로 사원 건축을 시작했다. 

 

타프놈


거대한 나무가 사원을 삼켜버린 타프놈은 영화 툼레이더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만난 지점을 이보다 절묘하게 보여주는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문명은 영원하지 않다. 인간의 시간에 비해 자연의 시간이 훨씬 힘이 세지만, 그 연약함 때문에 인간 삶이 이처럼 애틋하고 뜨거운 것이겠구나 했다.

프레야칸은 폐허가 주는 느낌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 폐허와 정적 속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설명할 길 없는 어떤 고요가 마음을 가만히 채워 주었다. 공간이 말을 하는 곳이랄까.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비껴나 가늠할 수 없는 어떤 무한한 시간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곳.

일상을 떠나 새로운 곳에 가도 정신은 낡은 것 그대로일 때가 있다. 프레야칸에 와서야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 것 같았다. 말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고, 표현되지 않는 것들이 마음 속에 살금 살금 들어오면서 잊고 있었던 어떤 세계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살며시 열리는 곳. 프레야칸은 내 정신을 미지의 깊이 속으로 데려가는 힘을 지닌 장소였다. 


프레야칸


그러고보니 이 사원군의 독특한 아름다움도 그것이 폐허로 존재하기 때문인 듯했다. 절대 권력이 사라진 자리엔 아름다움만이 남을 수 있었다. 사원을 만든 숱한 사람들의 눈물과 땀은 시간 속에 지워지고, 돌에 새겨진 것만이 한 시대의 흔적으로 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애환과 고통 대신 그들이 추구했던 미적 감수성에만 빠져들 수 있었다. 우리에게 앙코르 유적은 역사적 유물이라기보다는 미학적 향유의 대상이었다. 그런 방식도 나쁘진 않지만 아름다움에만 천착하다보면 본질을 놓칠 수도 있으리라.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이지만, 우리 문명 또한 폐허가 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것은 그 무엇이든 사라질 수 있었다. 그 어떤 찬란했던 과거도 미래까지 보장해 주진 않는다. 미래는 그 문명을 이끌어갈 사람들이 있을 때, 그 문명의 토대가 지속가능한 생산 관계와 사회적 관계들로 뒷받침될 때 비로소 유지되고 번성할 수 있다. 사원들을 다 둘러보고 떠나기 전에 바이욘 사원을 한 번 더 보러갔다. 돌에 새겨진 그윽한 미소가 마음에 남았다. 12세기 앙코르 사람들이 발견한 신의 얼굴이었다.

 

바이욘 사원

 

@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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