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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야기/동남아시아

두 개의 세계,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by 릴라~ 2011. 2. 26.

앙코르왓이 있는 도시, 시엠립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 쯤이었다. 공항은 작고 아담했다. 비자를 만들고 여권 심사대를 통과할 때 팁으로 1달러를 더 내라는 요구가 낯설었지만 가볍게 뿌리치고 나왔다. 밖에선 한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내 이름을 들고 서 있었다. 밤이라 혹시나 해서 호텔 쪽에 픽업을 부탁했었다.

시엠립의 첫 인상은 온화했다. 날은 어두웠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열대의 공기가 푸근하게 다가왔다. 청년이 몰고 온 것은 툭툭이어서 밤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시내로 향했는데, 그대로 좋았다. 주변 풍경은 편안했고, 하늘 높이 솟은 빌딩이 없어서일까. '땅의 온화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공항에서 시내까진 금방이었다.

시엠립에서 나흘 밤, 사흘 낮을 머물렀다. 알고보니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도시였다. 여행자들이 거리 구석구석을 온통 점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콕의 카오산처럼 소란스럽지는 않다. 찾아보면 조용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도 적지 않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따스하고 친절했지만, 마지막 밤엔 인터넷 까페 이용 시간을 터무니 없이 속인 가게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앙코르왓 입장권은 하루, 사흘, 일주일 짜리가 있다. 40불을 주고 사흘권을 끊었다. 나중에 들으니 이 입장료 수익의 3분의 2가 베트남과 일본의 합작 회사로 들어간다고 한다. 자국 문화재도 관리를 못하는 나라가 있던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프놈펜에 가서야 그 이유를 좀 더 잘 알 수 있었다. 나머지 3분의 1 가량은 지금 캄보디아를 통치하는 훈센 일가 손에 들어간다고 한다.

앙코르 제국의 유적은 시엠립 근처에서 시작해서 100~200km 떨어진 곳까지 있었다. 그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는데 정말 거대한 규모였다. 이곳에 이미 두 차례나 왔던 냥냥군이 자전거를 빌려서 사흘 동안 돌면서 유적을 봤다고 해서 나도 자전거를 빌렸는데 너무 힘들어 하루만에 포기하고 남은 날들은 툭툭을 탔다. 신체 건장한 청년과 내 체력이 비교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유적 중 가장 가까운 곳이 앙코르왓이다. 호텔 직원이 자전거로 30분이면 간다길래 믿고 출발했는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길이 몇 개 없어서 그냥 죽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했는데, 어딘가에서 길을 놓쳐서 잘못된 방향으로 죽 가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바른 길을 찾아 돌아가면서 보니 30분이 아니라 1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출발할 땐 바람도 선선하고 좋았지만 곧 태양이 뜨겁게 내리비쳤고 뙤약볕 아래 두 시간 달리고 나니 완전 지쳐서 그 날은 유적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엡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을 그 길에서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에 잘못 접어들었을 때 맞닥뜨린 풍경인데 마음에 오래 남았다. 강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빈민촌,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호텔 건물 같은 크고 깨끗한 저택. 두 개의 세계가 극명하게 대조되어서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이들은 시엠립이 관광지가 되면서 여기로 밀려난 사람들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아무리 오랜 시간 여행을 한다 해도 결코 이 강가에 늘어선, 색색의 빨래들이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말해주는, 이 사람들의 세계 속으로는 들어갈 수 없음을. 나는 그 뒷편에 있는 깨끗한 집, 그 세계에 속해 있었다. 내가 묵는 호텔이 1박에 겨우 14불이긴 해도, 방도 넓고 시트는 나무랄 데 없이 깨끗하고, 욕실에선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여행자 숙소였으므로. 그리고 몰려드는 서구의 여행자들을 위해 지어진 온갖 편의 시설들을 맘껏 누릴 것이므로.

배낭여행이 내겐 고행길이지만, 그럼에도 여행 내내 나는 저 뒷편 세계에서 아주 가끔, 이렇게 길을 잘못 들었을 때만, 이곳 사람들이 실제 살고 있는 그 삶을 풍경으로만 흘낏 바라볼 것이었다. 그들의 내적 풍경 속으로는 들어가지 못한 채로. 여행이란 무엇일까, 그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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