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라타나키리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였어요. 스텅트렝에서 버스를 타고 붉은 흙이 깔린 도로를 종일 달리자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캄보디아의 북동쪽 끝에 위치한 이 오지에는 라타나키리 국립공원이 있어요. 그래서 이 지역의 주도인 반룽에는 게스트하우스가 꽤 많았습니다. 서양 여행자들은 이 오지까지 많이들 들어오고 있었어요.
여행사에 들러 국립공원 트레킹을 예약했어요. 본격적인 라타나키리의 풍광을 보려면 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러려면 최소 이박삼일이 필요하다 합니다. 아쉽지만 내게는 이틀이 여기서 쓸 수 있는 최대치였어요. 그래서 라타나키리 인근 숲을 둘러보는 일박이일 트레킹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중년인지 노년인지 가늠이 안 되는 얼굴, 작고 왜소한 몸집의 가이드를 따라 트레킹을 시작했어요. 가이드 겸 포터였죠. 그는 나무로 짠 바구니를 머리에 메고 길을 안내했어요. 트레킹 코스는 평범했지만 숲 사이로 보이는 캄보디아의 연푸른빛 하늘이 참으로 고왔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제 어릴 적 기억에 있었던 맑고 깊은 하늘색을 날마다 만났어요.
점심은 숲 사이에 드문드문 있는 민가에서 먹었어요. 아주머니가 요리를 해주었는데 볶음면이었어요. 아기가 해먹에 잠들어 있었구요. 야영지에 도착하자 가이드가 저녁 요리를 해주었습니다. 잠은 해먹에서 잤는데, 이 날을 계기로 제 로망이 완전히 깨어졌어요. 해먹에서 자고 일어나니 허리가 어찌나 아픈지, 다시는 못 자겠다 싶었어요.
야영지는 썩 깨끗하진 않았습니다. 여행자들이 버린 휴지가 군데군데 보였어요. 이럴 걸 트레킹은 왜 하냐, 혹으로 욕하면서 저는 야영지를 떠나기 전에 휴지를 싹 주워서 땅에 묻었습니다. 이 무슨 오지랖이냐 하면서요.
둘째날도 숲길을 따라 트레킹이 이어졌습니다. 이 날 제 눈에 자꾸 들어온 건 가이드의 맨발이었어요. 그는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했는데 길을 가며 어떤 식물을 채취했어요. 뭐냐고 물으니 부인이 아파서 약에 쓰려고 한답니다. 자식은 없다고 했어요.
길을 걸으며 그의 몸을 평생 떠받친 맨발과 내가 신은 등산화가 계속 눈에 밟혔어요. 한국에서의 내 삶이 절로 돌아봐졌습니다. 어쩌면 내 삶은 노동하지 않는, 양반의 삶이구나 싶었고 약간의 죄책감도 느껴졌어요. 내가,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풍요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풍요는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사유와 철학이 있는 문화로 이어지지 않을 때, 그것은 고삐 풀린 망아지에 불과할 지도 몰라요. 풍요에는 내용이 있어야 하고, 사회적 정의에 입각한 제한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에게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 같은 것은 불필요하다 여겨집니다. 인간에겐 인간의 '크기'에 걸맞는 풍요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문화적 성숙'이 아닐까요. 라타나키리는 제게 우리가 추구하는 풍요로움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온 곳입니다.
@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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