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에세이99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용마 ## 노무현 정부가 검찰에서 손을 뗀 소극적인 개혁은 당장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정부의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아슬아슬하게 과반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과반은 얼마 안 되어 무너졌다. 선거법 위법 재판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는 선거법이 혹독하게 적용되어 벌금 100만원 이상의 선고가 내려진 반면, 야당 의원들에게는 벌금 80만원 선고가 많았다. 벌금 100만원은 의원직 상실의 기준선이다. 당시 진보적 성향을 보인 여당에게 선거사범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 공안부와 법원의 잣대가 더욱 엄격하게 적용된 것이다. 이것은 단적인 예일 뿐이다. pp273 ## 미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정직과 관련된 문제였다. 사실 미국에 사는 동안 이 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가 넘.. 2018. 4. 16.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이영산 아주 장중한 스케일의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다. 몽골 초원에서 살아가는 유목민의 삶을 이 책보다 잘 그린 작품은 잘 없을 것 같다. 저자는 오랑카이족 유목민 비지아와의 이십년의 우정을 바탕으로 유목민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복원해내었다. 유목민으로 살아가던 비지아의 어린 시절과 그가 도시에서 맞닥뜨린 문명과의 충돌, 징기스칸의 이야기와 고려조 몽골과 우리 역사와의 만남까지,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어우러져서 유목민에 대한 훌륭한 초상화를 그려낸다. 다큐적 가치도 충분하지만, 문학적인 성취에서도 성공을 거둔 책이다. 저자의 묘사를 따라가며 알타이 산맥 부근 몽골의 평원 속을 내가 거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정착민의 서사와 초원의 서사는 종류가 완전히 다름을 알려준다. 저자가 유목민에 매혹된.. 2018. 4. 14. 당신의 사랑은 어디 있습니까 | 피에르 신부 — 삶은 자유로운 시간을 조금 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알라딘에 중고로 팔 책들을 정리하면서 눈에 띈 책. 2000년 발행이니 약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다시 한번 훑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처음 읽었을 때는 피에르 신부가 이런 가치관으로 이렇게 행동하며 살아온 분이었구나, 정도였는데, 지금 읽어보니 그가 싸우고 있는 프랑스 사회의 모든 문제점(빈부 격차, 실업으로 인한 고통, 고독사, 노숙자,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소외' 등)이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대로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애'를 설파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예전에는 그분의 이상이나 가치관 정도로 여겨졌다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목격하고 나니, 그분이 왜 그렇게 강렬하게 나눔의 정신을 설파했는지 공감의 정도가 확연히 다르다. 프랑스가 이미 겪었던(혹은 겪고 있는) 고통은 지금 우리 사회.. 2018. 3. 27. 힘만 조금 뺐을 뿐인데 | 우치다 타츠루 ㅡ 실없이 웃으며 수준 높게 일하기 우치다 타츠루의 책은 가벼운 에세이라도 항상 뭔가 건질 것이 있다. 일본 사회의 변화 양상, 특히 젊은 세대가 처한 상황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신작 '힘만 조금 뺐을 뿐인데'에서는 저자의 인생관이 어느 시점에서 결정되었는지에 대한 개인적 경험이 소개되어 있어 재미있었다. 그는 사춘기가 접어들자마자 부모와 자신은 뭔가 다르다고 느껴서 바로 집을 얻어서 나왔다고 한다. 물론 몇 달 후 다시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 경험은 이후 그의 삶을 좌우한다. 그는 '참고 견디는' 삶을 거부한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들을 계속 참을 때 흔히 말하는, 감정적으로 둔감한, 존재의 외피를 두꺼운 껍질이 둘러싼 것 같은, '꼰대'가 양산된다는 것이다. 사춘기 때 그가 참지 않고 나왔기 때문에 이후 그는 부.. 2017. 11. 26.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담백한 문장, 연륜에서 우러난 깊이, 진부하지 않은 성찰. ## 그 시절에 우리는 모두 괴물이었다.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를 내장에 쌓아두고 살았다. 전두환 시대가 혹독했다 하나 사람들을 한데 묶는 의기가 벌써 솟아오르고 있었다. 유신시대의 ㅈ럼은이들은 자기 안의 무력한 분노 때문에 더욱 불행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대학생들의 편에서 박정희를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존경한다는 말을 들으면 저 우체국 창구를 뛰어넘을 때와 같은 충동을 다시금 느낀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라면, 한때의 압제와 불의는 세월의 강 저편으로 물러나 더이상 두려울 것이 없으니, 그렇게 어떻게 이루어졌다는 경제적 성과를 두 손으로 거머쥐기만 하면 그만일 것이다. 과거는 바로 그렇게 착취당한다. 어떤 사람.. 2017. 9. 27.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 - 김형중 여행지에서의 스쳐가는 감상은 재미는 있지만 깊이가 없을 때가 많다. 광주 출신의 평론가가 자신을 K로 객관화하여 광주곳곳을 산책하며 쓴 이 에세이는 한 장소의 진정한 의미는 그곳과 마주한 우리들의 시간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송정리와 금남로, 양림동에서 망월동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장소를 K는 온전히 소유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바타유는 여러 고상한 정의들(가령 생각하는 동물, 노는 동물, 도구적 동물 등등)을 제쳐두고, '소모하는 동물'이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가장 적당한 정의라고 주장한 자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소모와 탕진에 매혹당하는 생명체다. (...) 약간의 비약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문화 혹은 문명 일반이 실은 과잉 소모의 산물들이라고 프로이트주의자이자 바타유주의자인 K는 믿고 .. 2017. 2. 12. 시대를 뜨겁게 통과한 기록;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 도종환 오랜만에 좋은 에세이를 읽었다. 시인, 소설가들의 에세이는 그들의 시, 소설에 비해 내용이 헐거워서 큰 매력을 못 느껴왔는데 이 에세이는 예외였다. 어린 시절부터 오십대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종한 시인이 아프고 뜨겁게 통과한 시간의 흔적이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따라가면서 한국말이 이렇게 맑고 차분하고 쉽고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고 느꼈다. 삶을 제대로 '겪어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군더더기와 허세가 없는 맑고 단단한 문장이었다. 에세이가 진정한 '겪음'의 기록일 때, 에세이가 창작만큼 힘이 있을 수 있구나도 느꼈다. 훌륭한 에세이는 경험과 함께 훌륭한 사유를 담아내지만 에세이의 본질은 '겪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시인이 초창기 전교조 활동을 시작.. 2017. 1. 5.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 호시노 미치오 호시노 미치오의 유작. 그의 저작 중에서 가장 좋았다. 알래스카의 대자연과 그 자연 속에서 수천년 이어온 원주민의 문화와 영성에 매혹되어온 저자의 발걸음은 이 책에서 이제 '큰까마귀' 신화가 있던 시대, 유라시아와 알래스카가 연결되었던 시대의 흔적을 찾는 여행으로 이어진다. 그 여행의 한가운데에서 저자는 '밥 샘'이라는 특별한 인물을 만난다. 그는 알래스카가 현대문명에 노출되어 파괴되어가는 시기, 격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젊은이 중의 하나였다. 샘은 고통스러운 젊은 날을 지나서 다시 고향에 돌아온다. 그리고 오래 전에 파괴된 클링깃족의 신성한 묘지를 돌보기 시작한다. 그는 혼자 묵묵히 그 버려진 묘역을 돌보았고 그렇게 십년의 시간이 흐르자 그 땅은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는다. 십년에 걸친 샘의 작업.. 2016. 8. 24. <교황 프란치스코 어록 303> 종교 안에는 인간적 측면을 무시하는 매우 많은 규범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노인을 폐기처분하는 사회는 이 지상에서 가장 불량한 사회이며 반드시 사라져야 할 사회입니다. 고통을 운명이려니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깊은 회한과 사면과 보상으로 죄와 불의는 치유되고 복원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정치는 고귀한 활동입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위해 순교자와 같은 헌신을 요구합니다. 이와 같은 소명감으로 정치는 실천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열정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열정과 희망을 가졌어도 그것만으로 모든 걸 이루기는 어렵지요. 때로는 자신의 나약함이나 부족함도 성찰해봐야 합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2014. 3. 9.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하다 : 임인덕 신부 이야기> - 권은정 사람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역만리 먼 곳에 와서 생전 처음 보는 타국 사회와 사람들을 위해 평생 살아간 이들이 있다. 어떤 종류의 가르침이, 어떤 종류의 사랑이 이분들의 특별한 헌신을 가능하게 했을까. 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 한국명 임인덕 신부의 삶이 바로 그러했다. '임인덕 신부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평전이라기보다는 그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스케치이다. 그의 개인적인 목소리를 좀 더 또렷이 살려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한 독일 청년이 우리 시대를 읽어냄으로써 자신의 소명을 이해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서 참 좋은 책이었다. 강남의 대형교회가 한국 종교의 현주소가 된 지금, 종교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에 .. 2013. 7. 11.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제이 그리피스 여행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미지의 땅을 공간적으로, 지리적으로 정복하고 탐험하는 여행, 그리고 자신의 정신이 가장 생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방랑으로서의 여행이 그것입니다. 저자의 여행은 후자에 속합니다. 그녀가 찾아간 곳은 원시의 숲, 빙하, 사막, 바다가 존재하는 곳, '야생'의 세계가 그 자신의 충만함을 여태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어요.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이미지는 문화의 지배를 강하게 받습니다. 이 이미지들은 상당 부분 '인간적' 관점에 의해 왜곡된 것들인데요. 저자의 여행은 이와 같은 관념들에 의해 왜곡되고 축소된 자연 너머의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만나고 싶다는 열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지리적으로는 멀지만 우리 내면의 심층적인 부분과는 한층 가.. 2013. 1. 23. 노 피어 - 정진구 책장을 펼치고 잠시 놀랐다. 이 큰 글씨, 이토록 넓은 줄 간격....헉..! 이렇게 독자의 눈을 배려한(?) 책은 오랜만에 본다. 책 표지는 근사한데 속 편집은 조금 허접해 보인다. 하지만 어쩌랴, 로이스터 감독에 대한 책은 이 한 권 뿐인 걸. 사진은 꽤 괜찮다. 이 책은 로이스터 감독의 야구 철학과 그가 감독을 맡은 3년간의 롯데 팀의 성적과 명승부들을 그려나가고 있다. 말 그대로 가벼운 스케치 정도의 글이다. 본문도 그렇고 야구 선수들과의 인터뷰도 그렇고 좀 더 심도 있는 분석이나 해설이 아쉽다. 아무래도 나는 평전 스타일의 글을 기대했던 것 같다. 로이스터의 선수 시절 이야기와 그가 감독으로서 왜 그런 야구 철학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책의 내용은 소략한 편.. 2012. 4. 17. 말들의 풍경 - 고종석 제목 그대로 우리말의 풍경을 기록한 칼럼 모음집이다. 글쓴이의 격조 있는, 그러면서도 쉽고 고졸한 한국말 문장을 따라가는 즐거움, 자연 언어 현상에 대한 지적 이해가 있는 글을 읽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언어 현상을 주제로 한 칼럼이라는 점이 좋았다. 이 글의 특징은 '풍경'이 뜻하는 바대로 저자가 관찰 대상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상과의 거리가 지나치가 멀거나 가깝지 않으며 대상으로부터의 '온기'가 느껴질 딱 그만큼의 거리다. 지나치게 세부적인 학문적 분석을 시도하지 않으며 대신에 우리를 둘러싼 언어 현상의 면면을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우리 삶과 맞붙어서 생멸을 거듭하고 있는 자연 언어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오고 그것을 더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을 제.. 2012. 3. 27. 소금꽃나무 - 김진숙 소금꽃을 피워내는 나무 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동시대라 해도 각자가 살아가는 세계가 너무 다르기에. 세상은 조각조각 다른 색색의 천을 붙여 만든 패치워크처럼 저마다 다른 수많은 삶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이어붙인 건 아닐까. 그 조각들은 서로 붙어 있지만 조화롭지 않으며 어떤 통일성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그 모든 조각들이 모여 한 시대의 풍경을 이루지만 우리는 우리와 이어져 있는 다른 조각들을 미처 보지 못한다. '소금꽃나무'의 저자 김진숙은 60년생이다. 내가 74년생이니 14년 차이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시차, 어찌 됐건 동시간대를 살아온 시간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숨을 한번 들이쉬고 가슴을 한번 쓸어내렸다... 2012. 1. 22. 자기혁명 - 박경철 '태도'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의하면 대상에 대해 어느 정도 일관성 있게 반응하는 경향을, 백과사전에 의하면 '가치'나 '관심', '감정'보다는 범위가 좁고 '신념'이나 '견해' 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칭한다. 내면의 잠재적 경향을 가리키기도 하고 외부로 드러난 행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있고,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있다. 많은 경우 이 둘은 일치하지 않는데, 자신과 타인을 동일하게 바라보고 대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태도'라는 것을 지니고 있는, 자신을 갈고 닦은 사람일 것이다. 박경철 원장의 '자기혁명'을 읽고 내 마음에 남은 키워드는 'atitude'였다. 삶의 태도. 본문에서도 저자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의 애티튜드가 몸으.. 2011. 12. 10. 이전 1 2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