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안에는 인간적 측면을 무시하는 매우 많은 규범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노인을 폐기처분하는 사회는 이 지상에서
가장 불량한 사회이며 반드시 사라져야 할 사회입니다.
고통을 운명이려니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깊은 회한과 사면과 보상으로
죄와 불의는 치유되고 복원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정치는 고귀한 활동입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위해 순교자와 같은 헌신을 요구합니다.
이와 같은 소명감으로 정치는 실천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열정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열정과 희망을 가졌어도 그것만으로 모든 걸 이루기는 어렵지요.
때로는 자신의 나약함이나 부족함도 성찰해봐야 합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예술의 가치는 그 어떤 인간의 비극이나 고통도
인간이 바라는 최선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데 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남겨주려고 하는 걸까요?
아니, 이 물음보다는
'도대체 이 세상에 어떤 아이들을 배출하려고 하는 걸까요?'
라고 묻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우리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지금 직면해 있는 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세대는 앞 세대들을 이어받아 존재하고 또 다음 세대로 그 배턴을 넘깁니다.
이것은 한 나라의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죽음은 매일매일 내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 중 가장 위대한 지도자들은
의심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부나 권력 따위와는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항상 돌봄이나 친밀함과 약속하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따스함과 온유함도 즐겨 약속하십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은 착취나 노예, 그리고 다른 사회적 질병에 대해 공모하는 셈입니다.
우리의 침묵을 통해, 행동하지 않는 것을 통해, 무관심을 통해 우리들은 그것들과 공모하는 것입니다.
21세기는 사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애정을 가졌다는 감정 그 이상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창조를 위한 전면적인 도전이며 시도입니다.
평범함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적당한 마약입니다.
끼니를 걱정하는 것보다 더 비참하고 굴욕적인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문화에서는 우선 외적인 것, 다시 말해
즉시성, 시각성, 신속성, 피상성 같은 것들이 우선시되지요.
여기서는 진정성 같은 것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으로 사장되어 버리지요.
사탄이 매일같이 우리에게 주는 괴로움 때문에 회의적인 생각에 빠지지는 맙시다.
물론 그로 인해 좌절감에 빠지지도 맙시다.
인류의 역사, 우리의 역사, 개인의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것에는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역사를 이어가는 요인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학교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역동적 역사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장소입니다.
학교에서는 각자의 권리를 방어하는 능력을 길러 주고,
각자에게 부여된 의무를 준수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학교는 자유시민을 육성하는 곳입니다.
학교는 인위적 인간성을 만들고 인위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 요령을 가르치는 곳이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사람들과 더불어 가려고 하면
항상 그 걸음걸이는 느려지게 마련입니다.
성장하는 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픔이나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의 결함에서 참으로 심오한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오래된 관습을 깨뜨리기로 결심했습니까?
그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아보셨습니까?
정말 중요한 것들, 즉 기술이나 전문적인 일을 배우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알고 사랑과 우정이 지속되게 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모두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진리는 항상 호전적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역시 투쟁적이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는 힘든 일을 하며 박해를 받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정의를 실현하지도 않으면서 갈채를 받습니다.
사람이 노동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노동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종교는 사회적 국가적 삶과 관계 없이,
시민 사회 기관들의 건전성에 대한 걱정 없이,
또 시민들이 관심을 보이는 사건들에 대한 의견 표명 없이
그저 사람들의 내적 영역에만 국한되어야 한다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누가 감히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와 캘커타의 복녀 데레사의 메시지를
성전에 가두고 침묵하게 하겠습니까?
교황 프란치스코 어록 303
- 저자
- 줄리 슈비에테르트 콜라조 (엮음), 리사 로각 (엮음) 지음
- 출판사
- 하양인 (주) | 2014-02-14 출간
- 카테고리
- 종교
- 책소개
- 이 책은 교황이 사회, 경제, 종교, 문화, 신앙 등 각 현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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