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좋은 에세이를 읽었다. 시인, 소설가들의 에세이는 그들의 시, 소설에 비해 내용이 헐거워서 큰 매력을 못 느껴왔는데 이 에세이는 예외였다. 어린 시절부터 오십대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종한 시인이 아프고 뜨겁게 통과한 시간의 흔적이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따라가면서 한국말이 이렇게 맑고 차분하고 쉽고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고 느꼈다. 삶을 제대로 '겪어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군더더기와 허세가 없는 맑고 단단한 문장이었다. 에세이가 진정한 '겪음'의 기록일 때, 에세이가 창작만큼 힘이 있을 수 있구나도 느꼈다. 훌륭한 에세이는 경험과 함께 훌륭한 사유를 담아내지만 에세이의 본질은 '겪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시인이 초창기 전교조 활동을 시작할 무렵의 학교 풍경이다. 그 시절 학교가 그렇게 검열이 많고 불합리하며 사람을 함부로 취급하고 사상적인 탄압을 가해왔음을 이리저리 학교를 쫒겨나다시피 이동해야 했던 시인의 경험을 통해 듣고는 우리 사회가 독재라는 참으로 거대한 터널을 힘겹게 통과해왔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학교가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지금의 학교 현장의 교직원들의 노동권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환경이 나아졌다. 물론 지금은 자본주의 경쟁 체제 도입으로 학교평가, 실적 경쟁 등 새로운 괴물이 자리잡아가고 있고 이것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괴물로 인식되지 않는 미시적인 검열 체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이다. 학교가 겉보기에는 비슷해보여도 시인과 내가 전혀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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