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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에세이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 호시노 미치오

by 릴라~ 2016. 8. 24.

호시노 미치오의 유작. 그의 저작 중에서 가장 좋았다. 알래스카의 대자연과 그 자연 속에서 수천년 이어온 원주민의 문화와 영성에 매혹되어온 저자의 발걸음은 이 책에서 이제 '큰까마귀' 신화가 있던 시대, 유라시아와 알래스카가 연결되었던  시대의 흔적을 찾는 여행으로 이어진다.


그 여행의 한가운데에서 저자는 '밥 샘'이라는 특별한 인물을 만난다. 그는 알래스카가 현대문명에 노출되어 파괴되어가는 시기, 격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젊은이 중의 하나였다. 샘은 고통스러운 젊은 날을 지나서 다시 고향에 돌아온다. 그리고 오래 전에 파괴된 클링깃족의 신성한 묘지를 돌보기 시작한다. 그는 혼자 묵묵히 그 버려진 묘역을 돌보았고 그렇게 십년의 시간이 흐르자 그 땅은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는다.


십년에 걸친 샘의 작업이 그 자신 뿐만 아니라 클링깃족 공동체 사람들의 다친 마음을 치유한 것 같다는 저자의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세워졌을 때 마을 사람들은 간담회의 대표로 샘을 추천하고, 사람들은 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묘지는 결국 살아남는다.

 

그 오랜 묘지는 클링깃족 사람들에게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어떤 신성한 연결을 되찾아주는 힘이 있었다. 그 땅이 보존됨으로써 그들 영혼의 한 부분 또한 보존되었다고나 할까. 부족의 신화 또한 그런 의미가 있으리라. 신화는 한 민족이 이 땅에 왔을 때 그들의 시선이 맨 처음 어디를 향했는지를 알려주고, 결국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 각자가 이 작은 육체에 한정된 존재가 아니라 더 머나먼 곳에서부터 여정을 시작하여 지금 여기에 이르렀음을 얼핏 느끼게 된다. 우리 안에 보존된 우리보다 더 긴 시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클링깃족이 그들 부족에게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는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도 겹쳐 보였다.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이랄까, 한국인의 혼 또한 전쟁과 서구화와 급속한 개발시대를 통과하면서 아프고 병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 존재를 더 온전하게 해주는 힘 중에는 그런 것들, 우리의 신화를 이해하고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잇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그러므로 모든 영성은 그 땅에서 출발할 때 진실로 우리 가슴을 치유하는 힘이 있을 것 같다.

 

저자는 큰까마귀 신화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캠핑을 하던 중에 곰의 습격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다. 책 제목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만큼 저자의 삶에 잘 어울리는 헌사가 있을까. 자신이 사랑하는 곳에서 살며 그곳에서 죽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 한 인간의 생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책 제목이 오래 마음에 남아서 나는 어디에서 살고 죽고 싶은지를 때때로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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