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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에세이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제이 그리피스

by 릴라~ 2013. 1. 23.

 

 

여행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미지의 땅을 공간적으로, 지리적으로 정복하고 탐험하는 여행, 그리고 자신의 정신이 가장 생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방랑으로서의 여행이 그것입니다. 저자의 여행은 후자에 속합니다. 그녀가 찾아간 곳은 원시의 숲, 빙하, 사막, 바다가 존재하는 곳, '야생'의 세계가 그 자신의 충만함을 여태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어요.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이미지는 문화의 지배를 강하게 받습니다. 이 이미지들은 상당 부분 '인간적' 관점에 의해 왜곡된 것들인데요. 저자의 여행은 이와 같은 관념들에 의해 왜곡되고 축소된 자연 너머의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만나고 싶다는 열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지리적으로는 멀지만 우리 내면의 심층적인 부분과는 한층 가까운 곳을 탐험합니다. 아마존, 북극, 호주 내륙과 웨스트파푸아에서 그녀는 토착민들의 오랜 지혜에 귀기울이고 그들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으로부터 야생의 자연과 인간 정신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새로운 배움을 얻게 됩니다.

 

'황무지'는 백인/남성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토착민의 언어에는 그런 단어조차 없다고 합니다. 자연에는 빈 땅이 없으며 공허와 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찰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인간이 숲을 베어낸 자리에나 황무지의 '섬뜩한 공허'가 있을 뿐, 야생의 자연은 생명체의 몸을 말려서 하얀 뼈만 남기는 사막의 열기조차도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곳은 크고 작은 온갖 생물과 대기와 바람과 냄새로 충만하게 채워져 있으며 인간이 보기에만 황무지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녀는 귀기울입니다.  자연을 그저 순수한 것으로 보거나 도구적으로 보는 선입견을 물리치고 숲과 얼음과 사막과 바다 그 자체가 들려주는 소리에 깊이 침잡합니다. 그리고 그 '귀기울임'을 통해 야성의 세계, 거칠고 관능적이고 황홀한 세계, 사납고 혹독하면서도 부드러운 친절이 깃든 그 세계를 아름답고 독창적으로 우리 앞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추위와 적막함 속에서도 따스한 친절이 깃든 세계입니다.  그 세계로부터 그녀가 배운 것은 우리 정신이 야생의 자연과 호흡함으로써만 커나갈 수 있는 부분을 그 안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야생의 힘은 자유롭고 무정부주의적이며 모든 금을 넘어서지만 광포하지 않습니다. 야생에 사는 모든 것들은 함부로 복종하지 않고 타인에게 속박되지 않으며 그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보기에 폭력은 자연 밖에 있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땅 위에 홀로 있으면 누구나 자유를 느끼게 되고, 추위와 더위와 맞서는 가운데 폭력은 아무 상처 없이 자연 속에 녹아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젊은이들의 야생성은 자연 속에서 길들여질 수 있는 것인데, 우리 문명이 이들에게 살아꿈틀대는 자연과 마주함으로써 이 세계에 존엄을 표할 수 있게 되는 기회를 주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야생의 자연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지 않습니다.

 

저자는 공허가 인간의 개념인 것과 마찬가지로 비극 역시 인간의 감정이라고 느끼고 있어요. 비극은 아마도 인간에 의해 행해진 폭력 앞에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감정이 아닐까 합니다. 저자에게 그것은 우리 문명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야생의 자연으로부터 기독교적/종말론적 세계관, 아폴론적 질서를 가뿐히 전복할 수 있는 디오니소스의 떠들썩한 웃음과 유머로 가득한 세계를 발견합니다. 7년간의 긴 여행의 끝은 이렇게 이 세계가 비극이 아니고 종말도 아니며, 생명과 웃음으로 가득차 있는 세계라는 깨달음으로 귀결됩니다. 이는 그녀가 여행중에 목격한 수많은 잔혹한 파괴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기쁨의 축제를 시작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 힘은 어떤 비극보다도 더 야생적이며 억세고 강하다. 씨앗은 껍질을 뚫고 싹을 틔우고, 봄은 겨울과 맞붙어 싸워 언제나 이긴다."

 

 

덧붙임1) 식인 풍습을 비롯하여 부족민의 일부 야만적인 풍습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나이브한 면이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그들의 감수성은 훌륭하지만 그들의 전통 중에는 극복해야 할 야만적인 요소 또한 분명히 있습니다.

 

덧붙임2) 저자가 일급 문장가라는데 번역이 좀 아쉽네요. (의미는 명확하나 좀 더 시적으로 번역했으면 하는)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저자
제이 그리피스 지음
출판사
알마 | 2011-03-0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불꽃처럼 열정적이고, 바람처럼 자유롭고 얼음처럼 냉철하며, 대지...
가격비교

300x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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