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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에세이93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 이순자 __ 황혼에 글을 쓴다는 것 황혼에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작년에 눈에 띄는 글을 하나 보았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 이혼 후 생활고로 예순 넘은 나이에 취업전선에 뛰어든 분의 이야기인데 피와 땀이 깃든 글은 이런 묵직한 감동이 있구나 할 만큼 오랜만에 보는 에세이다운 에세이였다. 이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고 했다. 불과 일흔의 나이에. 남편의 폭력으로 재산분할을 포기하고 황혼이혼을 하고, 사이버대학 문창과에 등록한 뒤 늦깍이에 평생 꿈꾸었던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걸 알고는 너무 짧게 쓰고 가셨구나 안타까워했었다. 최근 이분의 시와 산문이 휴머니스트에서 유고집으로 엮어 나왔다. 지인이 선물로 보내줘서 알았다. 이분 글을 더 읽을 수 있다는 게 기뻤다. 1953년생, 우리 모친보다 세 살 아래. 그 세대가 젊음을,.. 2022. 5. 29.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두 분의 편지를 읽고 알았다. 권정생 선생이 병고로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얼마나 낫고 싶어 하셨는지, 병 때문에 글 쓸 힘을 못 내는 것을 얼마나 안타까워하셨는지, 이오덕 선생이 얼마나 열심으로 권정생 선생의 책 출판을 위해 뛰어다니셨는지.. 아동문학이 정당한 문학적 평가를 받도록 얼마나 열렬히 애쓰셨는지... 두 분은 진짜, 아동문학이 하찮게 여겨지던 시대에 아동문학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다. 정말 존경하는 두 분, 그 분들의 순정한 마음과 부지런하고 고된 발걸음 하나하나를 확인할 수 있는 책. 책에 이현주 목사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재밌다. 이 세 분이 절친인 듯. ## 건강한 사람은 병든 사람의 괴롬을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병든 사람 자신의 고통이며, 어디까지나 그 한 사람만의 불행인 것입니다.. 2022. 5. 17.
작고 단순한 삶에 진심입니다 / 류하윤, 최현우 D가 오후에 온대서 아침에 또 빵 ㅎㅎ 주말 아침과 함께 한 책은 유투브 채널 을 운영하는 젊은이들이 쓴 책. 가볍게 잘 읽히지만, 그들의 삶의 실천은 결코 가볍지 않은 책. 젊은 분들이 어쩜 이렇게 속이 여물고 알찬가 했더니 스무 살부터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했고 그래서 단단한 내공이 자리한 분들이다. 남과 다른 삶을 살고자 할 때 가장 힘든 건 가족과의 갈등. 단순한 진심의 하윤 씨도 꼭 같은 갈등을 겪었고 용기 있게 그 시간을 견디고 헤쳐나갔다. 참 아름다운 이들. 오십 다 되어가는 내가 이분들한테 영감을 얻는다. 우리는 삶에서 무엇에 진심일까? 나는,,, 아무튼 '위대한 작가'들에 진심이다. 윤동주, 이육사, 한용운, 백석을 너무너무 사랑함. ㅎㅎ 도스토옙스키와 빅토르 위고와 주제 사라마구도. .. 2022. 5. 14.
지금 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의 정의다 / 이문현 워낙 글을 쉽게 써서 잠깐 누워서 금방 읽었다. 사회부 기자의 버닝썬 취재기. 클럽 직원으로부터 갈비뼈가 세 대나 나갈 만큼 두드려 맞고도 경찰에 오히려 가해자로 몰린 손님. 그가 호소한 억울함에 응답해 취재를 시작하다가 양파 껍질처럼 실체가 밝혀지는 클럽 버닝썬의 실체. 약물과 성폭행, 탈세 등등 비리의 집합소, 그곳을 비호하는 경찰. 한 달 매출 24억이었다는 클럽 버닝썬이 돈을 버는 방법과 그곳에서 VIP 대접을 받으며 하룻밤 수천만 원, 심지어 만수르세트라는 1억의 돈을 뿌리는 사람들.. 그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멀쩡한 사람에게 약물 반응 음성이 나오는 약물을 주입해 성노리개로 만드는 업주. 이 시대 가장 추잡한 돈 잔치를 보여주는 곳. 그리고 한 기자의 용기에 의해 결국 드러나는 진실. 버닝.. 2022. 5. 5.
쓰는 사람, 이은정 (이은정) __ 넘 좋은 책 내가 잘 읽지 않는 장르가 시인, 소설가들의 에세이다. 그들의 일상 이야기는 그들의 시나 소설보다 재미가 없어서. 사진작가나 예술가, 법조인, 의사, 정치인들, 과학자, 철학자들의 에세이는 다르다. 그 직업 세계의 애환을 엿봄은 물론, 그 일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롭고 드넓은 시야가 있어 영감을 준다. 이 책은 예외다. 평범한 일상에 그만의 따스하고도 너른 통찰을 얹어서 맛있게 요리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넘 좋다. 과연 쓰는 사람이구나. 쓰기 위해 잘 나가던 학원강사를 때려치고 가난하게, 글만 고집해온 작가의 내공이 범상치 않다. 친구들에게 기꺼이 선물하고픈 책. 2022. 2. 23.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 최승자 내가 대학 시절 참 좋아한 시인이다. "가장 큰 하늘은 그대 등 뒤에 있다" 그 시구를 외우며 다녔다. 진짜 시적 감수성이 탁월한 분인데, 이 시인이 너무 힘겹게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언론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분의 에세이집이 베스트셀러에 떠서 읽어봤다. 최근 글은 몇 편이고 전에 출판된 것을 재발매한 책. 그래도 반가웠다. 시인은 정신분열증을 오래 앓았다고 했다. 첫 글이 가장 강렬했다. 제목은 '다시 젊음이라는 차를' 시인이 1976년에 쓴 글. 글이 정말 젊다. 이게 젊음이다. ##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거대한 타의--오로지 물욕만을 따라 외곬로 뻗어가는 광기, 조직과 이데올로기를 앞세우고 돌진하는 무서운 능력, 그 아래에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삭과 야곱의 모든 살붙.. 2022. 2. 18.
책 선물 받았습니다, 선물하기 좋은 책 / 박노해 - 걷는 독서 https://youtu.be/Qaadiuj5yAg 2021. 10. 19.
앞으로 올 사랑 | 정혜윤 _ 코로나 시대,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 흑사병이 전유럽을 휩쓸던 14세기,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을 쓴다. 유쾌하고 야한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2021년, 코로나가 전세계를 뒤덮은 이때, 정혜윤 작가는 보카치오처럼 '다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가 쓰는 사랑 이야기는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이 자연과 세계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해야 할까, 우리의 변신을 촉구하는 사랑 이야기다. 사랑한다면 우리는 변해야 한다고, 많은 소설속 인물들과 현실속 인물들의 사랑을 예로 들며 인간의 변신을 이야기하는 책. 그래서 '앞으로 올 사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재미나게 읽었지만 특히 인상 깊은 인물은 '레이첼 카슨'과 러시아의 식물학자 '바빌로프'다. ##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남는다. 우리의 사랑 이야.. 2021. 4. 26.
사생활의 천재들 | 정혜윤 _ '다시' 세상을 사랑하고픈 이가 읽어야 할 책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분 좀 천재 같은 느낌이다,, 라는 작가는 처음이다. 그만큼 생각이나 문장이 톡톡 튀면서도 표현력이 풍부하고 그만의 시각을 잘 녹여내었다. 다만, 몇몇 책은 감정이 과잉되거나 현란한 수사가 많아서 내용을 좀 건너뛰면서 덤벙덤벙 읽게 된다. 아무래도 나는 담백한 문장을 좋아하는 편인 듯. 이 책은 덤벙덤벙 읽지 않았고 잘 읽힌 편이다. 제목이 "사생활의 천재들"이지만 실은 우리 시대 작가와 예술가, 영화감독, 학자 중에서 저자를 감동시킨 '천재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이다. 읽으면서 '천재적인' 작업 결과물을 내는 이들은 그 분야에 '천재적인' 관심과 애정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사생활의 천재들'일 게다. 모든 꼭지를 흥미진진하게 읽었지만, 특히 윤태호 작.. 2021. 4. 14.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 이연주 ㅡ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세계 고산도서관 신간 코너에 파란색 표지에 책 제목이 눈에 띄어 집어든 책. 380쪽의 두꺼운 책이지만 단숨에 읽었다. 일단 저자가 글을 정말 쉽게 잘 쓴다. 법률 용어가 더러 등장함에도 마치 뉴스나 드라마를 보듯이 각각의 사례를 빠져들어 읽게 된다. 뉴스에서 실명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검사들도 꽤 등장한다. 책의 모든 내용은 사시 출신의 저자가 검사로 재직하며 겪은 이야기다. 한 편 한 편이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해서 여기 줄거리 요약을 못하겠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한 마디로 이런 양아치 집단이 없다. 검찰이 썩은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들은 치외법권의 세계에서 함부로 법을 무시하며 제멋대로 권력을 사유화할 뿐 아니라 그 조직의 생리에 반하는 이들에겐 끝까지 복수한다.. 2021. 2. 17.
죽은 자의 집 청소 | 김완 — 이보다 더 쓸쓸하고 아플 수는 없다 새해 첫날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1월 1일 저녁, 이 책을 펼쳐둔 이유는 빌려놓은 새 책이 이것 뿐이어서였어요. 학교도서관에서 약 한 달쯤 전에 빌렸는데 그때는 두 꼭지를 읽고는 큰 숨을 내쉬며 책장을 덮었습니다. 내용이 너무 무거워서 단숨에 읽어나갈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책상 위에 한 달간 놓여 있다가 다시 집어든 책입니다. 저자는 특별한 종류의 청소 서비스를 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홀로 자살하고 뒤늦게 발견되어 방치된 집을 그 모든 냄새와 흔적을 지우고 새집처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인데요. 그래서 저자는 우리 사회의 가장 그늘진 삶의 마지막 흔적을 목격하게 됩니다. 바닥의 핏자국을 지우고 벽을 닦고 온갖 물건을 치우며 가족보다 더 세세히 죽은 이의 삶의 마지막 조각들을 보게 되죠.. 2021. 1. 2.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 | 김동은 _ 의사가 쓰는 코로나 현장 이야기 저자가 의대에 진학할 때 고3 담임교사가 "인간미 있는 의사가 되라"고 하셨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정말 한 인간의 깊은 향기가 여운으로 남았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담담한 문체, 문제상황에서 모두를 위한 올바른 해법을 고민하는 겸허한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더없이 따스한 눈길과 손길. 이런 분이 우리 곁에 살고 있었구나 싶다. 부담 없이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글 속에 그런 문장과 닮은 평온하면서도 올곧은 한 의사의 삶이 전해지는 책이다. 1부, 대구 코로나 사태 중에 일한 경험을 읽으며, 의료진은 물론 폐기물을 처리하는 청소노동자까지 수많은 분들이 얼마나 애썼는가를 알게 되었고, 나머지 4부까지 읽으며 이분의 삶의 풍경 속에서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병과 노쇠, 죽음,.. 2020. 9. 6.
아주 편안한 죽음 | 시몬느 드보부아르 ## 나에게도, 더구나 엄마에게도, 종교가 죽음 뒤에 오는 행복에 대한 희망일 수는 없었다. 영원불멸이라는 것이 천국에서 이루어지든 지상에서 이루어지든, 삶을 사랑하는 자에게 그 영원불멸이 죽음에 대한 위로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pp190 ## 노인들의 슬픔, 노인들이 쫓겨 가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도 죽을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엄마에 대해 이런 상투적인 말들을 쓴 적이 있다. 사람들이 일흔이 넘은 자기 부모나 조부모가 숨을 거두었을 때 눈물을 흘리며 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쉰 살이나 된 여자가 자기 어머니가 죽었다고 괴로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나는 그 여자가 신경과민이라고 생각햇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할 운.. 2018. 11. 28.
영원의 시간을 여행하다/ 호시노 미치오 ## 이 여행은 나에게 한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이 세상의 끝인 줄 알았던 곳에도 사람들의 생활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인간의 삶,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성에 매혹되었다. 어떤 민족이든 얼마나 다른 환경에서 살든 인간은 한 가지 점에서는 전혀 다르지 않다. 그것은 누구나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세계는 그런 무수한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쉬스마레프 마을에서 보낸 석 달은 그 후 세월이 흐를수록 나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주었다. 열아홉살(정확하게는 스무 살) 시절의 여름이었다. pp13 ## 카리부의 주요 식량인 지의류는 환경오염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로 간주될 만큼 대기오염에 약하다. 그 생장 속도는 매우 느려서 한 번 파괴되면 부로가 몇 센티미터로 자라는 데만 50년에서 1백.. 2018. 11. 26.
어둠 속의 희망/ 리베카 솔닛 리베카 솔닛의 문장은 좋다. 그러나 이 책 내용 대부분이 미국의 정치적이고 시사적인 이슈를 배경에 깔고 그 사회를 성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구체적인 상황을 잘 모르는 내겐 일정 부분 '추상적으로' 다가오고 글의 정확한 메시지가 읽히지 않는다. 그러면서 든 생각. 솔닛의 책은 번역되고 있는데,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중대한 과도기에 있고, 얼마나 복잡다단한 이슈가 많은데, 이를 제대로 성찰하는 글은 보기 어려운 것일까. 소설가들의 소설 외 글쓰기의 경우에도 신변잡기적인 에세이나 여행기는 보았지만 사회를 깊이 성찰하는 글은 잘 못 본 듯하다. 다시 말해 저널리즘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그런 글을 만나기가 어렵다. 한국 지식인들이 글을 쓰지 않는 것인가? 출판이 되지 않는 것인가? ## 좌파의 절망은 많은.. 2018.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