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서관에 들러서 자료 조사를 했다. 작가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그가 자기 문학과 인생에 대해 쓴 에세이를 참고하는 거다. 조정래 작가에 대해서는 두 권의 아주 좋은 책이 있었다.
<조정래의 시선>은 십여 년 전 <정글만리> 출간 직후에 나온 것으로 앞부분은 인터뷰집이다. 정글만리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그와 함께 작가의 문학관, 역사와 사회 등 작가의 관심사 전반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정글만리는 안 읽어봤지만 한중 관계의 비전에 대한 저자의 관심이 녹아있는 듯했다. 그 관심 안에는 민족의 분단에 천착해온 작가가 경제민주화 등 시대의 소외에 끊임없이 응답해온 과정이 포함돼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는 동의 못하지만.
<황홀한 글감옥>은 소설 태백산맥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되어 있어 속도감 있게 읽혔다. 특히 조정래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되어 뭉클했다. 정말 대단하다고밖에는...
처음에 아무도 믿지 않았단다. 열 권짜리 장편 소설을 세 개나 썼으니까.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어떻게 가능했을까. 20년 동안 술 한 잔도 안 마셨다고 한다. 매일 9시에서 새벽 2시까지 글 쓰는 삶. 말 그대로 황홀한 '글감옥'이다. 그런 고투 끝에 우리가 거쳐온 격동의 한 시대를 온전하게 복원해냈다. 그리고 늘 당국의 감시가 따라다니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다.
태백산맥은 십 년 넘게 국가보안법 위반 소송에 시달리다가 2005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는 혐의를 낱낱이 스스로 입증해냈는데, 검사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500여 개의 혐의를 검사들이 100여개로 정리해놓았는데 그걸 일일이 논박했으니. 당연하다. 태백산맥만 해도 등장인물이 280여 명이라 그 정도는 다 파악이 되었다 한다.
그의 깊은 열정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선암사 부주지로 대처승이었던 부친은 만해 한용운의 제자로 독립운동에도 가담했다. 해방 이후 절이 소유한 토지를 소작인들에게 나누어줄 것을 주장하다가 처형 직전에 까지 여러 차례 몰렸다. 부친이 죽을 만큼 구타당하는 것을 작가는 여섯 살에 목격했다고 한다. 부친의 좌익 혐의로 고향을 떠나 살기도 했다. 1943년생 그가 어린 날과 젊은 날 통과한 시대의 격랑, 시조 작가이기도 한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문재 등이 그의 문학의 토대가 되었으리라.
태백산맥이 불어로 번역되었을 때, 프랑스인이 그를 한국의 빅토르 위고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조정래 작가는 실제로 빅토르 위고를 가장 좋아하며 모범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대하소설이 끝난 시대에 왜 대하소설을 쓰냐고 다들 만류했다고. 하지만 한국사의 깊은 굴곡을 드러내려면 이만큼 길게 써야 한다고. 서양에서 대하소설이 끝났다고 따라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의 역사적 소명에 답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는 너무나 훌륭하게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완성해냈다. 보통 대하소설이 뒤로 갈수록 작가가 힘이 딸려서 스토리가 재미없어지기에 빨리 쓰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래서 술 한 잔 안 마시고 매일 30매를 아침부터 새벽까지 썼다고. 티비 리모콘을 돌리듯이 작품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조정래 작가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 10권을 필사하게 하여 너무한 거 아니냐는 주변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한다. 그가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단 하나였다고 한다. 작품의 위대함이 문학적 세계관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결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꾸준함이 얼마나 큰 기적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아, 그리고... 태백산맥에 왜 그렇게 야한 부분이 많냐는 고등학생의 질문에는 작가가 대답하지 않았다. ㅎㅎ 더 커서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암튼 한국의 빅토르 위고란 찬사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아리랑'도 읽어봐야겠다. 이거 '레미제라블'도 새로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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