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 생각한다.
이 생이란 것에 대하여.
그리고 발견한다.
아름다움은, 사랑은, 고귀함은, 순간적인 반짝임으로 지나가고
고단과 피로, 폭력은 끈질기게 이어진다고.
생의 본질이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역사 속에서 후자의 힘이 너무 세다고. 그리고 실제적으로
우리의 시간을 지배하는 것도 후자에 가깝다고.
그리고 다음의 질문.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속성을 지닌 생을 사랑할 수 있을까.
2.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 '자기 앞의 생'을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나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이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매력적인 에피소드는 여전했지만
이번에야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이 유머러스하고 따스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고독, 노년, 소외, 죽음, 존엄 같은 묵직한 화두를 다루고 있다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감탄하면서 읽었다.
고전은 이래서 고전이구나...
프랑스 파리의 뒷골목 벨빌 거리에서
창녀가 맡긴 아이들을 기르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은퇴한 창녀, 유대인 로자 아줌마.
그리고 로자 아줌마가 특별히 사랑한 아이, 모모(무하메드).
이들의 생활 수준이야 보잘 것 없기 그지 없지만
모모에겐 부모 대신 로자 아줌마가 있었고
하밀 할아버지와 의사 선생님 카츠와 룰라 아줌마와 나딘 아줌마 등
수많은 이웃들이 있었다.
지금 풍족한 우리가 가지지 못한 이웃들...
물론 환경이 환경이니만큼 그 곁엔 양아치도 상당수 있지만.
그 속에서 모모는 세상을 보는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자신만의 시각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일상이 급변하게 된 계기는 로자 아줌마에게 다가온
노쇠와 죽음의 그림자 때문이었다.
열 살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열네 살로 밝혀진 소년 모모는
점점 로자 아줌마의 보호자로 변해가고
소설은 예상치 못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3.
소설을 다 읽고 알았다.
우리는 생을 사랑할 수 있는게 아니라
그저 누군가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뿐이라고.
생을 사랑하라...
어찌 보면 이 말은 너무 추상적이다.
삶 안에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폭력, 질병, 상실, 배신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데
그 모든 걸 통째로 사랑한다는 말은쉽게 와닿지 않는다.
모모를 봐도 그렇다.
로자 아줌마는 늙고 아프고 냄새 나고 성격도 까칠하고
날이 갈수록 추하게 무너져간다.
아름답거나 고귀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삶의 쇠락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가장 무서운 폭력은 사회나 타인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노쇠와 죽음이라는 자연적, 물리적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녀를 기다리는 삶의 조건은 절망 그 자체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돌아온 과거가 있는 로자 아줌마는
사회의 폭력을 온몸으로 통과해왔는데 이제 그녀에게는
자연의 폭력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하고
그녀의 불안, 고집, 늙음, 죽음을 떠안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를 떠나지 않는다.
모모가 사랑한 것은 생 자체가 아니라 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어린 나이에도 생의 모든 고단함을
기꺼이 감수한다. 때로 몸서리치면서도...
모모에겐 로자 아줌마가 세상의 전부였다.
우리는 생에 수반되는 많은 폭력을 결코 사랑할 수 없고
그것을 용인하고 싶지도 않다.
생 자체는 너무 잔인하고 또 불공평하다.
하지만 우리는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람 때문에 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 앞의 생'은 삶이 아름답지 않아도
누군가는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을보여준 소설이었다.
생은 아름답지 않지만
사랑은 아름답다.
4.
이 소설은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가득하지만
모모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모모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읽은 것 같다.
모모와 함께 웃고 울면서...
그런데 독서모임을 하면서 호기심을 새롭게 끈 인물이 있으니
로자 아줌마였다. 아, 로자 아줌마의 삶의 태도와 세계관이
이 소설을 떠받치는 기둥이구나.
그리고 로자 아줌마가 어떤 사람인가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로자 아줌마의 삶에 초점을 두면서 한 번 더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가난과 늙음이 얼마나 처참한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아이들을 끝까지 품어주는 것.
어쩌면 로자 아줌마가 진짜 주인공인 것 같다.
내 나이가 되면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좀체로 들지 않는데
로자 아줌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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