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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철학, 심리

29세 청년의 외침에 대하여... (공산당 선언 / 맑스, 엥겔스)

by 릴라~ 2026. 6. 14.

 

1. 
 
베를린 훔볼트 대학 본관 로비에는
그 대학 출신인 맑스의 유명한 테제가 적혀 있다.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세계를 여러 방식으로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그저 세상이 마음에 안 들어서 바꾸려 한 게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 더 자유롭고 창조적인 존재라고 믿었다.
 
맑스가 보기에 자본주의 상태의 인간은 이상했다. 

하루종일 노동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의미와 연결되지 않고
사람들을 협력자로서보다 경쟁자로서 만나고
인간의 가치는 돈과 생산성으로만 평가되었다.

의사, 변호사, 성직자, 장인 등 각각의 신성한 역할이 있는 직업들이
모두 돈으로만 가치가 매겨지게 되었고
가족관계도 금전 관계로 격하되었으며
시골은 도시에 종속되었다.  
맑스는 이것을 '소외'라고 불렀다.
 
맑스가 바꾸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경제제도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고

가난 자체보다 더 싫어했던 것은 
인간이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2. 
 
'공산당 선언'을 읽으며 내가 맑스주의자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알았다.

맑스는 기본적으로 역사에 대해 낙관적이다.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좋은 세상이 도래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은 '우정의 선언'으로 끝난다.

타도하라, 가 아니다.
 
All workers on lands, Unite. 
이 땅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여, 힘을 합치자!
 
하지만 맑스가 '공산당 선언'을 썼던 1848년으로부터
170여 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체제가 아무리 바뀌어도
또 새로운 종류의 소외가 생긴다는 것을
나는 역사를 통해서 봐버렸다. 
 

3.

맑스는 이 책에서 이상 사회로 가기 위한 길은 여러 가지지만
다음의 것들은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10개의 강령을 내걸었다.
그걸 읽고 깜짝, 아주 깜짝 놀랐다.
 
맑스가 주장한 강령의 절반 이상이 이미
많은 선진국들에서 제도로 안착되었기 때문이다.
 
무상교육, 아동노동 금지, 소득에 누진세를 부과하는 것,
중앙은행 등 국책은행의 존재, 철도 등 교통의 국유화...
 
이런 것들이 당대에는 가장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공산주의자나 외치는 그런 주장... 
 
그런데…

그의 주장이 많은 부분 선진국에서는 실현된 지금 
소외는 사라졌는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외롭고 불안하고 
소외감과 무가치함을 느끼고 우울해한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4.
 
역사를 계급 투쟁의 과정으로 본 맑스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점이 많다.
계급 투쟁을 단순히 노동자-자본가의 관계가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반의 영역에서
자원과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싸움으로 이해한다면
맑스의 주장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인간은 계급과 권력만을 위해 사는 존재는 아니다.  
인간에겐 의미, 관계, 성장, 공동체도 중요하다. 

인간은 권력과 자원을 위해 싸우는 존재기도 하지만
의미를 위해 분투하는 존재기도 하다. 
 
맑스는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점을 정확히 보았다.

그런데 왜 그는 제도가 바뀌고 사회 구조가 바뀌면
의미의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했을까?

역사의 진보를 확신했을까? 
 
29살의 청년이 지닌 펄펄 끓는 에너지 때문이었을까? 

'공산당 선언'은 29세의 청년이 세상에 던진 출사표였다.
 
세상을 해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데 자신의 삶을 걸겠다는 담대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내가 공산당 선언에서 가장 감동한 부분은

맑스의 주장이 아니라

29세 청년의 그 열정과 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그것을 떠받치는 학문적 천재성과 행동하는 실천력이었다. 
 
5.
 
2026년을 사는 나는 더이상 젊지 않고
맑스 사후에 전개된 백년 이상의 역사를 알고 있기에
'소외'의 원인이 자본주의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민주주의가 와도 혐오는 새로 자라고
복지가 늘어도 외로움은 남고
경제가 성장해도 무가치함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아마도 인간의 욕망과 고통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사회가 아무리 좋아져도 인간은 여전히 병들고 늙고
그리고 무언가에 집착한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나는 누구에게 필요한 존재인가
나는 사랑받고 있는가
나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제도적인 복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공동체'만이 줄 수 있지 않을까. 
복지 제도는 기존 공동체를 유지하고 확장할 힘은 줄 수 있지만
이미 산산조각난 공동체를 새로 만들 힘은 주지 못할 것이기에... 
 
그렇다면 공동체가 부서진 시대에 사는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길을 찾아야 할까. 
 
6.
 
'공산당 선언'은 답이 아니라 질문만 잔뜩 남긴 책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유에서 나는 우리 시대에
모두가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맑스가 던진 질문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인간의 모든 활동이 그 자체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채
생산성과 효율성, 가성비의 기준으로만 평가되는 시대.
그래서 '돈'이 안 되는 돌봄과 보살핌은 점점 밀려나고,
사람들은 이전보다 풍요로워졌지만 더 외로워졌으니까.
맑스가 말한 '소외'는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까.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우리에게 의미를 주어야 한다는
이 당연한 명제도 아직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맑스처럼 세상의 진보를 낙관하지 않고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 믿지도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쁜 세상이 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 
히틀러 같은 인물이 등장하거나 전쟁이 터지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다. 
 
좋은 세상을 약속할 수는 없지만
나쁜 세상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는 것,
투표는 물론이고 할 수 있는 실천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내게 건넨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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