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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생의 한가운데

연민은 언제 시작되는가

by 릴라~ 2026. 4. 6.

 
지난 2월은 많이 힘들었다.
시시때때로 화가 올라왔다. 
몸도 정신도 피곤과 긴장이 한계에 오니
내가 예상 못한 순간에 화가 폭발을 하곤 했다. 
정말 사소한 일에 감정이 폭발해서 나도 깜짝 놀랐다. 
한계에 이르렀다는 신호였다. 
 
학교에서 한참 정신없이 일하는데
이대로 죽을 것 같다고 은행 가서 돈 찾아야겠다고
그런 류의 전화를 받고 달려간 것만 세 번이니... 
 
화는 나에게도 김여사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니
정말 자제해야겠다 결심하고 결심했다.  
병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절대 짜증내지 말자고...
김여사도 자신이 불안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일 뿐일 텐데...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당연히...
 
그런데 얼마 전, 그 모든 짜증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일이 생겼다. 
어떤 이야기 끝에 김여사가 눈물을 글썽이길래 내가
왜 그러시냐고 물어봤던 것 같다. 
김여사가 대답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고. 
기력도 없고 하루하루가 힘들다고. 
 
아...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온통 채웠던 짜증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무한한 연민이 깃들기 시작했다.
너무 불쌍하고 안 돼서... 그저 도와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측은지심이랄까 자비심에 가까운 감정이 파도처럼 가슴에서 일렁거렸다. 

나에겐 무언가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지난 일 년간 김여사의 반복되는 불안, 공황 증세로 
나는 지칠 데로 지쳐 있었다. 
도와주는 형제는 하나도 없었다. 오직 내 몫이었다. 
그 일 년은 내 의식과 무의식에 김여사를 엄마에서
나를 피곤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일종의 '가해자'로 
자리매김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김여사가 실기 힘들다고 말한 그 순간 모든 게 바뀌었다.
김여사의 고통이 글썽이는 눈물과 흔들리는 목소리 속에서
숨소리만큼 가깝게 온전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커다란 고통을 겪고 있는 존재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메마른 우물에서 샘물이 다시 솟구치듯이
연민의 감정이 내 마음에서 흘러넘쳤다. 
 
우리는 사람을 껍데기만 보고 산다. 그 껍데기는 행동이다. 
그 행동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녹초가 되기에
다른 감정을 느낄 새가 없다.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순간에 나를 힘들게만 하는 것 같은 그가
'고통 받는 존재'임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
그의 '고통'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올 때 우리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 고통 앞에서 눈을 감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진다. 
몸의 피곤도 그로 인한 짜증도 우리가 인간인 이상 계속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유가 생긴다.
측은지심은 남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힘이 된다.
 
어떤 면에서 '연민'은 능력이 아니라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면
연민은 가능하지 않을 것 같기에. 
내가 김여사와 대화한 그 잠깐의 순간이
내게는 연민을 열어준 창문이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는 한 학급에 30명이나 되는 학생들,
반복되는 수업, 바쁜 문서 수발, 각종 사건사고 처리까지
최소한의 연민을 품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 학생들의 고통이 보인다기보다는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짜증과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다.
학생들의 반복되는 문제 행동만 보이지 그들의 고통은 볼 수 없는 구조였다.
 
물론 모든 순간에 연민을 품으면 사람이 버텨낼 수가 없다. 
하지만, 학생들의 행동 뒤에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삶에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연민은 가끔 열리는 창이지만
그 가끔 열리는 창이 우리를 내가 만든 고통에서 구해낸다.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고통에서, 그 감옥에서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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