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알아주지 않는 삶도 가치가 있을까? 우리는 보통 성공하거나 혹은 무엇이든 이루어낸 게 있어야 그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는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인생책으로 꼽는 이유는 그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내겐 인생책까진 아니지만, 오래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소설을 간접경험이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소설 읽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특별한 경험이다. 활자를 통해 타인의 삶속에 빠져들어가기. 등장인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의 감정을 함께 느끼기. 책장을 다 덮은 후에 내가 따라간 그 삶에 남긴 질문과 여운을 음미하기.
그런 면에서 '스토너'는 조금 색다른 경험을 선물하는 책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따라가는 일대기 형식의 소설. 요즘은 이런 소설이 거의 없다. 평범한 한 사람의 생을 재미있게 쓰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소설은 대부분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토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다뤘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의 남자 버전이라 할 만하다. 물론 결말은 전혀 다르지만.
그런데 특별한 사건이랄 만한 게 없는 이 한 사람의 일대기가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책장을 펼친 순간 끝까지 단숨에 읽게 되어 놀랐다. 장면마다 감정의 밀도가 높아서이리라. 아무 일 없는 인생을 끝까지 읽게 하는 힘,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 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왜 이 소설이 50년이 지난 지금 뒤늦게 호평을 받는지 이해할 것 같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우연히 공부할 기회를 얻어 영문학을 전공하고 이름 없는 조교수로 생을 마친 스토너. 소설은 편집되지 않은 그의 생애 전체를 보여준다. 학업, 취업, 결혼, 육아 등으로 흘러가는 일상이다. 학자로서 큰 업적을 이룬 것도 아니고 결혼도 고통스럽기만 하고 자녀교육도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사회적인 인정이나 성공도, 가족 관계가 주는 따스한 온기도 없는 인생. 뭐 하나 제대로 풀린 것 없는 평범한 인생이다.
그런데 이 인생이 왜 특별하게 느껴질까. 그의 순수와 정직 때문이다. 스토너는 세상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끝까지 자기 기준을 꺾지 않는다. 굉장히 성숙한 순수다. 그는 정직함을 고수하기에 권력 싸움에서 밀리고 사랑도 완전히 얻지 못하고 직업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자기 세계를 끝까지 고수했고 불행 속에서도 끝까지 버텨내며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세상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타락시키지는 않았다. 그는 세상을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지만 그 자신의 순수는 지켜냈다. 그리고 불행 속에서 무너지지도 않았다.
스토너는 성공한 인물이 아니라 끝까지 무너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가 강의실에서 처음 문학을 만난 장면, 캐서린과의 조용한 사랑, 딸과의 어긋남, 마지막 병상 장면까지... 삶의 모든 고비마다 스토너는 버텨내었고 시류에 따라 자기 기준을 바꾸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는데 끝까지 읽히는 이유는 바로 스토너의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스토너의 삶은 폭발적인 비극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드는 고통, 조용한 비극을 보여준다. 그 비극 속에서도 그는 문학에의 열정을 놓지 않았고 자신의 선택을 그냥 살아갔다. 스토너는 진짜 자기 삶을 살았다. 타인이 알아주지 않는 비범한 삶이었다. 동시에 품격 있는 삶이기도 했다. 다 읽고나서 이상하게 평온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그것이 아무리 울퉁불퉁하다 하더라도 타인의 삶이 아니라 자기 삶을 살았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정감과 평화.
한 인간의 편집되지 않은 삶 전체. 그리고 그가 살아가는 방식. 타인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 삶이 얼마나 품격있는지를 드러내주는 소설. 드러나야지만 인정 받아야지만 가치를 느끼는 요즘 세태와 정반대의 삶을 그린 소설. 스토너가 회자 되는 이유로 충분할 듯하다.
버티는 것도 하나의 삶이며 버티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스토너는 일깨워준다.
50년만에 터진 인생 소설 / 존 윌리엄스 ‘스토너’
https://youtu.be/kYmCEoQ2JoI
50년만에 터진 인생 소설 / 존 윌리엄스 ‘스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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