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하는 거창한 단어를
젊었을 땐 잘 이해를 못했다.
아니, 근데 왜 구원을 받아야 하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개신교도들 말고도
문학에서도 노상 쓰는 말이 ‘구원’이다.
이제 나는 이 단어의 뜻을 알아버렸다.
자신에 비참한 상태임을 자각할 때
구원이 필요한 존재가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의 터널을 지나던
올여름, 내게 진정한 구원이 되어준 건
러닝이었다.
그리 크지 않지만 숲 사이로 트랙이 깔려있던
노변공원을 매일 한 시간 뛰었다.
집을 떠나 어디 멀리 가는 건 엄두도 못 낼 때
이 한 시간이 내게 삶을 버틸 힘을 주었다.
다리와 심장이 뛰는 한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완전한 절망으로 내몰 수 없음을 알았다.
하루는 아기새 한 마리를 만났다.
아직 날지 못하고
날 보자 가까이로 숨어버린 엄마를 기웃거린다.
안녕, 나도 러닝은 초보야!
우리 잘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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