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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에세이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 헤르만 헤세] _ 세계문학의 가치

by 릴라~ 2025. 12. 17.

별 생각 없이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에 이끌려 집어들었다가

대문호의 솔직담백한 독서에 대한 소회에 스르르 빠져든 책.

독서의 매력을 머릿속으로 다시금 생각하고 정리하고 그리고 책을 더 읽고 싶도록 만들어준 책. 

 

1차 대전 때도 독이 전쟁포로들에게 그들이 최소한 인간임을 일깨워주기 위한

짧은 서책을 보내기 위해 분투한 내용도 인상 깊었다. 

행동하는 작가로서의 헤세의 일면을 보게 되어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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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런 이유로 감히 주장한다. 남독은 결코 문학에 영예가 아닌 부당한 대접이라고 말이다. 책이란 무책임한 인간을 더 무책임하게 만들려고 있는 것이 아니며, 삶에 무능한 사람에게 대리만족으로서의 허위의 삶을 헐값에 제공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책은 오직 삶으로 이끌어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독자들에게 불꽃 같은 에너지와 젊음을 맛보게 해주지 못하고 신선한 활력의 입김을 불어넣어 주지 못한다면, 독서에 바친 시간은 전부 허탕이다. p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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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책의 수준이 아니라 독서의 질이다. 삶의 한 걸음 한 호흡마다 그러하듯, 우리는 독서에서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더 풍성한 힘을 얻고자 온 힘을 기울이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재발견하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 몰두할 줄 알아야 한다.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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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일상을 잊고자 책을 읽어서도 안 된다. 이와는 반대로 더 의식적으로, 더 성숙하게 우리의 삶을 단단히 부여잡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가 책으로 향할 때는, 겁에 질린 학생이 호랑이선생님에게 불려가듯 백수건달이 술병을 잡듯 해서는 안 될 것이며, 마치 알프스를 오르는 산악인의 또는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병기고 안으로 들어설 때의 마음을 가져야 하리라. 살 의지를 상실한 도망자로서가 아니라, 굳은 의지를 품고 친구와 조력자들에게 나아가듯이 말이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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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이라는 세계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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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과 책이 없이는 역사도 없고 인간이라는 개념도 존재할 수 없다. 혹 누군가 소규모의 공간에, 이를테면 집 한 채나 방 한 칸에 인간정신의 역사를 집약하여 소유하고자 한다면, 이는 오로지 책을 수집하는 형태로만 가능할 것이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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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책은 더 이상 비밀의 세계가 아니며 만인에게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시각에서 보면 이는 진보야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정신의 가치 절하이자 저속화이기도 하다.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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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통한 표현과 이러한 표현을 글로써 전승하는 일은 인간이 역사와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보조수단 정도가 아니라 유일무이한 수단임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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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 좁고 단순한 범위에서 살펴보면 책의 운명이란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한지를 날마다 목도할 수 있다. 책들은 때로 극도의 황홀경으로 우리를 매혹하는가 하면 때로는 그 선물을 감추기도 한다. 많은 작가들이 생전에 알아주는 이(그저 소수 혹은 아무도) 없이 세상을 살다가 떠나면, 우리는 그들의 사후에 그것도 대개 한 몇십 년쯤 지난 후에 그들의 작품이 마치 시간을 초월한 듯 갑자기 빛을 발하며 살아나는 것을 보곤 한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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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한한 책의 세계는 모든 진정한 독자들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보이며, 개개의 독자는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추구하며 경험한다. (...) 수천의 길이 울창한 숲을 가로질러 수천의 목적지로 우리를 인도하지만 그 어떤 목적지도 최종은 아니요, 그 너머마다 광활한 세계가 또 새롭게 펼쳐진다.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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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전혀 습득하지 않는 독자, 생소하고 새로운 문학을 아예 한 번도 접하지 않은 독자라 하더라도, 독서를 무한히 계속하고 더 세밀화하고 더 향상시키며 강화할 수 있다. 어떤 사상가의 어떤 책, 어떤 시인의 어떤 시라도, 거듭하여 읽을 때마다 늘 새롭게 다가오고 다르게 이해되며 색다른 울림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예컨대 나는 괴테의 '친화력'을 지금까지 네 번쯤 읽었는데, 만약 지금 그 책을 또 한 번 읽는다면 그것은 젊은 시절 처음으로 엄벙덤벙 읽었던 '친화력'과는 완전히 다른 책 아니겠는가!

 

바로 이 점이 독서체험의 놀랍고 불가사의한 측면이다. 우리가 좀 더 세심하고 예민한 감각으로 더 직접적인 연관 속에서 읽을 줄 알게 되면, 그만큼 더 모든 사상과 문학을 그 일회성과 개별성, 엄밀한 제한성 속에서 파악하게 된다. 나아가 모든 미와 매력이란 바로 이러한 개별성과 일회성에 바탕을 둔다는 점도 알게 된다. 이와 동시에 더욱 뚜렷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온 세상 수백 수천의 목소리들이 결국 모두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며,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신들을 부르며, 동일한 소망을 꿈꾸며, 동일한 고통을 토로한다는 점이다. p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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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학에서도 피와 흙과 모국어가 전부는 아니어서 그것을 넘어서 인류가 있으며, 또 가장 멀고 낯선 곳에서도 고향을 발견할 가능성, 너무나 굳게 닫혀 있어 가까워질 수 없을 듯하던 것과 마음이 통해 사랑하게 될 가능성은 늘 열려있으니 놀랍고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나는 내 인생의 전반부에 인도와의 만남을 통해, 뒤에는 중국의 정신을 접하면서 이를 깨쳤다.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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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인간만 쓰는 게 아니다. 손 없이도 펜이나 붓, 종이나 양피지 없이도 글은 써진다. 바람과 바다, 강과 시내가 글을 쓰고, 동물들도 쓰며, 어디선가 대지가 이맛살을 찌푸려 강물의 길을 막고 산이나 도시 하나를 흔적 없이 날려버릴 때면 땅도 글을 쓴다. 하지만 겉보기에 맹목적인 힘들의 작용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을 글로, 다시 말해 객관화된 정신으로 바라보려 하고 또 그럴 줄 아는 것은 오로지 인간 정신뿐이다. 뫼리케가 그린 사랑스러운 새의 종종걸음에서부터 나일 강과 아마존 강의 흐름, 완강하되 무한히 긴 세월을 두고 형태를 줄곧 바꿔가는 빙하에 이르기까지 자연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이 우리에게는 글로, 표현으로, 시로, 서사로, 드라마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경건한 이들의 방식이다. 어린아이와 시인이 그러했고 참된 학식의 소유자인 슈티프터가 지칭한 '온유한 법칙'의 수종자들이 모두 그러했다.

 

그들은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사람들처럼 자연을 약탈하거나 능욕하고자 하지도, 또한 두려워 떨며 그런 거대한 힘을 숭배하지도 않으며, 다만 바라보고 분별하고 감탄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자 한다. p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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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은 잠시 후건, 수천 년이 지나서건 언젠가는 사라진다. 세계정신은 모든 글과 그 모든 글의 소실을 읽으며 또 즐거워한다. 우리가 그중 몇몇이나마 읽고 그 의미를 헤아리면 다행이다. 어떤 글에도 없고 그러나 모든 글에 내재되어 있는 이 의미는 언제나 한 가지다. 나는 내 글에서 나름대로 그 의미를 만지작거렸고, 조금 구체화하기도 가리기도 하였으리라. 나라고 무슨 새로운 것을 말하지도 않았고, 말하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많은 현인들과 시인들이 누차 이야기했던 것이니, 그때마다 조금씩 달라서 명랑할 때도 비감할 때도 있었으며, 쓰디쓰기도 달콤하기도 했다. 

 

어휘를 달리 고른다든지 문장의 구조나 길이가 달라질 수 있다. 또 팔레트에 색깔들을 다르게 정렬해 사용할 수도 있고, 단단한 연필을 쓰거나 부드러운 연필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오직 하나일 뿐이다. 그 오래된 것, 거듭 얘기되고 거듭 시도되던 것, 영원한 그것이다. (...) 이들이 이토록 애쓰며 말하고자 하는 것, 말할 가치가 있으되 결코 다 말해질 수 없는 것, 그것은 영원토록 하나이리라. p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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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한다면, 자기 직업의 과제가 놓여있는 바로 거기에서 결판을 내고 자기 존재를 입증하는 편이 더 옳다.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그 작가의 사적 생활의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른다는 견해는 상당히 타당한 면이(정확히는 절반의 타당성)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작품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예술이 풍요에서, 행복에서, 만족과 조화에서 잉태된다는 생각은 아둔하고 근거 없는 추측이다. 인간의 모든 업적이 오직 곤경을 통해, 혹독한 압박 하에서만 생겨나는데, 어째서 유독 예술만은 예외이겠는가?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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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언젠가는 그칠 날이 올 것이다. '병적이다'라는 단어가 지금의 의미를 잃을 때가 말이다. 질병과 건강의 영역에서도 상대성이 있음을, 오늘의 병이 내일의 건강이 될 수도 있음을, 건강한 상태라는 게 항상 확고부동한 건강의 징표일 수는 없음을 인식할 때가 올 것이다. 고귀한 정신과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타고난, 일체의 평가를 넘어서는 탁월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에게는 선과 악 그리고 미와 추에 관한 현실의 관습들에 둘러싸여 한다는 것이 어쩌면 갑갑한, 아니 끔찍한 억압일 수 있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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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들은 공상가를 곧잘 광인에 비교하곤 한다. 예술가나 수도자나 철학자들처럼 자기 내면의 깊은 심연을 파고들어 간다면, 분명 당장에 미쳐버리고 말 터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심연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건 무의식이라 하건 아니면 또 다른 뭐라 칭하건 간에, 우리 삶의 모든 추진력은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영혼 사이에 보초병, 즉 의식, 도덕률 같은 치안당국을 하나씩 세워두어, 그 영혼의 심연에서 나오는 것을 직접 대면하는 대신 늘 먼저 이런 장치들의 검열을 거친다. 반면에 예술가들은 영혼의 영역보다는 오히려 이들 경비초소에 끊임없이 불신의 눈길을 보낸다. 시인은 마치 두 집 살림 하듯 이편과 저편,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남몰래 넘나든다.

 

예술가가 이편, 즉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범속한 낮의 세계에 머무를 때면, 그 모든 빈곤한 언어들이 그를 짓눌러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그야말로 형벌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영혼의 세계인 저편에 들어서면 말과 말이 마치 봇물 터지듯 온사방에서 마술처럼 흘러든다. 별들이 노래하고 산봉우리들은 미소를 지으며, 세상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여 단어 하나 철자 하나도 모자람이 없고, 모든 것이 말로써 표현되고, 전체가 조화롭게 울려퍼지며, 전부 구원받으니 이것이 바로 신의 언어가 아니랴. p1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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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와 사고방식을 접해 그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그를 친구로 삼는 것을 뜻한다. 특히나 문학작품을 읽노라면 비단 몇몇 인물과 사건들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작가의 방식과 기질, 내면의 풍경, 나아가 작풍이나 예술적 기법, 사고와 언어의 리듬까지 접하게 된다. 한 권의 책과 사로잡힐 때, 작가를 알고 이해하기 시작해 그와 모종의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책은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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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책을 통해 스스로를 도야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고자 하는 데는 오직 하나의 원칙과 길이 있다. 그것은 읽는 글에 대한 경의, 이해하고자 하는 인내, 수용하고 경청하려는 겸손함이다. 그저 시간이나 때우려고 읽는 사람은 좋은 책을 아무리 많이 읽은들 읽고 돌아서면 곧 잊어버리니, 읽기 전이나 후나 그의 정신은 여전히 빈곤할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책을 읽는 사람에게 책들은 자신을 활짝 열어 온전히 그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읽는 것은 흘러가거나 소실되지 않고, 그의 곁에 남고 그의 일부가 되어, 깊은 우정만이 줄 수 있는 기쁨과 위로를 전해주리라.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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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교양이란 완성을 추구하는 모든 노력이 그러하듯 어떤 목적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육체의 힘을 기르고 기예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혹은 강해지겠다는 목표때문이기보다는 생명력과 자신감을 고양시킴으로써, 그리고 즐겁고 행복한 생활과 건강하고 안전하다는 확신을 더욱 강화시켜 줌으로써 그 자체로 보상을 받는다.

 

'교양' 즉 정신적, 영적 완성을 향한 노력도 이렇듯 어떤 특정 목표를 향한 고생스러운 노정이 아닌, 원기왕성한 의식의 확장이요 삶을 더욱 풍요롭고 신명나게 만들어주는 가능성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양은 진정한 신체단련과 마찬가지로 성취인 동시에 계기이며 어느 지점에 있건 목표를 이미 이룬 것이되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또 무한 속을 여행하는 것이고 우주 만물 속에서 공명하는 것이며, 시대를 초월한 어우러짐이다. 교양의 목표는 특정 능력이나 기능의 향상이 아닌,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거를 이해하며 준비된 자세로 두려움 없이 미래를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나 교양으로 인도하는 길 중 으뜸이 되는 하나가 '세계문학의 탐구'다. 즉 여러 민족들의 작가와 사상가들의 작품을 통해 지난 세월이 우리에게 넘겨준 사상과 경험, 상징, 상상과 소망의 그 엄청난 보고를 차근차근 접하며 알아가는 것이다. 이 길은 끝이 없으니 그 끝까지 이를 자가 아무도 없다. 어느 위대한 문화민족의 문학 하나라도 무불통지가 불가능한 마당에 더군다나 온 인류의 문학에 통달한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수준 높은 사상가나 작가의 작품 하나라도 속 깊이 이해한다면, 이는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의식과 이해를 접하는 하나의 성취이자 행복한 경험이리라. p14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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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세계문학과 생동적인 관계를 맺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어떤 정해진 도식이나 교육과정보다는 자신에게 특별히 와닿는 작품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길은 사랑로 걸어야지, 의무로 걷는 길이 아니다. (...) 길은 수천 가지다.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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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의 과제인 조촐하나마 훌륭한 세계문고를 갖추는 일을 본격화하려고 한다. 제일 먼저 확인하게 되는 모든 정신사의 원칙이 하나 있는데 가장 오래된 작품들이 가장 오래간다는 것이다. 오늘 유행하며 주목을 끄는 것이 내일이면 배척받을 수 있고, 오늘은 참신하고 흥미롭다가도 내일모레면 시들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수백 년 세월을 버티면서 잊히거나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라면, 그에 대한 평가는 아마 우리 평생 큰 변동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인류정신의 가장 오래되고 신성한 증언들, 즉 종교와 신화의 책들로 시작해보자.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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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국 서적들을 접한 지 벌써 수십 년이 흘렀지만 기쁨은 나날이 커져 그중 한 권씩은 대개 내 침대 머리맡에 둔다. 저 인도인들에게 결여되었던 것, 즉 삶에의 밀착, 최상의 도덕적 요구에 맞추기로 결단한 고결한 정신적 경지와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삶의 즐거움과 매력이 이루는 조화, 고상한 정신 세계와 소박한 삶의 기쁨 사이를 폭넓게 오가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여기에는 넘치게 들어있었다. 인도가 고행과 금욕으로 세상을 버림으로써 감동적인 경지에 이르렀다면, 중국은 본성과 정신, 종교와 일상이 대립이 아닌 상호 보완의 관계로 양자 모두 긍정되는 그러한 정신 세계를 일구어냄으로써 인도 못지않게 비범한 경지에 도달했다. 극단적인 요구를 내세우는 인도의 금욕적 지혜가 청교도적인 젊은이라면, 옛 중국의 지혜는 분별력과 유머를 겸비한 노회한 어른이었다. 경험 때문에 좌절하지도 잘 안다고 무례히 굴지도 않는 그런 어른 말이다.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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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은 책을 약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무궁한 생명의 책들을 사랑하기는커녕 우습고 하찮게 여기는 것 같다. 책을 사랑하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 짧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카페에 가서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면서 몇 시간씩 보낸다. 학교나 공장, 증권거래소나 위락시설 등지에서 이루어지는 '실제' 세상은 참으로 활발하게 돌아가지만, 그 속에 몸담고 있다고 과연 진정한 삶에 더 가까운 것일까? 날마다 한두 시간씩 옛 현자와 작가들에게 할애하는 것 이상으로? p19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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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아무리 멋진 카펫이 깔려있고 호화로운 벽지와 명화가 온 벽을 뒤덮고 있다 한들, 책이 없다면 가난한 집이다. 또한 책을 알고 소유하고 아끼는 사람만이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도록 도와줄 수 있다. 자녀들이 엉터리에 탐닉하거나 최고의 것을 너무 성급히 맛보아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지켜줄 수 있으며, 이들 젊은 영혼들 앞에 미와 정신의 나라가 활짝 열리는 그 잔잔한 과정을 함께 경험할 수도 있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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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쟁 시절의 인쇄물로, 프랑스에 포로로 억류된 독일군에 대한 지원업무를 맡고 있던 내가 직접 편찬하고 발행한 책자들이었다. 3년간 격주로 수천 부씩 찍어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와 인도 등지로 보냈던 '독일 전쟁포로를 위한 일요 소식지' 꾸러미도 나왔다. 전쟁포로들에게 보내줄 목적으로 간행한 소책자들도 있었다. 에밀 슈트라우스, 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만 형제, 고트프리트 켈러, 슈토름 등과 나의 단편들을 소박하나마 깔끔하게 찍어낸 것으로, 당시 주문이 1만 부 넘게 들어왔었다. 이제는 보기 힘드렁진 이 소책자들을 나는 여태 고스란히 소장하고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그 시절, 정치와 민족을 초월하여 옛 독일문학의 정신을 통해 무언가 일깨워보고자 하는 노력을 담은 책자들이었기에 나로서는 지금도 여전히 애착이 가는 책들이다.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보낸 소식들'이라는 독특한 유인물도 나왔다. 근본은 혹독하나 특이하게 무미건조한 그 시절의 기록들은 당시 베른 독일 공사관의 우리 부서에서 오직 내부용으로 발행한 것이다. 여기에는 소수일망정 어떻게든 전쟁병기 속의 의미랄까, 아니 그게 불가능하다면 정이나 사랑 같은 입김을 불어넣어 보고자 했던 당시 우리의 처절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의 첫 전쟁 기고문들도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1916년부터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쓴 글들도 있었다. p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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