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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기록/유럽, 중동

Pilgrim of the trust / 프랑스 떼제 공동체 '06

by 릴라~ 2006. 9. 28.


 
Jesus Christ, Your light shines within us.
Let not my doubts and my darkness speak to me.
Let my heart always welcome your love.

그리스도여, 내 어둠이 내게 속삭이지 않게 하시고,
내가 당신 사랑을 맞이하게 하소서.



여름이면 전세계에서 모인 수천의 젊은이들이
떼제의 언덕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종이 울리고 저녁 기도가 시작이 되면
수천 명이 동시에 Veni creator spritus를 노래 불렀다.

기도를 마치고 한밤중에 바라크로 돌아올 때면
떼제의 언덕 위로 별들이 밝게 빛나고 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떼제에서 치유의 길을 발견했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거듭 발견했는데...

그 떼제에 9년만에 다시 왔다.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여기에선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화해의 교회' 안에 들어서자 반가움과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이곳에서 전세계에서 모인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기타 종교 사람들과 함께 부른
환희의 노래는 내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월드컵 기간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그 때만큼 많지는 않다.
아무래도 로제 수사님이 돌아가신 영향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수사님이 계시지 않는 떼제는 소중한 뭔가가 빠진 것 같았다.

그 분이 계실 때만큼 가슴 벅찬 분위기는 없었다.
그러나 떼제 공동체의 고요와 평온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다시 만나는 화해의 교회 안 스테인드글라스.
유럽 대성당의 그 어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도 떼제의 것만큼 감동적이진 않다.

성서는 위대한 만남의 이야기다.
떼제의 스테인드글라스들은
하나같이 그 만남의 첫 순간을 묘사한 것.

마리아와 천사, 예수와 제자들, 예수와 사람들...
그 첫만남의 순수와 열정, 놀라움과 머뭇거림, 그것을 무릅쓰는 용기,
그리고 가슴에서 우러나는 환영의 몸짓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볼 때마다 마음이 살풋 설렌다.

 


9년 전, 떼제에서 나는 처음으로 배웠다. 침묵을, 아니 침묵이 주는 평화로움을.
하느님 앞에 그저 말없이 앉아 있는 것이 기도가 될 수 있음을,
침묵이 단순한 무가 아니라 치유의 힘이 있음을 배웠다.

단순한 선율을 반복하는 공동 기도의 아름다움,
수천명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아우라와 그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그 큰 공동체 안에는

우리에게 '살 맛'을 주는 기쁨과 환희가 있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가 우리 가운데 있는 것처럼...
떼제 공동체는 부활을 경축하는, 삶을 경축하는,

너와 나의 존재를 경축하는,
축제의 자리였다.  

9년 전 떼제를 떠나면서, 다시 이곳을 찾을 때는
'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는데
어느새 삶에 지친 방랑자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지쳐 있었고, 목표를 상실하고 있었고, 피곤했다.
무언가를 찾고는 있었지만, 무엇을 찾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삶에서 무언가 놓쳐 버린 게 있다는 것을.
가슴의 소리를 따라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나 역시 서서히
일상에 매몰되었던 것 같다.
삶에서 신비의 자리를, 영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왜 사는지 모르겠어'라는 어른들의 무리에 합류한 것이 부끄러웠고
순례자의 영혼이 너무나 그리웠다.

 


여행 오면서 책을 한 권 가져왔다. 로제 수사의 '님의 사랑은 불이어라'.
떼제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

로제 수사는 이해할 수 없는 갖가지 충동으로 가득찬
우리 자신의 심연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심연이 우리를 삼키지 않고
그 심연으로부터  샛별이 솟아나리라고 말했었다.
참된 자유는 투신에서 시작된다고,

그러면 하느님 안에서 '감히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삶'이 가능하다고.
'감히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삶',
얼마나 그것을 꿈꾸었던가.

로제 수사는 우리가 가장 먼저 환영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라고,
나날의 삶 속에서 자신을 축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어느새 이 모든 것과 담을 쌓고 살아가고 있었다.
내 감성은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그것은 말 뿐인 것이다.

그러나 나의 또 다른 마음이 가만히 말했다.
다시 삶을 축하하고 싶다고, 존재의 기쁨을 재발견하고 싶다고,
그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수사님,
9년 전의 그 만남이 제게 가져다 준 빛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145개국 젊은이들과 함께 한 축제, 그 큰 일치,
제 일생의 정말 소중한 순간이었어요.
한 폴란드 친구가 그랬죠.
떼제는 Perfect world의 상징이라고.

이상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꽃피는가를
그 피어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저는 거기에서 봤어요.

그리고 당신은 감히 기대치도 못했던 삶을 일깨워주었죠.
사랑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로써 삶을 바치는 모험을 감행하라고 했죠.

그러면 그대의 사막에 꽃이 피어나리라고,
축제는 끝이 없으리라고...

Brother Rose,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P.S.  떼제의 그 많은 노래 중에서
오늘은 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당신이야말로 부활의 영성, 기쁨의 영성을
몸소 실천한 분이었으니까요.

당신은 늘
다가오는 봄을 이야기했으니까요.

축제는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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