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전인가, 지도교수님 및 동료들과 밥 먹다가 나온 이야기.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거였다. 물론 나는 이 정도면 지극히 평범하다고 주장했고....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다름'일 뿐이지, '비범'은 결코 아니다. 차이가 곧 비범인 것은 아니다. 같음과 다름이 수평적 차이라면, 평범과 비범은 수직적 차이가 아닐까. 내 기준으로는, 비범하지 않은 것은 다 평범한 것으로 간주된다. 내 사고방식이 아무리 타인과 다르다 하더라도(사실, 그다지 다르지도 않다. 그런데 다르게 여겨짐이 늘 신기하다) 나는 평범의 범위에 포함된다. 내게 그다지 비범한 점은 없기 때문이다. 비범함이란, 세상을 앞서가는, 세상의 흐름에 파장을 일으키는, 역사를 만드는, 그런 뛰어남을 일컫는 것이므로. 사유의 면에서, 행동/실천의 면에서, 삶의 면에서 진정으로 비범한 사람들이 존재하므로.
비범함이 드문 현상이기 때문에 또한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지닌 '다름'이 '비범'의 수준이 아닌 것에 만족한다. 자기 그릇을 알았다는 의미이다. 아마 앞으로도 평범함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지만, 나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소중히 여기고 가꾸어가고 싶다.
요즈음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지나치게 특별하게 키우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자녀를 특별하게 기르고자 하는 욕망이, 현재 자녀의 모습을 잘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들 내면의 자연스러운 펼쳐짐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 각자의 다름은 그들의 다양한 잠재력을 의미할 뿐 그것 자체가 비범함은 아니다. 특별하게 만들겠다는 목적의식을 버리고, 그들이 본래부터 세상에 지니고 나온 다름을 그저 소중히 여기고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을 때, 오히려 비범함이 자연스럽게 자랄 수 있지 싶다. 그 때 타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축하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비범한 사람만큼이나 멋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개개인이 지닌 무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요새는 그 모든 차이를 뛰어넘는 존재의 공통적 기반에 더 마음이 쏠린다. 나이가 들어가는 징조인지 모르겠으나. 같음/동일성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 모든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지구라는 별에 잠시 왔다가는 여행자라는 공통점, 삶속에서 저마다 헤쳐가야 할 운명이 있다는 공통점, 그런 것들에 마음이 간다. 나의 운명이 곧 그대의 운명이고, 그대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일 수 있으리라. 우리는 다르면서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한 달쯤 전인가, 지도교수님 및 동료들과 밥 먹다가 나온 이야기.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거였다. 물론 나는 이 정도면 지극히 평범하다고 주장했고....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다름'일 뿐이지, '비범'은 결코 아니다. 차이가 곧 비범인 것은 아니다. 같음과 다름이 수평적 차이라면, 평범과 비범은 수직적 차이가 아닐까. 내 기준으로는, 비범하지 않은 것은 다 평범한 것으로 간주된다. 내 사고방식이 아무리 타인과 다르다 하더라도(사실, 그다지 다르지도 않다. 그런데 다르게 여겨짐이 늘 신기하다) 나는 평범의 범위에 포함된다. 내게 그다지 비범한 점은 없기 때문이다. 비범함이란, 세상을 앞서가는, 세상의 흐름에 파장을 일으키는, 역사를 만드는, 그런 뛰어남을 일컫는 것이므로. 사유의 면에서, 행동/실천의 면에서, 삶의 면에서 진정으로 비범한 사람들이 존재하므로.
비범함이 드문 현상이기 때문에 또한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지닌 '다름'이 '비범'의 수준이 아닌 것에 만족한다. 자기 그릇을 알았다는 의미이다. 아마 앞으로도 평범함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지만, 나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소중히 여기고 가꾸어가고 싶다.
요즈음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지나치게 특별하게 키우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자녀를 특별하게 기르고자 하는 욕망이, 현재 자녀의 모습을 잘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들 내면의 자연스러운 펼쳐짐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 각자의 다름은 그들의 다양한 잠재력을 의미할 뿐 그것 자체가 비범함은 아니다. 특별하게 만들겠다는 목적의식을 버리고, 그들이 본래부터 세상에 지니고 나온 다름을 그저 소중히 여기고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을 때, 오히려 비범함이 자연스럽게 자랄 수 있지 싶다. 그 때 타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축하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비범한 사람만큼이나 멋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개개인이 지닌 무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요새는 그 모든 차이를 뛰어넘는 존재의 공통적 기반에 더 마음이 쏠린다. 나이가 들어가는 징조인지 모르겠으나. 같음/동일성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 모든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지구라는 별에 잠시 왔다가는 여행자라는 공통점, 삶속에서 저마다 헤쳐가야 할 운명이 있다는 공통점, 그런 것들에 마음이 간다. 나의 운명이 곧 그대의 운명이고, 그대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일 수 있으리라. 우리는 다르면서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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