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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드라마

<원스(ONCE)>, 사랑이란 무엇일까

by 릴라~ 2011. 11. 27.




'한때' 우리가 했던 사랑 중에서 어떤 것이 시간을 이기고 기억 속에 영원히 자리잡을까? 웃고 떠들며 행복했던 시간일까, 살 떨리는 긴장과 설렘의 순간일까, 맞추려 해도 계속 어긋나던 실망과 회한의 시간일까?

영화 'ONCE'가 보여주는 사랑은 그런 종류의 감각적 만족과 감정적 부대낌을 넘어선다. 다큐처럼 밋밋하다. 아일랜드 더블린 거리의 악사인 '그'와 딸을 키우는 가난한 체코 이민자 '그녀'의 단조로운 일상, 그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온 우연한 작은 만남. 결코 화려하지 않은, 둔탁한 질감의 영화인데 오히려 그것이 굉장히 깊은 감정선을 만들어낸다. 선이 굵은 영화다. 음악이 주는 효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두 시간 내내 노래가 울려퍼지는데 그 노래를 따라가노라면 저도 모르게 각자 자신의 기억 속, 뼈와 근육 속에 잠자고 있었던 오래된 한 장면과 대면하게 된다. 그것이 이 영화가 지닌 참된 힘이다.

돌이켜보면 이십대의 사랑은 '육체'라는 물질성에 갇혀 있었다. 꼭 육체적 관계가 아니더라도 보여지고 만져지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out of sight, out of mind였고 생리적이면서도 다분히 심리적이었다. 개인의 심리, 심리적 만족감이 사랑의 행로를 결정했다. 사랑은 나 자신의 심리적 결핍과 불안정성, 얽혀 있는 감정상 문제들을 수면 위에 떠오르게 하는 회오리바람이었다. 바람이 멈추었을 때 사랑은 끝이 났다. 그것을 지속할 동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관점과 작은 세계들을 가지지 못할 때 사랑은 심리의 차원에 머물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 나를 깊이 필요로 할 때 느끼는 삶의 무게감과 의미도 그것이 세상을 향한 다른 출구를 얻지 못할 때 그저 마음의 '짐'으로만 남았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상태에서 만난 사랑은 길이 아니라 또다른 막다른 골목으로 다가왔다. 상대방의 육체와 나 자신의 심리를 넘어설 수 없는 사랑, 그래서 나는 내가 했던 모든 사랑이 실패라고 생각한다.

영화 'ONCE'가 보여주는 사랑은 다르다. '그'와 '그녀'의 만남은 서로의 삶에서 멈춰져 있던 한 부분, 다시 살려내고 불러내고 해결해야 할 것들을 일깨워준다. '그'는 실연의 상처와 고독에, 그리고 그의 노래를 이해하지 못하는 더블린 거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그는 낮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명한 노래를 부르고, 밤에 아무도 듣지 않을 때 자작곡을 부른다). '그'의 노래를 알아본 '그녀'와의 음악적 소통과 '그녀'와 그녀 주변 사람들이 가져다 준 생의 활기로 인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더 큰 무대(런던)에서 실험하려는 용기를 얻는다. '그녀' 덕분에 '그'는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가 체코의 오케스트라 단원이었고 어릴 때 피아노를 쳤던 '그녀'는 아일랜드에서는 거리에서 꽃을 팔고 부잣집의 가정부로 일하는 가난한 이민자이다. 피아노를 치게 허락하는 친절한 주인이 있는 가게에 가끔 들러 피아노를 친다. '그'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음악에 대한 사랑을 되돌려주고, '그녀'가 예전에 만들다만 노래를 새로 완성하게 한다. 그 노래를 가슴으로 들을 줄 아는 '그'가 있었기에 '그녀'의 생의 역량이 커지고 그녀는 체코에 두고 떠났던 남편에게 연락한다.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자신의 늙은 어머니를 보살펴야 하고 어린 딸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남편과 한번 더 노력해보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짠하다. '그'가 런던으로 떠나면서 '그녀'에게 배달한 최고급 피아노. 아파트 창문에서 울려나와 창밖 세상을 떠돌다 먼 하늘로 번져가던 피아노 선율.....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듯한 '그녀'의 눈빛. "Miluiu teve..."

사랑은 기억도 회상도 추억도 아니다. 어느 한 시간에 멈춰져 있는 모든 것, 흐르지 않는 모든 것, 그것은 이제 순수한 '기억'이고 '과거'일 뿐 '사랑'은 아니다. 무언가를 잊지 못하는 것도 사랑은 아니다. 사랑은 멈춰져 있던 것들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고, 흐르지 않는 것들이 다시 흐르는 것이고, 그렇게 시간을 새롭게 탄생시키고 삶을 회복시키는 무엇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고 그렇게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깨닫게 함으로써 우리를 삶의 새로운 지대로 이끄는 힘.

우리는 오직 현재진행형인 것들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피아노 연주를 계속하는 한, '그'가 런던에서 계속 노래하는 한, 그 사랑은 영원하다. 서로에 의해 시작된 사랑이 시간 속에서 펼쳐지고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스
감독 존 카니 (2006 / 아일랜드)
출연 글렌 한사드,마르케타 이글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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