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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수업 이야기

'섶섬이 보이는 방'으로의 여행

by 릴라~ 2017. 4. 9.

 

 

지난 일주일 동안 '섶섬이 보이는 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희덕 시인의 시와 함께.

제주 서귀포 언덕 위 초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 마사코와 두 아이들이

6.25 전쟁 중 약 일 년간을 함께 부대끼며 살았던

1, 4평의 고방, 조개껍데기처럼 작은 방과

그들이 뛰놀았던 드넓은 바닷가, 모래와 게와 아이들 속으로.

 

수업은 4차시로 진행되었다.

학생들에겐 4차시지만 나는 네 반 열 여섯 시간을 수업해서

일주일 내내 내 마음은 제주의 풍광으로 가득차 있었다.

 

2단원은 '여행'이라는 주제로

나희덕 시인의 '섶섬이 보이는 방'과 최순우 선생의 '부석사 무량수전'을 묶었다.

우리의 자연과 문화, 예술을 글을 통해 만나보자는 테마다.

제주는 그간 십여 차례 이상, 부석사는 두 번을 방문했기에

나름 의미있게 수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차시는 여행에 대한 배경지식 점검,

2차시는 낭송 연습 및 이중섭의 생애와 서귀포 이중섭 거리 소개,

3차시는 시 내용 파악, 이중섭의 작품 소개,

4차시는 마무리 글쓰기로 진행했다.

 

1차시에는 새로운 단원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으로

여행에 관한 짧은 동영상으로 마음을 열고

학생들의 배경지식을 점검하는 모둠활동에 들어갔다.

내가 꿈꾸는 여행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고

모둠별로 자신이 가본 곳 중의 최고의 여행지와 이유를 소개하고

앞으로 가보고 싶은 곳도 적어보았다.

학생들이 가본 곳 중 인상적인 곳으로는 제주, 서울, 부산이 많이 나왔고

일본, 대만, 중국, 동남아도 꽤 많이 나왔다.

모둠별 발표가 끝난 뒤에는 제주도의 지도를 제시하면서 유명한 장소들을 훑어보고

작가가 여행한 장소인 서귀포와 섶섬의 위치를 확인해보고

시 낭송으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이 시는 나희덕 시인보다는 이중섭의 생애에 대한 이해가 작품 이해를 좌우하기에

나희덕 시인은 사진으로 잠깐(아이들이 어, 여자예요? 하고 놀랐다),

이중섭의 삶은 관련 자료로 풍부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2차시에는 이중섭의 삶과 사랑, 작품 세계를 다룬 짧은 영상을 보고

평안남도 평원군 - 평양 - 도쿄 - 원산 - (부산 거쳐) 제주

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로 설명했다.

그리고 시를 낭송한 뒤 서귀포의 이중섭 거리와 이중섭 생가, 섶섬 등

시 속에 등장하는 풍경을 사진으로 보았다.

 

3차시에는 시상 전개 과정을 파악해보았다.

'별 헤는 밤'은 모둠별로 학생들이 스스로 파악했는데

이 시는 시인의 시선의 흐름을 섬세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요해서

교사가 칠판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면서

시인의 상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전체적인 틀을 제시해주고

세부적인 구절의 의미를 문답식으로 함께 답해보았다.

시인은 서귀포 언덕 위 이중섭의 초가를 방문해서

처음엔 '관'처럼 작은 그의 방에 충격을 느끼지만

이 방이 이중섭의 네 식구의 가장 행복한 한때였음을 떠올린다.

 

이중섭은 도쿄 유학 시절 아내 마사코를 만난다.

이후 마사코는 먼 원산까지 이중섭을 찾아오고 그들은 1945년 그곳에서 결혼한다.

6. 25 전쟁이 일어나자 부부는 원산에서 부산을 거쳐 제주까지 왔으니

이 제주의 귀퉁이 작은 방은 그들에게 무엇보다 안전하고 소중한 보금자리였으리라.

그래서 시인은 그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방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끌어안아 조개껍데기처럼 입을 다물던 방'이라고 상상하며

"방이 너무 좁아서" 오히려 그는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가졌을 거라고,

그림을 통해 더없이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었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관처럼 작은 방"의 가난은 그들을 삼키지 못했고

아이들은 게와 물고기와 함께 놀았으며

그것은 그림 속에 밝고 따스하게 표현되었다.

하지만 그들 가족의 행복은 길지 못했다.

이중섭은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에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고

시인은 그들이 "빈 조개껍데기에 세 든 소라게" 같았노라며

시를 끝맺는다.

 

작품 분석을 하며 마사코의 인터뷰가 담긴 영상과

시에 나오는 그림과 서귀포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이중섭의 그림을 소개했다.

서귀포에서 보낸 일 년이 이중섭에게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는

그의 작품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 작품 하나하나가 이중섭이 꿈꾸던 평화를 구현하고 있었다.

시인의 말처럼 "복숭아는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고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나희덕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 이중섭의 그림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내용 파악을 마무리한 뒤에는 학생들도 이 시가 보여주는 것을

간단히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4차시에는 내가 찍은 제주 사진을 잠깐 소개하고, 마무리 글쓰기 활동을 했다.

감상을 다양하게 하고 싶어서 몇 가지 질문에 먼저 답해보았다.

시인이 이중섭의 삶을 드러내기 위해 동원한 소재 중에서 인상적인 것을 찾아보고

시적 표현이 훌륭하게 된 구절도 찾아보고

그밖에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나 음악, 영화 등도 적어보았다.

그리고 2문단 쓰기에 들어갔는데

1문단은 시의 내용, 2문단은 시에 대한 자유로운 반응,

혹은 이중섭의 삶, 자신의 제주 여행,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나 음악, 영화 등으로

자유롭게 내용을 구성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시의 내용을 소개한 뒤 2문단에서 "이 시를 읽고 나는

**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의 내용이 이중섭과 마사코의 사랑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등으로 자신의 경험을 활용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1단원 수업을 할 때보다 더 다양한 글들이 나왔다.

 

매 차시마다 시를 낭송해서 다소 어려운 시지만

마지막 시간에는 시가 좀 더 입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제주도 서귀포도 내게 익숙한 곳이고 이중섭 거리도 두세 번이나 지나갔지만

나희덕 시인의 눈을 통해 그곳을 정말 제대로 보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을 잠시 거쳐갔던 이중섭 가족의 애틋한 사랑을,

그림 속에 담긴 빛나는 평화를, 이별의 안타까움을

이 짧은 시 속에 어쩜 이렇게 생생하게 살려놓았을까.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의 '본질'을 기록한 시였다.

시인의 눈을 통해 제주와 서귀포, 섶섬, 이중섭의 삶과 그림을

제대로 느끼고 들여다보아서 개인적으로 좋았다.

시인과 소설가는 정말이지 가장 훌륭한 시대의 기록자란 생각을 했다.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서귀포와 섶섬의 풍경을 진정으로 소유한 사람은

그 땅의 소유자나 건물주가 아니라 이중섭이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4차시에 제주를 정말 사랑한 사진작가,

김영갑의 사진을 소개하며 마무리할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대단원 마무리 시간 때 짬이 나면 소개해야겠다.

 

시 낭송을 할 때 유키 구라모토의 레이크 루이스를 배경음악으로 쓰는데

한 달 넘게 들었더니 학생들이 음악 좀 바꿔달란다.

옆 반 국어 수업할 때도 들려서 하루에 두세 번 들어서 외울 지경이라나.

2학기 때는 새로운 음악으로 낭송하자고 했다.

 

일주일간의 제주 여행을 마치고

내일부터는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길을 떠난다.

 

 

 

섶섬이 보이는 방 / 나희덕
-이중섭의 방에 와서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데기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데기를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 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데기에 세 든 소라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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