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을 갔을 때다. 부산 송정으로 기억한다. 아침 먹고 여유가 좀 있어 호텔에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응답하라 1988>이 나왔다. 잠깐 봐야지 했는데, 드라마에 홀려서 두 시간이 훌쩍 갔다. 특별한 서사가 없는데도, 그 시절 생활 모습 그 자체가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80~90년대엔 그랬다. 옆집 앞집 뒷집 모두 친하게 왕래하며 지낸 시절이었다. 두 편 연속 방송이었는데 계속했으면 더 봤을 듯.
<응답하라> 시리즈가 나온 지 한참 되었는데, 이리저리 바쁘다 보니 챙겨보지 못했다. 우리집 TV엔 또 기본 채널만 나오니 볼 일이 잘 없다. 이 드라마가 처음 나왔을 때는 해외 사는 친구가 너무 좋다고 파일까지 보내줬는데도 볼 짬을 내지 못했었다. 호텔에서 본 이후로 한 번 봐야지 했는데 결국 아직까지 보지는 못하고 있다.
그 시대의 특징을 딱히 꼭 집어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 시대에만 존재했던 정서가 있었던 건 분명하다. 그 분위기는 음악에서 잘 느껴지는 것 같다. 요즘 가수들이 가창력도 넘사벽이고 완성도 면에서는 예전보다 더 좋은 작품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노래를 들을 때면 뭔가 2프로 부족한 느낌이 있다. 설레임이랄까 풋풋함이랄까, 90년대 노래에만 있는 그런 정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연애하면서 몇 달씩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손만 잡고 다닌 시절에나 있는 그런 정서니, 요즘이랑은 많이 다를 것 같긴 하다.
<여행스케치> 앨범은 테잎이 늘어날 만큼, 대학 내내 들었다. 그 시절 나 뿐 아니라 모두가 좋아한 노래. 이 노래를 듣는 순간, 90년대의 시간 속으로 성큼 빠져든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책 몇 권 끼고 캠퍼스를 거닐었던, 워크맨 하나만 있으면 부족할 게 없었던 그때로.
여행스케치 <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 보았어>
나뭇가지 위에 앉은 작은 새 날개짓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이맘 너는 알고 있니
언젠가 너의 눈빛을 두렵게 알던 날부터
사랑이라는 작은 떨림에 밤새 잠을 설치고 있지
나의 사랑이 이렇게 시작되면 먼저 설레임이 앞서는 걸까
알수 없는 나의 이 마음을
나의 사랑이 이렇게 시작되면 먼저 두려움이 앞서는 걸까
사랑 이렇게 시작되면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이마음
작은 발자욱마다 혹시 놀래진 않을까
두려움 느끼며 갔지
나의 사랑이 이렇게 시작되면 먼저 설레임이 앞서는 걸까
알 수 없는 나의 이 마음을
나의 사랑이 이렇게 시작되면 먼저 두려움이 앞서는 걸까
사랑 이렇게 시작되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