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아니라, 베토벤의 음악을 사랑하는 한 학자가, 그의 삶에 대한 제대로 된 평전이 없다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는 염려에서 쓰게 된 길지 않은 평전. 유명한 롤랑의 평전이 베토벤이라는 사람을 고난을 극복한 영웅으로 지나치게 신비화시키고 생각한 저자는 이 책에서 베토벤의 삶을 사실에 근거해서 재조명한다.
베토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가난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음악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베토벤을 한평생 갈등 속에 살면서도 음악을 통해 구원되었던 한 개인으로 그려낸다. 특히 계몽주의와 프랑스 대혁명의 사회적 격변이 베토벤의 음악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하나하나 짚고 있다. 당시 본과 빈, 빠리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전해온다. 불멸의 연인을 비롯한 베토벤의 연인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할애하고 있지 않다. 베토벤이 연애로부터 음악적 열정을 끌어온 것은 사실이나, 그는 어린 시절의 영향과 자신의 외모와 성격적 특성으로 인해 만족할 만한 관계를 꾸려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관심을 기울인 것은 평생 광범위한 독서를 해온 베토벤의 사상적 배경, 그가 당대를 이해한 방식, 음악에서 구현해낸 혁명의 정신이다. 그래서 저자는 베토벤을 고전음악의 완성자가 아니라 낭만파의 시조로,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던 독자적인 음악을 개척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내용이 좀 간략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시대의 풍랑 속을 걸어가는 인간 베토벤이 느껴진다. 혁명의 시대와 그 뒤에 찾아온 반동의 시대를 살면서 자신을 '음악 노동자'라고 불렀던 베토벤. 개인이 홀로 서야 했던 외로운 시대에, 귀족들의 후원에 의지하면서도 그들을 경멸했고 자신의 작품을 팔아 한 명의 독립적인 예술가로 우뚝 서고자 했던 남자. 삶은 그에게 끊임없이 외적/내적 갈등을 가져다주었으나 그는 죽을 때까지 그것을 이겨내고자 노력했다. 그가 그것을 이겨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저자는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베토벤이 음악을 통해서 그것을 초월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갈등의 삶 초월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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