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답이 없다. 내신 등급 체제를 고수하는 한. 1등급이 몇 명 이상이면 그 학교 1등급이 없어지길래 어떻게든 시험 문제 꼬아서 내야 하고, 한 문제 때문에 등급이 갈리고, 애들 피말리고, 그래서 무슨 교육이 된단 말인가. 수능은 더 문제고. 줄을 공정하게 세우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가. 교육이 줄 세우기인가. 개인의 깨어남이지.
책장 정리를 하다가 옛날 책 사이에서 성적표가 하나 툭 나왔다. 자그마치 약 30년 전의 성적표. 등수 보고 내가 깜짝 놀랐다. 아니 나 공부 잘 했었네? 등수에 큰 관심 없었고 또 고3 때만 잘해서 내가 공부 잘했다는 자의식이 거의 없었다. 지방국립대를 나와서 잘난체 할 것도 별로 없었고. 지방대를 나온 건 인간성에는 아주 도움이 된다. 뭐, 잘난 체 할 게 있어야 잘난 체를 하지.
우리 반이 53명이나 된 줄 몰랐다. 53명 중에 1등이고 문과 계열에선 3등. 우리학교가 대구에선 공부 쫌 하는 동네에 있었기에 석차가 높은 건 맞다. 당시 내신등급 15등급으로 나누던 시절 1등급이었으니. 그러나 난 공부만 잘하는 학생이었지 리더십도 없고 다른 인간적인 면 또한 많이 부족했다.
그 부족함은 사회생활 하면서 여실히 드러났다. 나는 '사회성'이 확실히 떨어져서 가는 학교마다 교장한테 찍히고, 뭐 별로 한 거 없이 조용히 살고 있는데도 관리자한테 미움 받고, 조직생활을 꽤나 힘들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을 너무 직설적으로 했다. 혼자 책만 읽다 사회에 나와서 타인과의 소통 능력이 떨어졌었다고 본다. 대학 동기랑 옛날 얘기 하는데 너 좀 새침했었다 하니. 또 지나치게 비판적이라 삶을 즐기는 능력도 떨어짐. 아무튼 성적 하나 빼곤 전반적으론 다 부족. 그래서 연애도 잘 못하고 결혼도 엄청 늦게 하고 생애 전반적으로 남들보다 뒤쳐진다. 25년 운전해도 운전은 아직도 헤매고. 뭐 단점 열거하려면 끝이 없음. 이것저것 다 잘하시는 엄친아도 계시겠지만 난 생활 면에선 매우 어수룩하다.
그러니 제발 학교에서 공정하게 줄 세워달라는 환상을 버리자. 사람은 정말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존재고, 개인의 지적, 정서적, 육체적, 종합적인 '성장'에 제발 관심을 좀 갖자.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 한 개인에겐 그것만큼 위대한 과업이 없다. 점수는 그 위대한 과업에 비하면 100분의 1의 중요성도 갖지 못한다.
#성적표로 잘난 체 하는 거 아님 ㅋㅋ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