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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드라마

[넷플] 그녀가 말했다 __ 뉴욕타임즈의 두 기자들

by 릴라~ 2023. 6. 5.

평소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제일 큰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이고 스토리를 질질 끄는 것을 끝까지 볼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는 젊을 때는 꽤 좋아했는데, 역시 같은 이유로 점점 멀어진 지 오래다. 책은 몇 십 쪽씩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영화는 죽 이어봐야 하니 영화 볼 몇 시간을 못 낼 때가 많다. 
 
또한 요즘 늘 스마트폰을 끼고 살다보니 영상 매체가 휴식보다는 또다른 소음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검은 글자만 있는 책이 감각적 자극으로부터 진정한 휴식을 제공해주는 느낌이다. 영상 때문에 책을 안 보는 시대지만 영상이 아닌 책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내게는 점점 절실한 무엇으로 다가온다. 영상보다는 내게 글자가 진정한 휴식이 된다.  
 
한 달에 많아야 한 편 보는 영화는 그래서 신중하게 선택한다. 넷플의 <그녀가 말했다>는 무척 재미있게 보았고 또 의미도 깊었다. 
 
내가 다큐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책처럼 쓸데없는 감각적 자극이 없이 사실에 기반한 담백한 느낌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녀가 말했다>는 다큐는 아니지만 꼭 다큐처럼 촬영했다.  영화계의 거물 하비 와인스타인의 수십 년간에 걸친 성추행, 성폭행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한 뉴욕타임즈 여기자 두 명의 실화를 담은 원작을 영화화한 것인데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감정적 과잉도 최대한 배제하고 취재 과정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는 영화다. 영화적 재미가 부족할 수도 있지만 난 양념을 치지 않은 영화가 그 진실성 때문에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우선 2017년까지도 헐리우드에 권력만 있으면 온갖 성범죄가 가능하고, 그것을 묵인하는 시스템이 작동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기네스 펠트로 같이 집안 배경이 좋은 배우조차 그런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 무명배우들은 얼마나 많이 당했을 것인가.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대부분 이제 갓 세상에 나온, 사회초년생인 이십대 초반의 여성들이었다. 와인스타인은 그들을 손쉬운 먹잇감으로 삼았고 문제가 생기면 돈과 변호사를 동원하여 막았다. 그에겐 돈과 권력이 있었으니. 
 
갓 사회에 나온 피해자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권력의 무자비함과 자신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뿐 아니라 제대로 대응하거나 반격하지 못했다는 끝없는 자기 학대에 시달려야 했다. 영화에 나오는 누군가의 말처럼 자존감을 이제 막 배워가는 시기인데, 인생의 방향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와인스타인도 나쁜 놈이지만 그의 중차대한 범죄를 묵인해온, 그것이 '범죄'라는 인식을 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도 놀라웠다. 
 
이 피해자들 한 명 한 명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사화하고자 애쓰는 뉴욕타임즈의 탐사보도 과정은 이 영화의 또다른 재미다. 우리나라처럼 '카더라' 통신은 전혀 통하지 않는 저널리즘의 세계. 인용을 하더라도 철저히 실명을 밝혀야 한다. 그래서 기자들의 일은 고단하다. 기자들이 피해자들 한 명 한 명을 찾아가 취재를 하고 설득을 하고 마지막에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자기 이야기를 공개해나가는 과정은 감동적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이 두 기자들의 탐사보도 뒤에는 그것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뉴욕타임즈의 협업 시스템이 있다. 그것도 많이 부러웠다. 저런 게 진짜 언론이구나 했다. 
 
두 기자들의 탐사보도는 세계적인 미투운동을 촉발시킨다. 우리 사회에도 서지현 검사의 미투가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문제는 언론이라 생각한다. 뉴욕타임즈 기자의 10분의 1만큼의 치밀성도 없이 함부로 기사를 써대는 사람들 때문에 미투가 악용되고, 가짜 미투가 정쟁에 이용되는 것이다(당연한 말이겠지만 가짜 미투도 존재한다). 그것이 남성의 말이건 여성의 말이건, 치열하게 취재하고 검증하는 기자 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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