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전공한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썼다.
교사들이 학교에서 겪는, 반복되면서도 다루기 어려운 다양한 감정들을
구체적인 사례와 적절한 처방 및 조언을 통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김현수 박사의 <선생님 오늘도 무사히>가
정치사회적인 맥락을 폭넓게 다루면서 교사 노동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면
이 책은 교사 개개인이 겪는 감정, 심리학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권 나란히 읽었는데 의외로 겹치는 내용이 많지 않고
두 권 다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
책 내용 중에서 기억할 만한 몇 가지를 메모해두도록 하자.
첫째, 인정불안.
대상관계이론은 나-양육자 사이의 관계 패턴이
그 후 접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되풀이된다고 주장한다.
나-엄마와의 관계가 상대만 바뀌어 일생 동안 재현된다는 의미이다.
동료와의 관계를 엄마와의 관계와 동일시하여
'내가 희생해야만 날 인정해줄 거야'라는 착각에 빠지는 게 대표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인정불안을 벗어나는 마지막 방법은 실천이다.
'행동하라! 그 자체가 천재성이고, 힘이며, 마력이다.'
머리로 내 불안의 정체, 원인을 파악한 것만으로도 불안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겨 본 후 얻는 효과에 비할 수 는 없습니다.
나를 극복하는 도약의 순간을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나를 비난할 거야. 미워할 거야.' 같이 나를 괴롭히던 추측들이
대부분 실체 없는 공상임을 체험할 것입니다. p117
둘째, 열등감.
열등감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열등감의 최고 전문가
알프레드 아들러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들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만큼
열등감과 그 극복방법에 천착한 심리학자입니다. (...)
아들러에 따르면 인간은 연약한 유아기에 항상 자기보다 크고 강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나는 못났다'는 열등감을 키운다고 합니다.
또한 부모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형제간 경쟁도 열등감을 증폭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열등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보편적 경험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열등감에 사로잡혀 고통스럽다면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은 불행합니다.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다음날 걱정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합니다. (...)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는 건 당연한데도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아들러가 던지는 답은 의미심장합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하나다.
각자가 너무 높은 성공의 목표를 정했기 때문이다."
이 단 한 문장 속에는 우리 안의 열등감의 정체와 극복방법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p127-128
나는 어떤 열등감을 느끼고 있나요?
그리고 그 열등감 속에는 어떤 비현실적 목표가 숨어 있나요?
곰곰이 생각해보고 나의 비현실적 목표를 현실적 목표로 바꿔봅시다.
그 누구도 선생님을 좌지우지하거나 타인이 선생님의 존재를 위협하게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의 주인은 선생님이며 선생님이 그리는 목표 또한 선생님이여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선생님의 열등감 콤플렉스는 진정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심리 치료에 대한 아들러의 생각으로 이번 장을 마치고자 합니다.
"심리 치료의 핵심은 증상을 없애는 게 아니라 목표를 바꾸는 것이다." p138-139
셋째, 이상적 자아상.
나르키소스가 사랑한 대상이 자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랑한 자기는 진짜 자기가 아니었습니다. 나르키소스는 그 대상을 아무리 안으려 하고, 잡으려 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입을 맞출 수도 없었죠. 이것은 그 상대가 진짜 자기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거울이란 도구는 우리 자신을 비추는 도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모습은 어디까지나 난반사로 인한 빛의 파편일 뿐 실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 파편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아의 해석과정을 거쳐 인식합니다. 예를 들어, 기분이 좋은 날에는 내 얼굴 중 가장 멋진 내 코를 중심으로 바라보며 감탄합니다. 소개팅 날에는 콤플렉스인 홀쭉한 볼에서 시선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다시 말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나의 진정한 실체와는 거리가 멀며 해석에 따라 변하는 허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르키소스가 본 모습은 한순간에 마음을 빼앗긴 만큼 약점보다는 장점이 한껏 미화된 허상이었을 것입니다. 즉 나르키소스가 반한 샘물에 비친 자기 모습은 '이상적 자아상'에 대한 은유입니다. p146-147
그밖에 참고할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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