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 지역 학교를 벗어나니 아주 아이러니한 광경이 펼쳐진다. 교육청의 잡다한 사업이 모두 열악한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 IB학교와 미래학교도 마찬가지. 뭐 다문화가 절반인,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다수인 n중학교에서도 논술형 평가를 주 내용으로 하는 IB 시범학교를 한다니... 그런 데일수록 학부모 민원이 없으니까. 수성구라면 쓸데없는 거 왜 하냐며 민원이 폭주할 터.
우리 학교는 IB는 아니고 미래학교다. 조만간 미래학교가 IB학교가 된다 하니 IB 전단계라 보면 되겠다. 미래학교 담당자 연수라고 불러서 가보니 알맹이는 하나도 없다. 가르친 걸 평가함은 당연하지만 모든 단원에서 수행평가를 하라는 건 미친 짓. 평가 못해 죽은 귀신이 붙었나. 평가를 위해 가르치는 건 배움을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노동이나 과업으로 만든다. 배움 그 자체를 좀 즐기면 안 되나.
배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IB든 인공지능이든 혁신적 평가든 그 어떤 새로운 교육방법이 아니다.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잘 알고 래포가 형성되고 신뢰가 구축되는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마음을 열 수 있는 인간적인 관계, 그 속에서 아이들은 타인에게, 이 세계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세계를 탐색하고 개척하고 싶은 욕망을 키워가게 된다.
서로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슨 교육이 이루어지나.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지식이 인격적인 속성을 지닌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다. 나는 객관적이고 기계적인 지식과 기능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 삶에서 체화된, 내 안목으로 소화된 지식을 학생과 교감하고 대화하고 공유하는 사람이다. 지식은 폴라니가 말한 대로 '인격적 지식'이고 그때 지식은 자신과 세상을 깊이 탐험하는 진정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교육을 망쳐온 온갖 '혁신적인' 도구들이 지금은 디지털과 인공지능이란 이름을 달고 더욱 무서운 기세로 현장을 망가뜨리고 있다. 그런 걸로 포장한 '미래학교'에 진짜 미래가 있을까. 교육에서도 헬레나 노르베지 호지가 말한대로 '오래된 미래'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모든 건 우리가 이미 갖고 있던 것들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교육에서 '오래된 미래'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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