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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기록/유럽, 중동

한 시대의 절정, 베네치아 '06

by 릴라~ 2006. 10. 3.

한 시대의 절정 - 이탈리아의 도시들


유럽에서 '건물'이 아니라 '정신'을 보려면 역사 공부가 좀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이태리로 넘어오고 나서 
아무 준비 없이 여행을 떠나온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었는지 모른다.
한 시대의 절정이 이곳에 있는데.....

길모퉁이마다 수많은 천재들의 매혹적인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데......
그저 휙 스쳐가며 건물 껍데기만 보고 돌아서자니 참으로 아쉽다 싶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라도 다 읽고 올 걸, 하는 후회가 여행 내내 들었다.

베네치아, 시에나, 로마, 아씨시......
이 오래된 도시들이 간직해온 고유한 역사의 두께를 알지 못했기에
내 여행은 감각적 즐거움에 머물렀을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내게 선물해주진 못했다.
물론 그런 저런 아쉬움을 접고 본다면,
그저 오래된 대리석 포석 위를 정처없이 거니는 것만으로도 
낭만이 있는 곳이 이탈리아의 도시긴 하다.

방문한 모든 도시들이 저마다 독특하게 아름다웠고
값이 싸서 많이 먹었던 마르게리따의 냄새,
역시 값이 싸서 가장 많이 마셨던 에스프레소의 향기는 
귀국하고 나서도 한동안 그리웠다.
후각과 미각에 새겨진 흔적들은 눈으로 본 것보다 더 오래 남아서
그곳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시 가게 된다면, 여름은 절대 사절이다.
40도를 넘나드는 날씨에, 미어터지는 관광객에,
이건 여행이 아니라 노동이다 싶을 만큼 
가는 곳마다 몇시간씩 줄을 서고 서고 또 섰다.
돌아오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여행한 그 여름이
유럽 전역에서 더위로 죽은 사람이 수천 명이나 
속출했을 정도로 이상 고온이었다는 사실을.


물의 도시 베네치아

토리노에서 일박을 한 후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베네치아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기차역에서 리알토 다리까지 말 그대로 발 디딜 틈도 없이 
관광객이 미어터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 관광지는 난생 처음이었다.
너무나 복잡하고 소란스러워서 베네치아를 그냥 한 바퀴 죽 둘러보고 나왔는데
떠나고 나서야 들었다. 베네치아는 밤이 아름다다는 것을.
밤과 이른 아침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한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베네치아 고유의 분위기를 온전히 맛볼 수 있는 시간이라 한다.
덕분에 다시 가야 할 곳 목록에 베네치아가 추가되었다.

베네치아에서는 곤돌라를 꼭 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역 앞에서는 바가지가 심하므로 시가지 안에서 타는 것이 더 좋음)
물살을 가르면서 매끄럽게 나아가는 곤돌라를 타고 
건물들 사이의 좁은 해로를 지나노라면
관광객의 소란함도 한여름 태양도 저 멀리 물러나고
갑자기 찾아든 한적한 고요 속에서 
낡고 오래된 벽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잠깐이지만 타임 슬립이 일어나 
중세의 어느 언저리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밖에 베네치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명한 산마르코 광장.
그 앞에 딱 서는 순간, 이것을 지었던 사람들의 자부심,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만에 가까운 자부심이 올올이 느껴졌다.
그들은 떠났지만 그들이 꿈꾼 이상은 
광장을 둘러싼 회랑처럼 견고한 모습으로 남아서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여전히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듯했다.

무심한 것은 오직 비둘기들이었다.
그들만이 시간이 남긴 이 모든 자취에 초연한 채로 관광객들의 무리 사이를
그만의 몸짓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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