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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웠다. 너무나 부러웠다. 핀란드 교육개혁 과정 속에 담긴 철학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학과, 그들의 지식관이. 그 속에서 핀란드 교육은 평등과 수월성을 동시에 이루었다. 아니, 평등 속에서 진정한 수월성이 가능함을 보여준 모델이라 할 수 있겠다.
핀란드 교육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이들이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학업성취도 평가 PISA에서 계속 1위를 차지하면서부터이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PISA는 단순한 지식을 묻는 평가가 아니다.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문제를 푸는 사람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소재와 정보를 구성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린다. 이 때 복수의 의견과 입장을 고려하면서 각각의 장단점을 평가한 후 일정한 해결을 얻는 전과정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 보통 우리가 치르는 시험에서는 PISA와 같은 애매한 상황은 제외되는 게 보통이다.
PISA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분기형 교육제도(일찍 진로가 갈라지는)를 가진 나라의 성적이 낮다는 것이다. 일류학교, 이류학교를 나누지 않고 학교가 평등할수록 학생들의 성적이 높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교육행정가들의 상식과는 배치된다. 한국 역시 중등교육까지는 평준화되어 있기에 PISA 성적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특목고 열풍으로 깨어지고 있지만) 문제는 교육의 과정이다. 핀란드 학생들보다 2배에서 많게는 3배 넘는 시간을 공부하고, 교과에 대한 흥미는 가장 낮은 것이 한국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방식의 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원칙에 충실하다. 이들 교육의 대원칙은 '통합교육'이다. 지난 수십년간의 교육개혁을 통해서 학교간 격차를 없앴고, 학교내 우열반을 없앴고, 지금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통합교육을 받는다. 핀란드는 잘 하는 아이는 내버려둔다. 잘 하고 있으니까. 이들을 따로 분리해서 어떤 특별한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잘 하는 아이들을 지금 당장 좀더 밀어붙여서 더 잘하게 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삶의 상황을 즐기면서 장기적으로 인생을 설계하는데 초점을 둔다.
그리고 잘 못하는 아이들은 최대한 빨리 발견해서, 기초학습이 부족하지 않도록 필요한 지원을 하지만, 표준 대신 개별성을 중시하므로 싫어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시키지 않고, 대화를 통해서 아이가 원하는 만큼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제각기 다른 이 모든 아이들이 서로 도와주며 함께 공부하는 협동 과정을 중요시한다. 필요한 학생에게 개별적 도움을 주지만, 이는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며, 잘 하는 아이를 특별 대접하는 것은 없다. 잘 하는 아이에게도, 못 하는 아이에게도 어떤 획일적 요구 없이 미래에 대한 굉장한 개방성이 주어져 있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어울려 사는 '더불어 사는 세상'의 대원칙이 핀란드 교육에서는 실현되고 있다.
지식은 중립적인 것도 아니고 한 가지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개개인의 지식이 교과서의 것보다 나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핀란드의 지식관이다. 사실 그 누구의 지식도 불충분하며 그것이 우리가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사회적 구성주의' 교육관이다. 그러하기에 소규모 협동학습을 통해서 함께 지식을 탐구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것은 핀란드에서 당연한 일이다. 통합교육, 협동학습, 표준 대신 개별성의 중시 등이 핀란드 교육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결국 우리 교육에 가장 부족한 것은 '철학'이다. 인간에 대한 철학, 삶에 대한 철학, 우리 사는 세상에 대한 철학. 미래에 필요한 지식에 대한 철학. 누구나 '변화'를 강조하고, '변화'를 말하지만, 한국 사회의 변화에 관한 담론은 결국, 자본주의 경쟁에 살아남기 위한 변화, 시장의 수요에 맞춘 변화, 시장이 필요로 하는 변화 정도일 뿐. 그래서 어쩌라고.
핀란드는 거기에 대한 한 가지 훌륭한 답을 제시한다. PISA가 추구하는 학력관은 전통적인 학력관과 다르다. 개인과 사회 사이에 일종의 지적 긴장이 있다고 보고, 단순히 사회나 집단에 순응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인적 목표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닌, 이 사이에서 길을 찾으면서 양쪽 모두에 공헌할 수 있는 역량을 중요시한다.
이러한 역량의 핵심은 '성찰'이다.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고과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 때 개개인은 사회적 압력에서 탈피하여 다른 전망을 가질 수 있고, 독립적 판단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게 된다. 핀란드는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회성'이라고 본다. 개개인이 이런 능력을 갖출 때 일정 수준의 사회적 성숙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차이와 대립을 다루는 능력'이기도 하다. 대립적이고 모순된 목표를 우리 삶의 현실적인 측면으로 통합해서 바라볼 수 있고, 복수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종합적으로 생각하는 능력. 차이와 대립을 성찰하는 능력이 곧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다. 개인이 자신을 컨트롤하는 가운데서 지식을 창출하고, 지식을 바탕으로 공동의 전략을 만들어가는 능력. 이에 반해 지금 우리 사회가 말하는 '변화', '사회성'은 너무나 천박하다.
교육 뿐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핀란드 교육 전반을 아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면서도, 내용이 풍부하다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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