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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기록/유럽, 중동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 이스라엘 성지순례 '96

by 릴라~ 1996. 8. 30.

이스라엘은 네팔 안나푸르나와 함께 20대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의 하나다. 첫 해외여행지이기도 했고 그곳의 풍광과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갈릴래아 호수의 푸른 물결과 가파르나움... 사마리아의 건조한 사막과 베드윈족... 거대한 바위산과 죽음의 바다 사해... 하얗게 빛나던 고대 도시 예루살렘... 그리고 엠마오... 그 모든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대학생 때 쓴 글이라 좀 어설프지만... 그때의 순수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진정한 여행이란 순례임을 깨달은 시간이어서...  이후의 모든 여행이 이 순례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첫 글로 남겨 둔다.

 

 

1996 이스라엘 성지순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1. 인생은 순례인가? - 나자렛에서

누군가가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나자렛 사람 예수이다. 그분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네 살 때 세례를 받고 여태 그분의 이름을 불러왔건만 그분을 알지 못하겠다.

내가 그분께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때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인생의 가치에 대해 회의하면서 비로소 하느님이 보이기 시작했던 거다. 그래서 교리교사를 했었다.

4학년에 올라오자 배움의 마지막 시기를 의미있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이제껏 불러왔던 예수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을 갖고 싶었다. 때마침 교구에서 젊은이를 위해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마련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수님께서 살았던 그 땅에서 그분을 만나보자는 생각을 했다.

8월 8일, 신부님을 포함해서 총 마흔 여섯 명의 일행이 저마다의 이유를 안고 한국을 떠났다. 열 네 시간을 날아서 우리는 텔아비브 근교 벤그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밤하늘이 캄캄했다. 드디어 이스라엘에 왔구나! 예수님이 스쳐 가셨던 거룩한 땅을 밟는구나! 우리는 텔아비브 유스 호스텔에서 첫날밤의 여장을 풀었다. 내일부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그분을 이해해 보리라 마음먹으며.

다음날 아침 일찍 텔아비브를 출발했다. 북동쪽으로 나지막한 언덕들 사이를 한참을 달려 11시 쯤, 산 위에 있는 조그마하고도 아름다운 마을 나자렛에 닿았다. 예수님 시대에 이 마을은 훨씬 초라했으리라.

나자렛! 마리아의 고향,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던 곳! 그 마을은 이천년 전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조용히 맞이하셨던 마리아처럼 푸근하고도 넉넉한 마음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은 초라한 시골 집터 위에 크고 아름다운 성전이 세워져 있다. 성모 영보 대성당이다. 성당에 들어서니 이미 서른 다섯 명 가량의 순례객들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나자렛에서의 미사. '순례는 목적이 있기에 방황과는 다릅니다.'라고 신부님께서 말씀하실 때 정신이 퍼뜩 들었다. 신부님의 강론은 계속 이어졌다. 인생은 순례다. 참되게 순례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와야 한? 그래야 순례를, 그리고 우리 인생을 목적지까지 잘 마칠 수 있다. 그래서 순례의 길을 걷는 우리는 마리아의 자유로움을 볼 필요가 있다.

마리아의 자,유,로,움, 이라고?
마리아는 열 여섯의 여리디 여린 몸으로 예수를 잉태했다.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를 난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성서에 씌어진 대로 두려움과 망설임이 전혀 없었을까? 그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용기가 놀랍기만 하다. 그래, 그분이야말로 자유로왔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롭기에 그 모든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도록 허락할 수 있었던 거다. 그 결과는 어떤가. 하느님의 의도가 이 땅 위에 피어날 수 있었다. 인간의 전망을 바꾸고 지난 이천 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켜온 예수님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 마리아의 허락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감히 그럴 용기가 없을 것 같다. 마음 밑바닥에 자유를 향한 뿌리깊은 갈망이 있으면서도 왜 하느님 안에서 자유롭기를 주저할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닥칠까봐 두려워하는 거다. 내 삶을 내가 계획한 대로 끌고 가야지만 안심이 되는 거다.

안정을 바라는 사이, 삶이 아무런 기적도 없이 그냥 흘러가 버린다면? 성당 안에는 온갖 나라의 성모님 상이 새겨져 있었다. 그분의 온화한 눈길이 슬프게 와 닿았다. 하느님께 내 존재를 완전히 내맡길 수 있기를, 그래서 그분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되기를.

가만 보니 제대 뒤로 동굴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갔다. 퍽 오래된 돌기둥이 두 주 서 있었다. 비잔틴 시대에 성모님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성전의 유적이라 한다. 동굴 한 귀퉁이에 앉아 있는데 맞은 편에 있는 젊은이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의 비할 바 없이 진지하고 간절한 표정과 태도에서 나는 알 수 없는 큰 감동을 받았다. 순례자란 말이 참 잘 어울리는 모습들이다.

그들의 차림새를 보노라니 카메라다 뭐다 해서 잔뜩 챙겨 온 내가 좀 부끄러웠다. 더 간소하게 차리고 왔더라면 더 자유로울 것 같았다. 세상 속에서 열심히 일하면서도 세상 것에 정신을 잃지 않는 순례자의 마음일 때, 하느님이 주시는 자유로움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돌아가면서도 이런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할 텐데.

어른이 된 예수님의 이야기는 가나에서 처음 시작된다. 가나는 나자렛에서 가까웠다. 작고 소박한 가나 혼인 잔치 기념 성당 안에는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을 기념해 물 항아리 여섯 개가 모셔져 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도 기적을 일으킨다. 성인은 운명을 바꿀 힘이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가나의 혼인 잔치 후에 예수님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활에 들어가신다. 우리는 요르단강 세례 기념 터에서 잠시 손을 담근 뒤 숙소인 진복팔단 성당의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2. 하느님 나라 - 갈릴래아 호수에서

하느님 나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가. 예수께서 선포하셨던 기쁜 소식은 다름 아닌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갈릴래아에서 그분은 전도 여행을 시작하신다. 호숫가에서 첫 제자들을 부르시면서부터.

진복팔단 성당에 오르자, 그리워해 왔던 갈릴래아 호수의 정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바다처럼 길게 누워 남으로는 그 끝을 알 수 없고, 깊고 따스하며 생명력에 가득 차서 참으로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기쁨과 평화의 물결이 내 마음에까지 밀려왔다. 이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그분이 말씀하셨구나.

진복팔단,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 하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받는 사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그들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분은 이 호수를 바라보시며 이런 생각을 품으셨던 것이다. 예사롭지 않은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조별로 복음나누기에 참여했다. 성당 정원에 둘러앉아 서로의 마음을 내어 놓으며.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이 가난해진다면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없을 듯 하다. 텅비어 투명한 마음일 때, 맑은 눈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알 것이다. 현재를 살기 때문에 어떤 것을 잃을까봐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야말로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순례하는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다.

끝부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도 특히 좋았다. 나 역시 이 말씀을 참으로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 곧 진복팔단의 삶, 그 안에서 우리는 참으로 행복해지고 우리가 갈 길 역시 뚜렷해지리라. 그것이 보통 사람들이 나아가는 길과 모순이 되고, 공존할 수 없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 나라다. 인생의 의미가 거기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길이 주는 환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으리라.

더운 바람이 쉼없이 뺨에 와 닿았다. 그 바람을 타고 이천 년 전 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를 부르신 예수님과 그물을 버릴 줄 알았던 어부 네 사람,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와 야고보와 요한. 이 모든 일을 지켜 본 갈릴래아 호수가 여기 모인 우리들 각자의 모습도 오래도록 기억해 주기를 바랬다. 우리가 그분을 생각하며 이곳을 다녀갔다는 사실을.

내 마음이 가난하고 내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된다면 하느님을 뵐 수 있을까, 뵙게 될까. 어쩌면 그때가 되면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지도 모른다. 복음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나라가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는......

다음 날 새벽, 해뜨는 광경을 보려고 룸메이트와 함께 호숫가로 내려갔다. 언덕 너머로 희망의 동이 서서히 터 오고 이윽고 해가 솟아오르자, 안개가 물러가면서 호수 표면과 주변 물상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잔잔한 평화 가운데 우리가 있었다.

호수 주위로 높고 낮은 언덕들이 겹겹으로 펼쳐져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오천 명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도 둘러앉을 수 있겠다. 이 부근 어디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일어났을 법도 하다. 우리 일행은 바로 그 사건, 빵과 물고기의 기적 기념 성당으로 향했다.

두 번째 복음나누기.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라온 군중들을 그냥 돌려보내고 싶지 않으셨다. 수중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고, 바로 그 날 사람들은 기적을 보았다. 거기 모인 모든 이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기적을. 하느님 나라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 하나가 백 배의 열매를 맺어 세상을 풍성하게 한다는 비유처럼. 그리스도인이 모두 그 씨앗이면 좋겠다.

예수님의 기적이 가장 많이 일어난 곳, 가파르나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파르나움에선 옛 로마의 유적과 함께 시몬 장모집 성당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로 지어진 성당 안에서 물결치고 있는 갈릴래아 호수의 푸르름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하느님 나라도 이처럼 아름다우리라. 미사 중에 이 마을을 지나간 백인대장의 믿음을 청했다.

오후 다섯 시 즈음 드디어 갈릴래아 호수를 건넜다. 하얀 돛을 단 작은 나무배가 우리 일행을 태우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바람이 몹시 불어서 파도가 꽤 높았다. 호수 한 가운데에 이르자 배가 잠시 멈춰 섰다. 묵상을 위한 배려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이천 년 전 그 밤의 영상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온다.

맨 발로 바다를 밟고 와서, 겁에 질리고 지친 제자들에게 나타나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하시며 손을 내미셨던 예수님! 그분이 내 손도 잡아 주시기를! 그렇다면 휘몰아치는 파도를 넘기가 덜 힘들 것 같다. 삶의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고 폭풍과 어두운 밤을 견디며,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새아침 햇살 아래 내 몫의 고기를 건져 올려야지.

그분이 어디쯤 계실까. 오소서, 주 예수여. 아멘.

 

 


3. 예수님의 정체 - 바니야스에서

갈릴래아 호수, 그 주변 곳곳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그 나라를 보여 주시기 위해 아프고 병든 이를 고쳐 주셨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함께하시고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셨다. 숱한 기적도 베푸셨다. 사람들이 찾고자 했던 것은 다만 빵이었고 오직 기적 그 자체일 따름이었다.

예수님은 어느날 제자들만을 데리고 멀리 바니야스라는 지방으로 피해 가신다.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셨던 것이다.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구체적인 인물로써 예수님을 처음 실감하게 된 곳이 바니야스였다. 그분 역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갈등하고 번민하셨다는 사실에 나 자신 놀랐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저릿해 왔다.

바니야스는 이스라엘 북동쪽 끝으로 요르단과 인접해 있으며 골란고원과도 가깝다. 성서는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라고 부른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버스로 두 시간이 걸렸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아마도 먼 길을 걸어 왔으리라. 웅대한 절벽 아래로 맑은 샘물이 기운차게 흐르고 있어 나무도 풀도 생기발랄한 곳이 바니야스였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더냐? 예수님의 물음에 제자들은 말한다. 사람들이 엘리야라고도 하고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며 예언자라고도 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물으신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제자들이 머뭇거릴 때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유태 민족의 독특한 역사에서 뿜어져 나온 '구세주'라는 말뜻을 우리가 그들과 똑같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대답은 일종의 모범답안일 수 있으나, 우리는 스스로 각자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을 해야 한다고. 그 대답은 저마다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분의 제자인 나는 그분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내게 있어 그분은 지상에서 살다 간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분은 당신 삶 전체로서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사랑을 알게 하셨다. 진정한 사랑, 그것은 인생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 존재한다면 그분의 삶과 같은 것이리라. 그분의 목소리는 지금도 내 귓가에 살아 있다. 내가 죽은 후에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본,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인 분.

예수님의 참모습을 알고자 우리 일행은 다볼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볼산은 갈릴래아 호수 남쪽에 있어서 다시 한참을 내려와야 했다. ‘다볼’은 크다는 뜻이라고 한다. 해발 약 600미터, 결코 높지는 않지만 이 땅에서는 꽤 높은 산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가 있었던 산, 예수님께서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준 다볼산에 닿았다.

바위산의 먼지 자욱한 길을 모두들 조금은 힘겹게 걸어 올라갔다. 산 중턱에 이르니 사방이 한 눈에 펼쳐졌다. 낯설게 비치는이 땅만큼이나 내가 예수님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걸어가면서했다. 머리 속에는 그분에 대해 들어왔던 수많은 말들이 넘실대지만 정작 내 가슴으로 아는 것은 많지 않구나.

다볼산 정상은 평평했으며, 키 큰 나무들이 드문드문 늘어서 있었고 회당도 자리했다. 마침 안식일이라 회당이 닫혀있기에 우리 일행은 다볼산 정상 나무 그늘 아래서 잊지 못할 미사를 봉헌했다.

예수님의 변모, 그 때 그분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다고 한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참모습을 제자들에게 오롯이 드러내 보여주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모두 일어나라’

그분의 참모습을 내가 알기 위해서는, 그래서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분께로 돌아서야 한다. 그분의 매력적인 가르침과 아름다운 삶만을 추구하다 보면 나는 그분의 참모습을 잃어버리리라. 그분의 가치가 아닌 세속의 가치에 순응하는 태도를 고수한다면 나는 결코 그분을 만날 수 없으리라. 하느님 나라와 이 세상은 서로 절충할 수 없는 것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회심, 그분이 가르쳐 주신 삶을 구체적으로 살기 시작할 때에야 나는 그분을 만날 수 있다. 예수님의 능력이 아닌, 예수님 자신에로의 회심만이 예수님의 참모습을 만나게 해 준다고 신부님께서 강론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왜 그리도 어려운지.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장차 겪으실 수난에 대해 예고하기 시작하신다. 베드로는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며 극구 만류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히 자신의 길을 한 발 한 발 걸어가신다. 수도 예루살렘을 향해, 그리고 다가오는 수난을 향해.

우리는 아름다운 갈릴래아 호수를 뒤로 하고 예루살렘을 향한 먼 길에 나섰다.


4. 생명의 물 - 사마리아에서

성도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했다. 이스라엘 내륙을 꿰뚫는 도로를 따라 일행이 탄 버스는 지칠 줄 모르고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갈수록 사막의 색채가 짙어졌다. 벌써부터 갈릴래아 호수가그리울 정도다. 길 옆을 지나는 양떼의 무리, 저너머 베두윈족의 천막도 보인다.

태양이 우리 머리 위에 섰을 때, 사마리아 최대의 도시 나블루스에 도착했다. 메마른 바람과 부옇게 날리는 먼지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이스라엘 북에서부터 차례로 갈릴래아, 사마리아, 유다 지방으로 나누어지니 절반 가량 온 셈이다.

사마리아는 가자 지구, 예리고 등과 더불어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이라고 하는데 이 자치구들은 마치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사방이 유태인으로 둘러싸여 있는 외딴 섬과도 같다고 한다. 이들의 정치적 상황을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민족간 다툼으로 지금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한다. 유태인들의 배타적 민족주의가 어떠한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운이 좋았다. 잦은 폭동으로 이 지역 전체가 폐쇄될 때가 많다고 하는데 마침 상황이 조용한 편이라서 우리의 방문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나블루스 시내의 낡은 집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니 작고 아담한 우물이 나타났다. 우물 안에 돌멩이를 던져 넣었을 때 한참 만에 수면에 닿는 소리가 들리는 사실로 보아 깊이가 상당할 듯 하다. 아주 오래된 우물이라고 한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렸다. 이런 건조한 땅에서 물은 생명 그 자체다. ‘야곱의 우물’이라 불리는 우물을 바라보며 나는 요한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감동적인 만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처럼 때가 정오에 가까울 무렵, 먼 길에 지치신 예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 쉬고 계신 모습이 보인다. 나는 목이 말라 물을 길러 나갔다. 그분이 내게 말을 거신다.

“내게 물을 좀 다오. 목이 마르고 몹시 피곤하구나.”

“주님, 왜 제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당신은 하느님이신데 당신도 목이 마를 때가 있으신지요? 저는 제 목을 축이기에도 벅찹니다.”

“당신께서 무슨 말을 하실 지 저는 벌써 다 알고 있습니다. 이 우물물을 마시면 다시 목 마르게 되겠지요. 당신께서 영원한 생명의 물을 주시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이 주시는 선물이 저는 두렵습니다. 진리가 두렵습니다. 지금까지 쌓아 왔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롭게 찾아 나서기가 싫은 겁니다.”

나는 물을 마신 뒤 두레박을 챙기고 우물을 떠날 준비를 한다. 다시 내 길을 가야 하니까. 그분은 다른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감히 그분을 쳐다볼 엄두를 못냈지만 아마 부드럽고도 슬픈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계셨으리라. 돌아서는 발걸음 속에서 나는 여전히 목마름을 느꼈다.‘주님, 샘솟는 물을 저에게 좀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다.

그분이 주시는 생명의 물, 진리의 말씀이 부디 우리 안에서 샘솟게 되기를. 그러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고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민족간 미움과 불신의 골이 깊은 이 땅에도 정의의 물결이 강물처럼 넘쳐 흐를 것이다.

이방인들의 땅, 사마리아를 떠나 다음으로 만난 곳은 예리고였다. 예리고는 그 푸르름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는데 가이드가 오아시스 마을이라고 설명해 준다. 세리 자캐오가 살았던 마을!

우리는 키가 작은 자캐오가 군중 속에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올라갔던 나무와 같은 수종의 나무를 보았다. 몇 아름이나 될 만큼 밑둥이 아주 넓고 높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자캐오가 금방이라도 우리 앞에 나타날 것만 같다. 자캐오가 그랬듯이 나무에 오를만한 열정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

로마의 세관장으로서 동족의 멸시를 한몸에 받았던 자캐오.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를 변화로 이끌었다. 사랑의 힘이리라. 예수께서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셨다는 것, 특히 비천하고 보잘것 없는 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셨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새삼 아름답게 다가온다. 하느님은 그들 가까이에 계시다.

해질녁, 우리는 드디어 예루살렘을 통과했다. 그 감격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도시 입구에서 삼엄한 경계를 펼치는 무장 군인들, 지는 햇빛을 받아 엷게 빛나는 옛 성벽의 웅장한 자태, 키드론 계곡과 힌눔 계곡의 층층으로 옹기종기 들어선 집들...... 그야말로 만감이 차했다. 북편 집들 사이로 거대한 유다 광야가 내다 보였다.

예루살렘을 지나 30분 쯤 더 가니 일행이 묵을 작은 마을 베들레헴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우리를 감싸 안는다. 밤하늘이 깜깜해 오는데 가장 빛나는 별 하나와 눈길이 마주쳤다. 주님의 탄생을 알리던 그 밤의 별빛처럼 우리를 이곳까지 인도해 왔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5. 성탄 - 베들레헴에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우리 일행은 베들레헴 목자 벌판에서 주일 아침을 맞았다. 천사가 구세주의 탄생을 알린 일을 기리는 곳! 지금도 목동들이 양을 치는 언덕!

루가 복음은 그 날 일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이천년 전, 베들레헴 근방 들에서 밤을 새워 가며 양떼를 지키고 있던 목자들에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서 한 아기의 탄생을 보게 되었는데 그 아기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다.

베들레헴 목자 벌판에는 옛날 목동들이 쉬어가곤 했다는 작은 동굴이 있고 그 안에 역시 작은 성당이 있는데 우리가 들어가자 동굴 안은 꽉 찼다. 천장이 낮아 아늑한 동굴 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봉헌했다. 봉헌 시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을 찾아 와 경배드리고 예물을 바친 동방박사 세 사람처럼 우리도 자신이 가장 드리고 싶은 것을 예물로 바쳤기 때문이다.

그분의 탄생을 뵈러 여기 온 우리, 설레는 가슴으로 곧장 예수 탄생 성당으로 갔다. 정교회, 프란치스코회 등의 종파가 성당을 몇 부분으로 나누어 소유하고 있었는데, 우스우면서도 한편 서글픈 마음이 일었다. 성당에서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장소에 별이 표시되어 있었으나 거기서는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했다. 성당 안이 화려했기에 나는 아기 예수님께서 초라한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을 뻔 했다.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 하느님은 다르게 오실 수도 있었다. 왜 가녀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을까? 머물 곳 조차 없어 초라한 마굿간, 말구유에 오셨을까? 그분은 낮은 편을 택하신 것이다. 인간으로, 아기로, 출산의 고통 속에서 우리에게 오신 것이다.

하느님은 그렇게 세상에 오셨다. 하느님이라면 그 편을 택했으리라. 진정 하느님이라면, 사람들과 온 우주의 하느님이라면 그러했으리라. 사람들의 탐욕의 결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이 지구에는 고통이 넘쳐나게 되었다. 하느님은 그런 우리를 책망하기보다는 우리 중의 한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사는 편을 택하셨다. 인간의 약점과 고통과 한계를 고스란히 짊어지심으로 우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시고 우리와 함께 기쁨과 슬픔을 겪으셨다.

그리고 지금, 진정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다. 그분은 하나의 빛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요한 1,18)

성당 지하에 동굴이 있다. 예로니모 성인이 약 사십 년에 걸쳐 성경을 번역하신 장소다. 불가따 라티나가 바로 여기에서 완성되었다. 이 성서는 성령의 감도에 힘입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번역되었다고 한다. 사십 년이라니...... 모든 위대한 일은 그만큼의 세월을 요하는 것 같다.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겠다. 모두들 아기 예수님이 오늘 우리 마음 안에 참되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희망했으리라.

오후가 되어 일행은 휴식을 취할 겸 해서 사해를 보러 갔다. 죽음의 바다 사해 주변으로 펼쳐진 풍경은 놀랍기 그지 없었다. 거대한 바위 산맥이 연이어 있고 땅은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을 정도로 메말랐다. 거대한 황토색과 호수의 푸른 빛깔이 내 눈에 비친 전부였다.

사해는 염분의 농도가 매우 짙기 때문에 물에 들어가니 몸이 마치 고무공처럼 둥실 떴다. 희한한 곳이다. 그러나 염분은 이 호수에서 어떤 생명체도 자랄 수 없게 한다. 대신 물에 미네랄이 풍부해서 이 사해의 진흙은 머드팩의 원료가 된다고 한다.

바로 근처에 쿰란 공동체의 유적이 있었다. 높게 솟은 바위산 구석구석에 쿰란 공동체 사람들이 살았다는 동굴이 보였다. 산 아래에는 그들이 음식과 물을 저장하기 위해 땅을 파서 만든 집터가 남아 있다.

거대한 바위산의 위용에 압도당한 나는 자신이 무척 왜소하게 느껴졌다. 쿰란 공동체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오직 메시아만을 기다리며 극기의 삶을 살다가 로마군에게 전멸당했다고 한다. 건조한 바람 속에 그들의 극도의 순수함이 전해 온다. 그 삶과 이곳의 기후가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다.

광야를 뜨겁게 했던 해가 산 너머로 지고 있다.

 

 


6. 사랑 - 게쎄마니 동산에서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다. 당신께서 가르쳐 주셨던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하기 위해 서울로 들어가신다. 그분은 우스꽝스럽게도 나귀를 타시고 서울로 향하셨다.

초라한 행렬, 그 길 양편으로 현재는 집들이 빼곡이 들어차 이어진다. 그때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분을 맞았을까. 더러는 환호했을 것이다. 더러는 창문으로 내다보기도 했을 것이고 개중에는 관심 없는 듯 도로 문을 닫아 버리기도 했을 것이다.

나귀 위의 예수님의 심경은 어떠하였을까? 그분은 알고 계셨는가? 환호하며 반기던 사람들이 정작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자들 역시 그분의 마음을 알지 못함을. 착잡하고 두려우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고 싶어 하셨으리라. 또한 외면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벳파게 기념 성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 호산나 다윗의 아들... 그 시대 사람들은 저 말의 참뜻을 알고 외쳤을까.

그리고 그분은 눈물을, 눈물을 흘리셨다. 예루살렘 입구, 온 예루살렘이 환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예루살렘아, 네가 오늘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우리가 찾은 이 언덕에, 흐르는 눈물의 모습을 띤 기념 성당이 그 일을 말해 준다. 지금도 그분은 여기 서셔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실지도. 아아, 너희가 평화를 안다면. 그곳 성당에서 우리 공동체는 미사를 드렸고 강론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와 우리들을 향한 예수님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분께 마지막이 임박해왔다. 그분이 마지막으로 하셨던 일은 무엇이었나. ‘최후의 만찬’. 우리는 그 길을 찾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에 그분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드신다. “너희는 받아 먹어라. 받아 마셔라.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 그분은 분명 당신의 사랑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

그리고 산에 가신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갔다. 뙤약볕 아래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우리 일행은 몹시 피곤한 몸으로 게쎄마니 대성전에 닿았다. 예수님은 산에 가셨다. 기도하시기 위해서.

대성전에서 조금 내려가면 동굴 성당이 있다. 홀로 기도하신 예수님, 제자들에게 함께 깨어 있어 달라고 부탁하신 예수님. 두려움과 고뇌에 괴로워하는 한 영혼의 떨림이 느껴져 마음이 이상했다. 동굴 안은 어둑어둑하다.

졸음이 마구 몰아닥치는데 그날의 제자들이 생각났다. 예수님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피땀을 흘리실 정도로 괴로워하는데 잠든다. 성서가 말하듯 그들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 잠들어 버린 그들의 모습, 그리고 나. 나 역시 잠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분이,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무수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안에 말이다.

마침내 병사들이 닥쳐오고 예수님은 가야파의 집으로 끌려 가신다. 우리 역시 다시 걸음을 재촉해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가야파의 집에 닿았을 때는 몹시 지쳐 있었다. 순례의 끄트머리다 보니 그간의 여독이 몰려온 데다 오늘 종일 걸은 탓이다. 공사 중이라 어수선한 가야파의 집, 해가 진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기껏 여행 와 놓고 피곤하다고 불평하는데 ‘그분은 오죽 힘들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분은 왜 여기 오셨나. 갈릴래아에서, 사마리아에서, 여기 예루살렘. 무엇을 위해 여기 계실까.

죽기 위해서 이 먼 길을 온 사람. 하느님 나라를 향한 그분의 열정이 그분을 예루살렘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혁명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두려워 하여 그분을 죽게 만들 집권 세력이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에 나는 피곤했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삼년이나 같이 고락을 겪어 온 제자들도 뿔뿔이 도망갈 수 밖에 없는데, 누구 하나 반기지도 않는데, 제자들조차 그분이 가르친 하느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의연히 그 고난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마음에 떠오른 낱말은 사랑이었다. 사랑, 완전한 사랑, 신의 사랑. 가장 흔하지만 가장 위대한 언어. 그 시간을 견디게 해준 힘은 믿음, 희망, 사랑이리라.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희망, 그리고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뜨거운 사랑.

 

 


7. 죽음 - 예루살렘 성 안에서

나자렛에서 출발하여, 갈릴래아 호수를 거쳐, 사마리아를 지나, 이곳 예루살렘까지 온 우리의 순례길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십자가,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할 차례다.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유다인들의 통곡의 벽과 이슬람 교도들의 황금사원을 거쳐 베짜타 못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 서른 다섯 해나 앓아온 중풍병자를 낫게 하신 못. 지금은 마른 돌무더기만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나는 상상으로 물을 채워 넣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어루만지시며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셨는데, 이제 십자가의 형벌만이 그분을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길은 지금은 시장 골목으로 변해 있었다. 좁은 길 양쪽에 고만고만한 크기의 상점이 연이어 붙어 있었고, 길은 여러 갈래로 얽혀 있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이 길을 지나가실 때 사람들은 그분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구세주라고 여기진 못했을 것이다. 모두들 그분께 원하는 것이 달랐다. 세상, 이스라엘의 독립, 빵...... 예수님은 그런 바램은 채워줄래야 채워줄 수 없었다. 그분이 사람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하느님 나라, 그리고 하느님이 우리를 이 순간 지극히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이기에. 오히려 죄인들과 세리들이 그분의 말씀을 알아차렸을 수도...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셨던 일은 당신의 뜻을 알든 모르든, 그 모든 사람들을 무한한 연민과 사랑으로 바라보신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고통을 겪으신 것이었다. 어쩌면 미약해 보일 수도 있는, 그 무한한 보이지 않는 사랑 때문에.

기대가 컸던 데 반해, 십자가의 길은 시장길의 소음에 묻혀 나에겐 다소 산만하게, 정신없이 끝이 나고 말았다. 이 먼 데까지 와서 십자가의 길이 이렇게 빨리, 별 감회도 없이 끝이 나다니. 참 허탈했다.

그러나 그 후 복음나누기를 할 때 어느 자매님의 묵상을 통해 이 길을 새로이 보게 되었다. 그분은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예수님의 ‘침묵’을 짙게 느꼈다고 하셨다. 그분의 말 없으심을. 그리고 그것을 지켜 본 성모님의 말 없으심을.‘그분은 순한 어린 양처럼 끌려 가셨다.’ 예수님은 침묵으로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견뎌내신 거다. 침묵 속에서 그분은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셨고,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침묵 속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다.

이윽고 우리는 예수님 무덤 성당에 닿았다. 미사를 드리며 예수님 고통의 의미를 생각했다. 그분의 사랑은 얼마만한 크기의 사랑이기에 감히 남을 위해 죽을 수 있었을까. 그분은 나를 위해서도 그 고통을 겪으셨을까. 돌아가셨을까. 제자들을 바라보셨듯이, 유다를 바라보셨듯이, 십자가 위에서 자심의 죽음을 원하는 그 시대 사람들을 고통과 사랑에 찬 눈길로 내려다 보셨듯이, 나를 바라보고 계실까.

십자가의 길이 끝나고, 그분의 무덤에 와서도 내 마음은 계속 텅 빈 것 같았다. 거기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줄을 한참 길게 서서 예수님 무덤을 구경하고 나왔을 때는 더욱 공허감을 느꼈다. 무덤에서 나는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했다. 어쩐지 예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디에 계시단 말인가.

한참 뒤에야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수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것은 빈 무덤이었다. 그분은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

예수님 무덤을 떠날 때 그곳 수사님께서 주신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He is risen.
He is not here.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8. 진정한 기쁨 - 엠마오에서

학살 - 그 슬픈 역사

순례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아왔다. 우리는 예루살렘 주변에 있는 몇 곳을 방문했다. 세례자 요한이 태어난 곳이라는 아인카렘과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스에 의해 죽어간 유다인들을 기억하기 위한 유다인 학살 기념관(야드바셈)을.

야드바셈은 육백만이 넘는 유다인들이 나치스의 손에 의해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끔찍하고 슬픈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슬픔을 반영하듯이 건물 내부가 전부 검은 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절로 느껴졌다.

인간의 죽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날까. 나치스는 분명 죽음을 마지막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 많은 유다인들을 죽임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죽음의 강을 건너

어제 갔던 무덤, 예수님의 죽음이 다시 떠올랐다. 죽음은 그분에게도 끝이었을까? 그러나 나는 확인했다. 그분의 무덤이 비어 있음을. 그럼에도 나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리라는 자연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버스를 타고 마지막 순례지인 엠마오를 향해 가면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낙담하여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제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그들의 희망도 사라졌다. 나도 그들처럼 낙담할 수밖에 없는가. 제자들은 선생님과 함께 있었던 모든 일들을 단순한 추억으로 간직한 채 고향으로 갔을 것이다. 그들은 왜 주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했을까. 예수님을 따랐던 여인들이 무덤이 비어 있다고 말했는데도 말이다. 아마 그들 역시 죽음이 마지막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벗어 던질 수 없었으리라.

죽음을 뛰어 넘는 삶,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가짐, 죽음의 강을 훌쩍 건너서 영원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인내심 - 근사한 말이다. 우리들은 이론적으로는 이런 말들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내게 죽음이 닥쳐온다면 나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죽음의 절망을 아는 사람만이 부활의 기쁨을 알 것이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살아있음의 기쁨을 비로소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나는 부활의 의미를 잘 모른다. 나에게는 정말이지 너무 어렵다. 죽지 못해서일까. 엠마오의 제자들도 아마 죽음이 무엇인지를 몰랐기에 부활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왜 우리들은 부활을 눈으로만 보려고 할까? 부활이란 단어를 죽기 전의 모습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나는 것으로 한정지으려 할까? 우리들도, 그리고 엠마오의 제자들도 주님의 부활을 그렇게 이해했기에 부활의 참 의미를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여기, 부활한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우리는 엠마오 근처 수도원에서 순례를 마감하는 미사를 드렸다. 부활은 추억이 아니라고 신부님께서 강론하신다. 추억은 시간이 흐르면 빛이 바랜다. 아무리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하더라도 시간 앞에서는 희미해져 갈 수밖에 없다고. 그렇지만 부활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그분을 만나는 것이며, 그분이 나와 함께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눈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부활하신 그분을 만나자고 하셨다.

내 평생 성체성사가 그토록 감동스러운 적이 없다. 성가가 울리고, 빵을 떼어 포도주에 적셔 먹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자, 받아 먹어라."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는 지중해를 보러 갔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저 너머에도 삶이 펼쳐지고 있으리라. 나를 여기 있게 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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