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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교실 이야기

"선생님, 잘 부탁해요."

by 릴라~ 2011. 3. 3.

 

전문계고에 내신을 낼 때 주위에서 다들 말렸다. 그렇게 거친 애들 틈에서 어떻게 버티겠냐고. 한 지인은 거기 몇 년 있으면 몸에 '사리' 생길 거라고 농담조로 말하기도 했다. 지원한 계기는 그놈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모든 종류의 학교를 한번 골고루 경험해보고 싶었다. 막상 원하는 대로 전문계고에 발령이 나니 나 역시 걱정이 없지 않았다. 언론에 학생에게 맞는 교사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세상이므로. 

내가 맡은 건 1학년 기계과 담임이었다. 입학식에서 처음 본 아이들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순한 인상이었다. 몇몇 눈에 띄는 양아치(?)들이 있긴 했으나 전반적으론 얌전했다. 아니, 젊은이답게 발랄하지 않고 다소 기가 죽어 보여서 안타까운 마음도 조금 있었다.

복도에서 한 학생이랑 마주쳤는데 인사를 하길래 안면이 있어 우리 반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학생이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선생님, 잘 부탁해요."

그 한 마디가 마음에 쿵 박혔다. 그 아이가 하루종일 낯선 장소와 낯모르는 급우들 사이에서 느꼈을 긴장과 걱정이 그 한 마디에 다 담겨서 전해졌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솟아올랐다.

직전에 근무했던 중학교는 교육열이 높은 곳이었다. 학생들이 공부에 애착도 있고 지적으로 탁월한 학생도 여럿 있어서 수업하기 좋은 여건이었다. 어려운 이야기도 곧잘 알아듣고 글도 잘 써냈다. 그러나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학원에, 과외에, 지나치게 공부에 시달리고 있어서, 무언가를 더 가르친다는 것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진 못했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공부도 선생님도 아닌, 삶의 여유였으니까.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매사에 짜증스러운 아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새로 만난 교사들은 여기 아이들한테 기대하지 말라고, 곧 수준을 알게 될 거라고 하셨다. 학생들을 오래 관찰한 결과니 일리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곳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나는 교사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첫날의 나는 새로운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내게 다가온 그 작은 목소리를 보듬어주고 싶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연민이 솟구쳐오른 것이다.

나는 그 아이 이름을 묻고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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