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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학교 이야기

전문계 고등학교에 와서

by 릴라~ 2011. 7. 17.

드디어 방학. 우여곡절 끝에 한 학기가 지났다. 몇 달이지만 일 년쯤 훌쩍 간 것 같다. 3, 4월 적응하느라 어리버리 지나가고 5월부터는 날마다 가슴을 쳤다. '아니 내가 어쩌자고 여기를 왔지?'

이 모든 걸 미리 알았다면 이곳을 선택했을까. 내 대답은 확실히 '아니오', 이다. 인문계의 야자와 보충을 피해서 이리로 왔더니 그보다 훨씬 더한, 그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비합리성' 이 이곳에 있었다.

냥냥군 왈 "내가 뭐랬어? 가지 말랬잖아. 누난 꼭 그걸 경험해봐야 알아?"  그랬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니었는데 머리 나쁘면 직접 경험해보고 아는 수밖에....

내신 쓰기 전, 그저 애들이 공부를 좀 못하겠거니 한 내 생각은 전적으로 잘못되었음이 드러났다. 학생들은 그저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태도, 인성, 감수성, 체력 등 모든 면에서 아주 많이 부족했다. 우리 학교가 전문계고 중에서도 성적이 낮은 그룹에 속하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지각은 당연한 거고, 가출, 무단 결석, 절도, 수면제 먹고 실려간 애까지....십여 년 경력이지만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요 몇 달 새 다 일어났다. 예전 같으면 책을 한 권 뗄 시간인데, 이번 학기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날마다 전화 돌린 거 밖에 없는 것 같다. 아침에 안 보이면 바로 전화해야 무단 결석을 막을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반이 상대적으로 괜찮았고, 어찌어찌 가출한 애들도 다 돌아와서 100% 출석하고 있긴 한데, 그럼에도 한 학기가 지나고 보니 점점 좋아진 것이 아니라 주변 분위기에 따라 점점 흐트러진 것 같아서 많이 실망했다. 전문 교과 위주로 교육과정이 편성되어 있다 보니 하루 종일 실습실에 있는 시간이 많고 교실에서 보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한 반의 몇몇은 얼굴 표정만 보아도 이미 정서적으로 많이 손상되었음을 알 수 있는 거친 얼굴이다. 내가 여태 보지 못한 얼굴들이기도 했다. 계층 격차를 확연하게 느꼈다. 수성구가 크게 부유한 동네는 아니지만 이런 아이들은 없는 독특한 환경임을 알게 되었다. 착하고 괜찮은 학생들도 물론 있으나 이들이 심지가 강건한 편이 아니고 또 수도 많지 않아서 주변에 휩쓸려갈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학생들의 부족함보다 나를 더욱 힘들게 한 건 무기력한 조직 풍토였다. 교사들이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을 것이다. 부족한 학생들을 계속 상대하다보니, 외부와의 소통과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적절한 자극이 없다보니 굳어진 관행일 것이다. 전교생 천 명이 넘는 이 큰 조직을, 합리적 시스템도 없이, 교육의 리듬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체와 부분의 조화 없이,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떨 때는 정말 '견딜 수 없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원래 있던 분들은 초월하신 것인지, 체념하신 것인지 현실을 잘 수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냥냥군은 교사들을 비난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랬다. 나야 다른 곳에 있다가 왔지만, 이런 곳에서만 십 년 이상 있다보면 손을 놓을 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를 하면서 힘든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나하나 계속 포기하면서, 기준을 계속 낮추면서, 하던 일을 안 하게 되면서 힘들었다. 조직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자기 길을 가는 이가 있겠지만-얼마나 노력해야 할까-, 나는 이런 풍토 속에서 나다움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학교 일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에서는 어떤 지원도 없이 다양한 문제를 지닌 학생들을 오직 담임한테만 떠맡기고 있었다.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 공동의 규칙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교칙은 물러터졌으며-있기나 한 지 모르겠다- 학생부는 일하는 '척'만 하는 것 같고-내 주관적 판단이다- 모든 규율을 담임이 처음부터 끝까지 세워야 하는 이상한 구조. 전공 학과 실습 시간이 많고 국어라고 해봐야 일주일에 두 시간 뿐이므로, 전공 학과 선생님들이 담임을 맡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우리 과만 해도 네 반 중 세 반 담임이 인문 교과이다. 이 학생들의 진로와 공부에 대해서 인문 교과 담임이 조언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인문계고에서 예체능 교과가 가지는 입지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조금만 빈 틈만 보이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학생들을 '관리'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담임이 지고 있는데, 그에 반해 '발언권'은 전혀 없다. 학년 협의회가 없으니 담임의 의견을 위에 전달할 통로가 전혀 없다. 다시 말해 메신저로 시키는 일만 한다는 거. 그리고 옆 반과 동학년과의 소통 없이 각자 자기 반만 관리한다는 거. 엄밀히 말해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관리'이다.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 '공장'처럼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곳. 우리 학교를 보면 해묵은 경제적 재생산 이론이 일리 있음을 알게 된다.

학교의 시스템이 공장 같다는 게 젤 큰 문제인데, 전공 교과 교사들과 인문 교과 교사들간의 관점의 차이도 커서 소통이 쉽지 않다. 이는 어찌 보면 엄청난 차이이고 어찌 보면 미묘한 뉘앙스라서 이 문제 자체를 이해 못하는 선생님들도 많았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는 이들도 많았으며, 각자 터치하지 않고 자기 일만 하는 게 좋다는 분들도 있었다. 그랬다. 마음만 비우면 얼마든지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또한 우리 학교이다. 다른 대부분의 학교에서 하는 일들을 안 해도 되는 곳.

그래서 행복하면 다행인데, 선생님들은 여유는 있으되 결코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수준 같으면 쉬는 시간마다 애들이 불려와서 혼나고 교무실이 시끄러워야 정상인데, 교무실은 항상 고요하고 평화롭다. 학생과 교사간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 부딪힘, 감정적 교류 같은 게 부족해 보였다. 학생들이 수준이 낮으니 아예 상대를 안 하거나 형식적인 선을 긋고 대하거나 그런 것 같았다. 싸우고 부딪히고 화해하고, 그런 것들이 지긋지긋했었는데, 여기 와서 그게 의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당 4~5차시 수업이면 날마다 아이들을 보게 되는데, 딸랑 2차시 수업-그것도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지는-을 하니 뭔가 한 것 같지가 않고 맹숭맹숭했다. 예전에 참 많은 걸 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수필도 쓰고, 시도 쓰고, 책도 만들고, 장편소설도 읽고.....할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시수가 적으니 그때보다 부담이 훨씬 적지만, 부담이 있고 힘들더라도 뭔가를 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수업 시간은 그렇다 쳐도, 인문 교과가 이 조직에서 발언권이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다. 다른 학교 같으면 부장이 담임과 관리자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한다. 그리고 학년협의회, 교과협의회 등이 있어 동학년 교사들과 충분히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여기선 개인적으로 친한 분들과 이야기하는 것 말고 일로서 공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창구가 하나도 없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건데-어느 선에서 결정되는지 누가 결정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시간이 흘러도 도저히 적응 못할 것 같다.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조직이 굴러가는지, 생각하면 속 터진다.

4년 임기를 채우기 전에는 이동이 쉽지 않지만, 가능하면 빨리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 학기 해보니 교과서는 지금 아이들에게 큰 의미 없는 것 같은데 다음 학기엔 뭘 하면 좋을지. 다른 걸 하면 좋을 텐데 딱히 좋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니,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이곳 아이들의 삶을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여기선 날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대체 교육이란 무엇인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교육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가. 교육이란 가르침과 배움의 두 축으로 굴러가는 활동인데, 우리 나라처럼 배움보다는 가르침에, 보이는 활동에 과도한 관심이 쏠려 있는 곳도 없으리라. 무언가를 하려 하지 말고 현실을 더 많이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해봐야겠다. 무언가를 바꾸어낼 역량은 없지만 다른 곳에 갔을 때 여기서 이해한 것들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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