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는 나름의 별칭을 지니고 있어요.
특히 이탈리아의 도시는 대개가 그러하지요.
물의 도시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성프란치스코의 도시 아씨시,
성녀 카타리나의 도시 시에나......
제가 방문한 도시의 별칭들이에요.
그런데 그 별칭 중 가장 인상적인 이름은
로마가 갖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로마를 이렇게 불러요.
'영원한 도시'라고. 로마에 대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애정과 자부심이 그대로 담긴 말이죠.
이천 년 된 도로 아피아가도,
고대 로마의 중심지 포로 로마노, 콜로세움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고대 도시이자,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대표되는 중세 유적,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흔적까지,
말 그대로 '영원한 도시'라 할 만했어요.
로마에서 내가 놀란 건, 로마 조각과 건축의 그 스케일 때문이었습니다.
남성적인 호방함이 느껴지는, 활달하고 선이 굵은 로마 스타일은
아기자기한 느낌의 빠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역동적이고 힘찬 기운, 세상을 지배하는 기운이 넘쳐흘렀습니다.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마주치는 작은 것 하나하나가 모두
시원시원하고 거칠 것 없는 로마인의 기상을 부여주었어요.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유일하게 감흥이 없었던 곳은 성베드로대성당이에요.
이건 뭐,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크기가 커도 너무 커서
크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만했어요. 하지만 성당으로 들어가며 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미술 작품이 자연과 우주가 주는 광대함을 느끼게 하긴 쉽지 않은데,
천지창조가 바로 그러한 작품이었어요.
오래 보고 싶었는데, 뒤에서 계속 떠밀어대는 사람들로
5분만에 그 방을 통과하고 만 점이 원통했어요.
저절로 떠밀려서 그 방에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한 번 더 가서 볼까도 생각했지만,
두 시간 넘게 줄 설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카타콤베, 판테온, 유명 관광지는 다 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유적보다도 로마라는 도시의 그 분위기가 더욱 매력 있었습니다.
그 도시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고대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곳.
그 어느 거리라도 즐겁게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로마에 머문 열흘 동안 그래서 갔던 곳을 또 가고 또 가고 했지요.
다만 너무 더워서 낮잠을 한숨 잔 뒤 오후 네 시부터 산책에 나섰지만요.
'영원한 도시'에서 맞이한 뜨거운 여름이었습니다.
*2006/8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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