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사는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러나 그 재능이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해칠 수 있음을 알고는 사람들과 최소한의 접촉을 유지한 채 그 힘을 숨기며 살아간다. 더이상 감추는 것이 불가능해졌을 때 엘사는 인간 세상을 떠나 자기만의 성을 짓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그 성에서 엘사는 자유롭다. 자신의 재능을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발휘하며 자기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다. 하지만 그 자유의 대가는 외로움이다. 엘사가 만든 얼음의 성은 타자의 방문이 없는 고립된 공간이다.
나와 다른 타자와의 만남은 이처럼 그 다름이 서로를 억압하고 해칠 수 있는 위험성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다.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이 경우 타인은 지옥인 것이다. 엘사를 제거함으로써 도시에 휘몰아친 겨울이 사라지고 다시 평화가 올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에게도 타인은 그 다름이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만 여겨진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관계의 단절 말고 다른 길은 없을까. 서로가 한쪽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일 없이 그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영화 <겨울왕국>은 질문의 깊이에 비한다면 의외로 단순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 답은 언니 엘사를 사랑한 동생 안나와 안나를 사랑한 크리스토프로부터 온다. 이 두 사람은 타자를 만나기 위한 위험천만한 여행을 시작한다. 그들은 그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름을 없애야 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타자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인류는 나와 다른 낯선 타자와 맞부딪혔을 때 그 다름을 이해하기보다는 그것을 죽이고 제거하는 방법을 택해왔다. 다름이 지닌 새로운 가능성에 매혹되기보다는 그것이 줄 수 있는 위험을 앞서 두려워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자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안나와 크리스토프가 보여주듯이 답은 아마도 서로에게 다가가는 그 '과정' 속에 있을 것이다. 이 만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신뢰를 품고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며 타자를 향한 여정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다가가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길'이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여행은 끝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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