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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철학, 심리

<무의식의 신> - 빅터 프랭클

by 릴라~ 2017.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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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둘 다 무의식적이지만 영적인 것은 무의식적일 수도 있고 의식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어떻게 이 두 영역을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p30

 

우리는 실존을 본질상 영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반면, 사실성은 신체적이며 심리적인 사실들, 곧 생리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사실들을 포함하는 어떤 것으로 정의하겠다. 그리고 실존과 사실성 사이의 경계선, 곧 생리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사실들을 포함하는 어떤 것으로 정의하겠다. 그리고 실존과 사실성 사이의 경계선, 곧 존재론적 경계선은 가능한 한 명확하게 그어져야 하는 반면, 신체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 사이의 경계선은 사실성의 영역 안에서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다.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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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신'은 인간 안에서 활동하는 비인격적인 힘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오해는 융을 희생시킨 가장 중대한 착오였다. 무의식 안에서 종교적 요소들을 명백하게 드러내 준 것은 융의 지대한 업적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융은 무의식의 신을 인격적이고 실존적인 종교 안에 정위치시키지 못함으로써 인간의 무의식적 종교심을 엉뚱한 곳에 가져다 놓았다. 오히려 이것을 충동과 본능의 영역에 배치시켰는데, 이 영역 속에서는 무의식적 종교심이 더 이상 선택과 결단의 문제로 남아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융에 따르면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종교적일 따름이지 내 자신이 종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나를 신에게로 밀고 나가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대해 선택을 하거나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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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실존은 적어도 신경증적으로 비뚤어지지 않은 이상 언제나 자기 자신을 지향하기보다는 완성시켜야 할 의미로서의 어떤 것 또는 사랑을 통하여 만나야 할 대상으로서의 어떤 사람을 지향한다. 나는 이러한 인간 실존의 구조적 특징을 '자아초월'이라는 말로 표현해왔다. '자아실현'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 자아초월의 결과요 자연적인 부산물이다. 따라서 핀다르의 명령, 곧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되어라',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신의 가능성들을 실현하여라'는 야스퍼스의 다음과 같은 말에 덧붙여 주어질 때만 타당하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통하여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또는 매슬로우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아실현의 과업"은 '어떤 중요한 일에 전념함으로써' 가장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다.

 

자아실현이 우회를 통해서만, 곧 의미의 완성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처럼, 주체성도 책임감을 통해서만, 다시 말해서 의미를 완성하기 위해 책임 있는 존재가 됨으로써만 확립된다. (...)

 

그러므로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특징을 지닌다. 인간은 어떤 대의명분이나 타인에게 자신을 내주고 자신을 잊어버릴수록 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가 된다. 또한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나 다른 사람 안에 흡수되고 심취해 들어갈수록 참으로 더욱더 그 자신이 되어간다. 예를 들어 놀이에 열중하여 자신을 잊어버린 어린아이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때가 바로 스냅 사진을 찍어야 할 순간이다. 그러나 아이가 자기 모습을 찍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 자연스런 우아함 대신 부자연스런 자아의식을 드러내면서 아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사진을 찍을 때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판에 박힌 얼굴 표정을 짓는가? 이런 표정을 짓는 이유는 나중에 그 사진을 볼 사람이 갖게 될 자신에 대한 인상에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관심이 그들을 그처럼 추하게 만든다.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사진사도 나중의 구경꾼도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아름다울 것이다.   p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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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매슬로우의 욕구의 순위는 먼저 인간의 생활수준을 개선해야 하고, 그 다음에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병에 걸린 사람이 가장 먼저 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때 건강은 그의 인생의 최고 목표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건강은 목적으로 나아가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건강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얻기 위한 선행조건일 뿐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경우에 방법 뒤에 숨어 있는 목적을 찾는 것이 첫 번째 명령이다. 그리고 이것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은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대화법이 알맞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매슬로우의 동기이론은 여기에 알맞지 않다. 왜냐하면 필요한 것은 높은 욕구와 낮은 욕구를 엄격하게 구별하는 일이 아니라 개인적 목적이 단순히 방법인가 아니면 의미 그 자체인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이 차이를 잘 알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다음과 같은 우스운 단막극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강아지 한 마리가 무의미감과 공허감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찰리 브라운이 음식이 가득찬 밥그릇을 들고 들어오자 "아! 의미가 들어오는구나!" 하고 소리친다. 우리를 웃게 만드는 것은 의미와 수단의 혼동 그 자체다. 음식이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해서 한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무의미감과 공허감을 제거시켜 줄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pp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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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향한 의지'라는 개념이 다분히 이상적이라면 나는 그러한 이상을 현실적 이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가 인간 능력을 최선으로 끌어올리려면, 먼저 우리는 최선으로 나아가려는 그런 능력이 실존하고 현존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표류하고 추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 능력은 최악으로 내려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에게는 인간답게 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할지라도 참으로 인간답게 사는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아마도 언제나 소수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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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음은 성적 친밀성과 결부되어 세상에 널리 퍼져 있으며, 심지어 사람들은 성적 친밀성을 우리 시대의 질병에 대한 해결책으로까지 믿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인구폭발의 시대에 필요한 해결책은 성적 친밀성이 아니라 실존적 사생활이라고 생각한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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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질병과 불안을 극복하려면 먼저 그것들을 정확하게, 곧 좌절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좌절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동기를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특별히 인간의 가장 깊은 동기인 인간의 의미 추구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p119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는 말은 의미란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를 다른 식으로 정의하자면 주어진 상황에 내재한 '요구 특징' 또는 '요구 특성', 곧 상황의 '요구 조건'은 '객관적 특성'이라는 말과 같다. 따라서 의미는 체험적 지평 위에 있는 단순히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p12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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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는 고유한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을 만나는 고유한 인격체와 관련이 있다. 고유한 의미와는 대조적으로, 가치는 어느 집단의 구성원들 전체가 그것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다소 보편적이다. 나는 가치를 보편적 의미라고까지 정의하고 싶다. 그러나 가치는 변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과거의 전통이 현재 쇠퇴함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런  문화적 풍토는 결국 무의미감, 내적 공허감, 그리고 내가 실존적 공허라고 불렀던 것들에 의해서 개인적 지평에 반영되고 반사된다. 전통과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 그러나 의미는 보편적 가치와는 달리 고유하기 때문에 전통에 의해서 전달되지 않으며 전달될 수도 없다. 오히려 의미는 개인의 양심에 의해서 그 사람의 의식에 전달되고 조절된다.

 

우리 시대와 같은 무의미 시대의 교육은 전통과 지식을 전달하는 것으로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을 정화하는 일에서 본연의 임무를 찾아야 한다. 전통과 가치의 쇠퇴에도 양심은 여전히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보편적 가치의 붕괴는 고유한 의미의 발견으로만 대처해 나갈 수 있다. (...) 인간은 예민한 양심으로만 실존적 공허의 결과들인 순응주의와 전체주의에 저항할 수 있다. p138-139

 

인간성은 인간 자신의 책임감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의미요법의 철칙이다.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를 실현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삶의 상황에 응답하고 그 상황이 물어오는 질문에 대답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부름들에 대답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누가 부르고 있는가? 그리고 인간은 누구에게 대답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는 의미요법이 대답할 수 없다. 거기에 대답해야 하는 사람은 환자 자신이다. 의미 요법은 단지 환자의 생득적 책임 의식을 높여줄 수 있을 따름이다. p139-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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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스미디어의 폭탄을 맞고 있다. 우리는 성적 자극의 폭탄을 맞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우 심각한 현상은 정보의 홍수인데, 그것은 전혀 새로운 종류의 풍요를 우리 사회에 안겨 주고 있다. 서적과 잡지가 우리의 책상 위에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우리가 이 모든 잡동사니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를 원치 않는다면,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 사이에서 무엇인가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선택하고 분별하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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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실존적 공허는 사회발생적 신경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산업화 사회는 분명 인간의 모든 욕구를 만족시켜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또한 산업화 사회의 동료인 소비 사회는 인간을 만족시키는 새로운 욕구를 끊임없이 창출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절박한 욕구인 우리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실현하려는 욕구는 이 사회에 의해서 좌절되고 있습니다. 산업화의 결과로 생겨난 도시화는 인간을 전통에서 뿌리채 뽑아 전통해 전해주는 가치들로부터 그를 단절시키려고 합니다. 체험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당연히 이 상황에서 실존적 무의미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쪽은 특별히 젊은 세대지요. 구체적으로 중독, 공격성, 우울증과 같은 현상들은 최종 분석에서 허무감과 관련 있습니다.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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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신과의사들은 환자에게 주어진 상황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에게 일러 줄 수 없습니다. 나아가 환자가 자신의 삶 전체를 어떤 의미로 바라보아야 하는지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곧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우리에게 의미를 제시하는 걸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줄 수는 있지요. p170

 

여기서 끌어낼 수 있는 추론은 삶에는 어떤 조건에서도, 심지어 최악의 조건에서도 의미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추론과는 모순되게 무의미감이 도처에 만연되어 있는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보통 사람이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게 되는지 한번 연구해봅시다. 의미를 실현하는 길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둘째는 어떤 것을 체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다시 말해서 일뿐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셋째 길입니다. 운명과 마주할 때 우리는 그것을 바꿀 수 없지만, 우리 자신 위로 솟구치고 자신 위로 성장함으로써, 한마디로 우리 자신을 바꿈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어 내야 할 소명을 타고 났습니다. (...) 우리는 고통을 인간적 성취와 완성으로 바꿀 수 있고, 죄책감에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변화의 기회를 끌어낼 수있으며, 삶의 덧없음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할 동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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