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한 달 동안 윤동주, 한용운, 김구와 함께 보냈다.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문학에 흠뻑 빠져본 시간이었다.
한 작품을 충분히 느끼고 싶어서 별 헤는 밤, 나룻배와 행인, 나의 소원(1부와 3부)만 읽었고
작가들의 다른 작품은 아쉽지만 손대지 않았다.
평균적으로 한 작품을 맛보는 데 일주일(4차시) 정도 걸렸다.
동시대의 작품 여럿을 함께 놓고 보는 것도 괜찮았고
시와 수필이 섞여 있어서 동시대의 생각의 편린을 두루 맛보는 느낌도 있었다.
윤동주, 한용운, 김구 이 세 분이 나름 개성이 뚜렷한 분들이고
학생,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의 글이라
동시대 작품이지만 서로 다른 고민의 지점들을 확인하는 것도 괜찮았다.
한 달 동안 애착을 가졌던 작가들을 떠나보내자니 아쉬웠다.
나도 좀 더 잘 느껴보고 싶어서 컴퓨터 바탕화면에
이분들의 사진을 깔아놓았다.
단원이 바뀌어 컴 배경화면을 이중섭의 그림으로 바꾸면서 섭섭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위대한 작가들의 위대한 작품을
좀 더 잘 전하지 못해 죄송스런 마음도 들었다.
글 한 편 한 편이 보석 같았다.
그 시대는 물론이고 오늘 우리의 마음도 밝혀줄 수 있는
지성적이고 감성적인 깊이를 담고 있었다.
학생들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가장 좋아했다.
한 반 22명 학생 중에서 대부분인 18명 정도가 '별 헤는 밤'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고
한두 명이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을, 또 한두 명 혹은 두세 명이 김구의 '나의 소원'을 선택했다.
나는 '별 헤는 밤'이 정말로 대단한 작품이구나 하고 느꼈다.
전혀 다른 시대의 열다섯 살 중학교 2학년 학생도 공감할 만한 요소를
너무나 쉽고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원 마무리로는 조별로 골든벨 형식의 퀴즈를 했고
길게 글을 쓰지 않고 간단히 한 줄 평을 썼다.
윤동주, 한용운, 김구 글이 끝날 때마다 몇 줄씩 썼는데
갓 중학교 2학년에 올라온 학생들이고
작년에 공책 사용을 전혀 안 한 데다가 2학기는 자유학기제로 보냈기에
조금 쉽게 시작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별 헤는 밤'을 많이 좋아하고(낭송의 맛을 느끼고 있어서)
또 인물 설명을 그리 지루하게 여기지 않은 점이 조금 놀라웠다.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 이름으로만 듣던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그가 쓴 글을 직접 읽어보아서 새로운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아이들 글은 아직 비문이 많은데 일일이 고치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연스럽게 교정될 부분으로 보여졌기 때문에 그냥 두고
대표적인 오류(주어-서술어 호응 문제)는 기회를 보아서
전체적으로 한번 이야기하고자 한다.
수사법도 다루지 않았는데, 내용 감상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시험 전에 따로 한 시간 정도 내어서 비유, 상징, 반복 등을 한번에 정리해주려 한다.
아이들이 글 읽기가 재미없는 이유는
자신의 현재 관심사와 거리가 먼 글이거나
어휘/배경지식, 관련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라는 큰 맥락을 먼저 지시하고
학생들의 부족한 배경지식/경험을 참고자료와 교사의 이야기로 채워넣고
나머지는 스스로 읽는 방향으로 수업을 했다.
아이들은 감성의 그릇은 어른보다 결코 적지 않고 더 나은 부분도 있기에
그 감성에 무언가 건드려지는 부분이 있다면 글을 딱딱한 문자가 아니라
작가의 가장 뜨거운 숨결이 닿아 있는 살아있는 생각과 감성의 덩어리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그래서 많은 글을 다루지 않고 한 편이라도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느껴볼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가고자 한다.
부족한 경험과 배경지식으로도 좁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바로 소설이다.
그래서 중학교 아이들에게는 쉬운 소설이 가장 좋은 읽기자료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한 줄 평 중에서는
"뜻을 몰라도 아름답지만 뜻을 알면 더욱 아름답다",
"윤동주가 별에 이름을 붙일 때마다 마음이 떨렸다"는 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분들은 우리 문학의 영원한 등불이다.
"독립운동가의 마음을 조금 보았다고 생각한다"고 쓴 학생도 있었다.
그랬다. 우리가 본 것은 이분들의 마음의 '조금'일 것이다.
이 '조금'이 세상을 깊고 넓게 보기 시작하는 싹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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