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담임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던 무렵이었다. 4월 말쯤 되었을 때 갑자기 3학년 국영수 담당 교사와 부장 교사를 대상으로 한 회의가 소집되었다. '학습부진아'에 대한 대책회의였다. 작년까진 아무 말 없다가 갑자기 왠일인가 싶었다. 교육감의 지시 사항이라 했다. 성취도평가의 결과를 학교평가와 교감의 승진에 반영한다는 내용이었고, 그래서 각 학교마다 갑작스럽게 대책회의에 들어간 거였다.
1997년부터 현장에서 일해온 나는 지금껏 수많은 정책사업이 유행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왔다. 국어과의 예를 들면, 2000년대 초반에는 아침독서가 주류였고 이후에는 디베이트, 책쓰기가 강조되다가 지금은 인문학, 연극 등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활동들이 그 자체로는 교육적 가치가 있지만, 각급 학교의 사정을 반영하지 않은 채 의무적으로 시행되었다가 몇 년 지나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버리는 게 문제다. 정책 입안자가 바뀌기 때문이다. 삶쓰기 100자가 유행일 때 일선 교사들은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누구누구 승진하기 위해 대구 시내 모든 국어 교사들을 괴롭힌다고.
하지만 이 모든 유행은 '부진아 제로'에 비한다면 양반이었다. 이번처럼 황당한 정책은 듣지고 보지도 못했다. '부진아 제로'라니. 아니, 학생이 무슨 공장 물건인가, 사람이 기계처럼 딱딱 하자 없이 부진아 제로라니. 그래도 우리 학교는 플래카드는 내걸지 않았다. 어떤 학교는 '부진아 제로'라는 플래카드를 교문 앞에 떡 하니 걸어두었다고 했다. 오 마이 갓!
예전에도 성취도평가에 대한 압력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그 결과를 이렇게 노골적인 수치로 요구한 적은 없었다. 대구교육청이 성취도평가에서 전국 1등을 차지하기 위해 시행하는 정책이었다. 세상은 진보하기도 하고 일시적으로 퇴보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퇴보였다. 정치나 경제도 마찬가지겠지만 교육이라는 분야는 특히 결과로만 말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배려가 그 어떤 분야보다 섬세하게 배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J중학교는 수요일 7,8교시 두 시간이 방과후수업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교감과 연구부장은 국영수 부진 학생들은 방과후수업에 참여하지 말고 기초튼튼반(부진반) 수업을 의무적으로 듣도록 하자고 했다. 나는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공부에 취미 없는 학생들이 방과후 시간에 축구라도 마음껏 하게 해주어야 학교에 재미를 붙이는데, 그 시간까지 빼앗아 공부를 하라는 건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요?"
교감은 단호했다.
"선생님, 부진아들을 구제하는 것이 학교교육의 목표입니다."
부진아 교육이 필요하다는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학습부진 학생이 겪는 어려움은 기초 부족과 흥미 부족인데, 성취도평가 시험 문제 몇 개를 더 맞히기 위해 그 시간에 문제지를 푸는 것으로 부진아 구제가 될까? 성취도평가 문제는 평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보다 문제가 쉽다. 그 문제 중에 부진아 판별 문제, 즉 가장 쉽고 기초적인 문제가 몇 개 섞여 있는데 이 아이들이 그 문제를 다 맞추면 학습 부진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그래서 쉬운 문제 위주로 반복적으로 문제 풀이를 하라는 것이 회의의 요지였다. 이런 단순한 정량평가로 다양한 잠재력을 지닌 아이들에게 함부로 '부진아' 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도 문제지만, 공부가 어렵고 싫은 아이들을 방과후에 남겨서 지루한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이 그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십수 년간 누적되어 온 학습 결손이 몇 개월만에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무튼 학교에서는 부진아 지도 계획을 밀어붙였다. 우리 학교뿐 아니라 대구 시내 모든 학교가 다 그랬다. 당시 우리는 아침 자습 없이 바로 1교시가 시작되었는데, 아침 자습이 새로 생겼다. 담임들이 학생 관리를 할 여유가 부족하다는 명분에서였는데, 그러면 그 시간에 상담을 하도록 해야지, 말은 그렇게 해놓고 국영수 문제 풀이를 하라는 거였다. 아침에 시험을 쳐서 통과를 못한 학생은 그 날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하도록 하고, 그것을 3학년 부장 교사가 책임 지고 관리, 운영하라는 것이 연구부의 계획이었다. 성취도평가에서 부진아가 없는 학급에는 피자를 쏘는 등의 보상도 제시되었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연결하는 멘토-멘티 활동 계획도 수립되었다.
본인도 원치 않게 3학년 부진아 관리 업무를 맡은 3학년 부장 교사에게 나 이거 못하겠다고 말하는 건 참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성취도평가에 대한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부진아 지도를 맡기로 했다. 그래도 우리 학교는 정도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았다. 어떤 학교는 매일 두 시간을 남겨서 문제풀이를 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아침에 아이들은 시험을 치고 몇 개 이상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남아야 했다. 통과 기준은 시험을 낸 담당 교사가 아니라 연구부에서 정해서 남아야 할 아이들의 명단을 통보했다. 한 번은 내가 일이 있어 학교에 늦게 와서 비담임이었던 성선생이 대신 감독에 들어갔다. 우리 반 실장 혜정이가 센스가 넘친다며 칭찬을 했다. 열심히 문제를 풀던 혜정이는 반 아이들이 남을까 염려가 되어 어깨 뒤로 살짝 어려운 문제의 답을 손가락으로 들어보였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성선생은 눈감아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날, 교감이 3학년 교무실에 직접 올라와서 왜 3반만 이렇게 통과자가 많으냐고 물었다. 나는 "교감 선생님, 우리 반이 원래 수학을 좀 잘한답니다." 하고 웃으며 넘어갔다.
아침 시험에서 통과 못한 아이들을 방과후에 남기는 방식은 결국 말썽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수학을 맡은 이선생이 남아서 공부하던 아이들에게 5문제 중에서 4문제 이상 못 맞추면 집에 못 간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기준이 지나치게 높았던 것이다. 집에 가기는 글렀다고 생각한 몇몇 농땡이들이 교사에게 소리를 지르다가 그 앞에서 시험지를 찢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평소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학생이었는데 스트레스가 심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나는 원래 오후에 남길 생각이 없었다. 5분만에 통과시켜서 아이들을 귀가시킬 작정이었는데 국어 아침 시험을 치는 금요일 오후는 동아리 활동 시간으로 외부에 나가는 경우가 많아 어짜피 남길 수가 없어서 다른 과목의 부러움을 샀다.
3학년 국영수 교사들은 의무적으로 컨설팅에도 참여해야 했다. 컨설팅은 외부에서 온 장학사, 수석 교사, 그리고 우리 학교 국영수 담당 교사와 연구부장으로 구성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학교가 성적을 올려서 부진아를 제로로 만들 수 있을까가 회의의 주 내용이었다. 각급 학교가 성취도평가를 어떻게 대비하는지에 대한 현장 점검이었다. 기출 문제 위주로 반복해서 풀어주는 것이 결과가 가장 좋다는 조언을 들으며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기껏 장학사와 수석 교사가 교육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이것 뿐이란 말인가. '영혼 없는 공무원' 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부진반 운영에 대해 항의하는 학부모는 없는지 궁금했다. 방과후 수업 시간에 하는 부진아 수업에 3학년 11명이 참가하고 있었는데 개중에 여학생 3명과 남학생 1명은 이 수업에서 빼고 싶었다. 영어, 수학만 못할 뿐 수업 태도도 좋고 아무 문제가 없는 학생들이었다. 이 참하고 얌전한 학생들이 전교에서 태도가 가장 불량한 몇몇 학생들과 2시간을 함께 견뎌야 하는 것이 더 안쓰러웠다. 내가 부모라면 우리 아이가 부진반에 있는 것이 아이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것 같았다. 장학사 말로는 전화로 이의 제기를 한 경우가 있긴 했는데 크게 말썽이 될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6월이 되자 교감은 내게 정규 수업의 절반을 문제풀이를 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네'하고 건성으로 답하고는 신경쓰지 않았다. 수업이란 흐름이 있다. 45분 수업에서 20분은 교과서를 하고, 20분은 문제 풀이를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정상적인 수업 자체를 하지 말란 말과 같다. 나는 평소대로 수업하다가 시험 직전에 듣기평가 연습만 한 번 했다. 국어 듣기평가를 처음 치는 아이들은 당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6월 말, 성취도평가를 치르는 날이 다가왔다. 가장 황당한 일은 그 때 일어났다. 시험지는 사전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 봉투에 봉인해 두었다가 시험치는 당일 그 시간에 개방한다. 교감은 시험지가 개방되면 거기서 부진아 판별 문제가 어느 것인지 파악한 다음에 학생들에게 그 문제를 조금 더 신경 써서 풀라고 교실마다 돌면서 말해주라고 했다. 그건 시험의 공정성에 위배된다고 내가 이의를 제기하니, 교감은 답을 알려주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답변 드리고, 1교시 국어 시험을 칠 때 교실을 돌면서 주관식에 정확하게 답을 쓰라는 당부만 했다. 다음 교시 때 보니 다른 교사들은 신경써야 할 문제가 몇 번인지 번호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약 두 달에 걸친 전쟁이 끝이 나자 그 해 할 일을 다한 듯한 기분이었다. 두 달이니 다행이었다. 일 년이면 아마도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우리 학교는 내 노력과는 별개로 국어 부진아가 한 명 뿐이었고 전 해의 4명보다 줄었기에 학교에서는 내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학교마다 그 다음 해에는 시험을 더 잘 쳐야 한다는 거였다. 어떤 학교는 부진아가 실제로 제로였는데, 그렇게 되면 그 다음 해 담당 교사는 죽어나는 거였다. 학생이 다르고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매년 작년보다 나아질 수 있는지, 교사들은 교육청 관리들이 돌대가리 아니냐고 원색적으로 욕을 하기도 했다.
그 일 년이 지나고 새학기 업무 분장 신청서를 내면서 나는 '3학년 절대 희망하지 않음' 이라고 썼다. 작년의 소동에 질린 탓이었다. 내가 그렇게 했다고 이야기하자 지인들은 웃으면서 아마 대구 시내 학교들이 다 비슷할 거라고들 했다. 나는 2학년을 맡아 작년의 소동에서 비껴났고, 우리 학교는 올해 더 나은 성취도 평가 결과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영어, 수학만 분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태 통합반 수업을 하던 국어도 3학년은 A반과 B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운영했고, 기초부진 학생들은 1, 2, 3학년 모두 방과후수업에서 부진반 수업을 들어야 했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기 일쑤인 우리 반 영인이는 수요일만 되면 이렇게 말한다.
"쌤, 부진반만 안 가도 학교 다닐 맛 날 거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난리 치던 일제고사가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표집 평가로 바뀌었다. 학교와 교사들이 그토록 공을 들인 일이 불과 일 년 사이에 유명무실해지는 것을 보니 조금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나는 학교 현장에서 성취도평가 준비만큼의 '열정'을 한 번도 구경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청과 일선 학교가 어떤 것에 이만큼의 애정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연구부장, 교감, 관련 장학사가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이면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교육청은 각급 학교에 컨설팅 교사를 파견하여 점검을 하고 교감단 회의에서 노골적으로 지침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 지시를 받은 학교는 그 일에 정말 열심이었다.
하지만 그 열정은 정말 '교육'을 위한 것이었을까. 교육감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고 학교평가와 관리자의 승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직할 것이다. 지침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개인 신상의 어떤 불이익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점수보다 아이들의 건강한 삶이 더 우선이 되면 안 되는 것일까. 이 열정을 다른 것에도 기울일 수 있다면 우리 교육이 얼마나 좋아지겠는가. 교육철학이 있는 교육감을 선출하는 것은 그래서 너무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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