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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schooling

앰뷸런스 소동

by 릴라~ 2017. 5. 28.



여름이 가까워올 무렵, 갑자기 학교에 학업중단숙려제예산이 백만 원 좀 넘게 내려왔다. 고등학생들의 자퇴가 많으니 이를 방지하게 위해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학교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하라는 예산이었다. 당시 내 업무는 학교도서관 운영이었지만, 이전에 몇 차례 여행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고 교감의 부탁도 있고 해서 내가 맡게 되었다.


부산 감천마을까지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고,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자연에서 뒹굴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느 쪽이 나을까 곰곰 생각하다가 D고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걸었던 지리산 둘레길은 한번 가본 경험이 있어서 프로그램 진행이 수월할 것 같았다. 몇 개의 여행 후보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나는 최종적으로 지리산 둘레길 3구간으로 결정했다. 가을이라 풍광이 좋으리라 기대하면서.


학생들은 공부에 흥미 없는 학생들 반, 리더십 있는 친구들 반 정도의 비율로 스무 명을 모집했다. 의욕 없는 학생들만 데리고 가는 것은 심적 부담이 있었고, 활달한 친구들과 두루 섞일 때 여행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교사들은 두 명이 동행하기로 했다. D고에서는 여행 출발 전에 한 달 이상 모여서 함께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는데 인문계인 K고에서는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내가 모든 계획을 세운 뒤, 아이들에게 주의 사항만 당부하고 바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함께 준비한 여행과 교사가 인솔한 여행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여행 내내 깨닫게 되었다.


대구에서 함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부터 환자가 발생했다. 남학생 한 녀석이 멀미가 심해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걷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아이들이 힘들어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의 체력이 이렇게 약할 줄은 몰랐다. D고 학생들은 이 길을 전혀 힘들지 않고 즐기면서 날아다녔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렇게 힘들어할 줄 예상 못한 것이 내 실수였다. 생각해보니 평소 전혀 운동을 하지 않던 녀석들이 하루에 6시간을 걷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다. 학생들은 길을 전혀 즐기지 못했다. 점점 죽는 시늉을 하더니 마지막 한 시간 산길을 돌 때 여학생들은 말 그대로 간신히 몸을 끌어서 매동마을 민박집에 자신을 힘겹게 내려놓았다.


사고 없이 무사히 온 것이 다행이었다. 스무 명 중 딱 한 녀석만 쌩쌩했다. 교실을 떠나 이렇게 자연에 뒹구니 마음이 열리고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모두 다시는 오기 싫을 만큼 힘든 하루였다는 불평이 이어졌다. 수업 시간에 태도가 썩 괜찮은 학생들도 이 길에서는 평소와 다른, 굉장히 인내심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힘들었던 것이다. 민박집의 밥도 아이들은 잘 넘어가지 않았는지 치킨을 배달하면 안 되냐고 물어왔다. 도시의 익숙한 습속을 벗어나 시골의 풍경과 삶에 녹아들고 싶었고 그것이 여행의 목적이었는데, 도시의 소비 습관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교사들은 아이들이 모처럼 놀러 왔으니 들어주자고 하여 그 의견을 따랐다. 여행이 애초의 기대와 어긋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10시 반 정도 될 무렵, 저녁까지 괜찮았던 민지가 가슴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놀라서 달려가니 민지는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다고 했다. 원래 여행 출발 전에 지병이 없는지 다 확인하고 데려온 아이들이었다. 민지에게 평소에도 그런 적이 있었냐니까 체육 시간 때 가끔 그랬다고 해서 덜컥 걱정이 되었다. 호흡 곤란 같은 심각한 상황이 내 머릿속에 오갔다. 마땅히 도움을 청할 때가 없어 한의사인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협심증 같은 것은 아이들에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므로 일단 한 시간 정도 지켜보라고 했다. 그래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으면, 자신은 그래도 협심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이가 통증을 호소하므로 병원에 가는 것이 맞다고 했다.


민지는 한 시간 후에도 여전히 통증을 호소했다. 11, 드디어 나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이 밤에 세 군데나 119로 요청이 와서 40분쯤 후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119에 실려 우리는 남원에 있는 한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당직 의사는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이 경우에는 전주나 대구의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상태가 얼마나 심각하냐고 물어보니, 검사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동생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을 주었다.


민지는 어머니가 안 계시고 아버지는 삼천포에서도 더 들어가야 하는 섬에서 일하고 있으며 대구에서는 언니와 살고 있다고 했다. 그 밤에 아버지와 다행히 통화가 되었다. 아버지로서도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전주까지는 두 시간, 대구까지는 세 시간이었다. 위급한 상황이라면 전주로 가는 게 맞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로 위급한 상황인지 대체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아이가 아프다니까 가까운 전주로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전주로 가면 보호자가 오기가 더 곤란한 상황이 된다. 나는 아무래도 전주는 아닌 것 같아서 민지 아버지께 대구에 있는 병원이 더 크다는 것을 강조해서 전달했다. 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러면 대구로 가자고 하셨다.


지역을 넘어갈 때는 119를 이용할 수 없으므로 사설 앰뷸런스를 불렀다. 대구까지 45만원이라고 했다. 동생은 밤길에 급하게 가다보면 교통사고 위험이 있으니 반드시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당부를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밤에 앰뷸런스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그래도 시시각각 혈압과 맥박을 체크하고 있어서 마음은 좀 안심이 되었다. 앰뷸런스가 속도를 내다가 한 번 급정거해서 간 떨어질 뻔한 순간을 겪으면서 앰뷸런스는 어두운 88고속도로를 달려서 두 시간만에 대구에 진입했다. 전주로 안 가길 정말 잘했다 싶었다. 시내에 있는 경북대학교병원 응급실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비로소 내 마음에 평화가 몰려왔다.


우리는 한동안 대기한 후에 검사를 했고, 의사는 지금으로서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 귀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귀가를 위해서는 보호자가 와야 했고 교사는 보호자가 안 되었다. 민지 언니와 계속 통화가 되지 않아 걱정했는데 한 시간쯤 기다린 후에 통화가 되어 언니가 민지를 데리러 왔다. 민지를 귀가시키고 나니 새벽 5시였다. 나중에 교사들과 이야기하면서 민지가 보호자 없이 생활하고 있어서 약간 애정 결핍이 있어서 자신의 상태를 과장해서 전달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인솔 교사가 매동마을에 함께 있었지만 내가 인솔 책임자인데다가 학교카드도 갖고 있어서 다시 서부정류장에서 첫 차를 타고 두 시간여 걸려서 매동마을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민박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데, 그것이 입맛에 맞지 않아서 근처 수퍼마켓에 가서 컵라면과 과자 따위를 사들고 왔다고 했다.


내가 생각한 여행은 일상의 습속에서 조금 벗어나 지역 문화와 이곳의 생활에 스며들어보는 것이었다. 조금 불편하지만, 동급생들과 함께라면 그 다름을 즐길 수도 있고 새로움을 맛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D고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버스를 힘들게 갈아타고, 도보여행을 하는 것을 계획한 것이다. 다양한 상황과 장소에 자신을 놓아볼 때 자신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앎이 발생한다. 그럴 때 여행은 배움이 잘 일어나는 환경이 된다.


또한 새로운 환경에서 내 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겸허한 태도로 수용하는 것은 배우는 이의 자세이기도 했다. 집에서 생활하던 모습 그대로라면 이 멀리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 성격이 무던한 학생들인데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은 새로 만난 장소에 경외심을 갖기 보다는 자신의 습속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것이 나는 참 아쉬웠다. 내가 계획한 배움의 장에 아이들이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인문계 고교의 아이들이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러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타자를 받아들일, 타자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도록 자신을 허락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 탓이 아니라 그들에게 마음의 빈 공간을 허락하지 못하는 어른들 탓이기도 했다. 이 멀리까지 왔지만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가질 마음의 여백이 없었기에 그저 힘들기만 한 여정에 불과했지 않았나 싶다. 걸으면서 길 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배움의 기회들을 아이들은 만끽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실패한 여행이었다.


두 번의 전혀 다른 지리산둘레길 여행을 마치고, 주입식 교육의 한계 또한 이런 것이 아닐까 했다. 스스로 소화하고 녹여드는 과정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제시해도 그것은 아이들에게 스쳐가는 풍경에 불과하다. 풍경을 스스로 획득하고 가슴에 담기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 배움은 어떤 경우에도 학생들이 소화할 수 있는 내용과 경험이어야 했다. 학생이 스스로의 인식 능력을 발휘하여 온마음으로 참여할 때만 어떤 경험은 교육적 경험이 될 수 있다.


아무튼 이런 행사를 한번 하려면 꼬박 한 달 정도 품이 든다. 계획을 세우고 기안을 내고 식당을 섭외하고 숙소를 알아보고, 주말에 미리 답사를 다녀오고, 학생들을 모집해서 준비하고, 학부모님 동의서를 받고, 다 끝나고 나면 결과 보고서를 내야 한다. 교사는 한 달 정도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지만,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갑자기 실적 위주로 할당되는 행사는 겉보기에는 그럴싸해도 학생들의 마음에 배움의 또렷한 자취를 남기지 못한다. 혹여 사고가 발생하면 교사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므로 심적 부담도 크다.


학교 현장에서 교육적으로 꼭 필요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실적을 위한, 사진을 찍어 보고하기 위한 모든 행사는 없어져야 한다. 행사를 준비하는 그만큼 수업에 써야 할 에너지를 빼앗기기 때문이다. 교육적으로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은 수업 한 시간 한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이다. 우리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 교육청에서는 항상 무언가 하려고 하지만, 지금 하는 것 중에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것이 시급하다. “핀란드를 위시한 그들 교육의 성취는 학교교육에서 수업을 제외하고는 그 밖의 것은 다 버린 데에 토대하고 있다(박찬영).” 그들은 정확히 수업만을 하며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것이 교사 본연의 임무이다. 교육개혁에 관한 모든 논의는 불필요한 학교 행사와 행정업무를 없애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수업을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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