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옮긴 학교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다른 부서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지 잘 모르던 차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2학년 P반의 담임 이름으로 교무부장이 올라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 2학년 P반의 담임은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던 이현숙 선생이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옆자리의 박선생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리 이선생이 담임을 맡기로 되어 있었는데, 승진 점수가 부족한 교무부장이 점수 때문에 이름만 담임으로 올려놓고 실제 담임 역할은 이선생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종례와 담임 업무 모두 이선생이 하고 있으며, 상담일지 작성을 위해 학생 상담은 매일 몇 명씩 불러서 교무부장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선생은 기간제 교사이니만큼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아이들은 담임을 이선생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학교행정시스템에 교무부장이 담임으로 지정되어 있으면 성적표에도 교무부장의 이름이 찍혀나가는 것이었고, 이건 행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교장이 용인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것이었다. 우리 학교가 낙후된 지역에 속해 있어서 학부모들이 이런 점을 또렷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너무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를 우롱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듣고 놀라서 학교 홈페이지를 보니 2학년 P반의 담임은 교무부장으로 되어 있었다. 교사들끼리 업무용으로 쓰는 쿨메신저를 보니 2학년 학급 수보다 담임 수가 한 명이 더 많았다. 담임에 교무부장은 물론 이현숙 선생까지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담임 업무 관련하여 전달할 사항을 이현숙 선생한테 알리기 위함이었다. 실질적으로 P반의 담임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이선생임을 알 수 있었다.
행정상의 담임과 실질적 담임이 다른 상황이었다. 다른 선생님들한테 물어보니 한 분은 사석에서 교장에게 이래도 되냐고 말을 꺼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교장은 복수담임인데 뭐 어떠냐며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복수담임제는 두 명의 교사가 담임으로 배정되는 것으로 학교 전체에서 시행할 수 있는 제도이지 어느 특정한 반에만 적용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우리 학교는 복수담임제가 적용되는 학교가 아니므로 교장의 대답은 정직하지 않았다. 그저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는 거짓말이었다. 이런 식의 편법은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과 교사들을 무시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로 생각되었다.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며칠을 고민했다. 당시 사십대 초반에 접어든 나는 그때까지 내가 맡은 반의 담임 역할만으로도 힘에 부쳐서 학교운영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별다른 의견을 개진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도저히 그냥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교육청에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학교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였다.
교장이나 교감에게 사석에서 건의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었다. 교사들이 전원 참석하는 직원회의 때,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P반의 실질적 담임은 이선생이었지만, 교무부장이 자신이 담임 업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교장에게 직접 복수담임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직원회의 때 각 부서의 전달 내용이 대체로 마무리되자 나는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했다.
“교장 선생님, 제가 궁금한 게 있어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2학년 P반의 담임은 누구인가요?”
화기애애하던 직원회의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하게 변하면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복수담임제는 학교 전체에서 시행할 수 있는 제도로 알고 있으므로 우리 학교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담임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조종례로 학생들과 하루 일과를 함께 하는 것입니다. 2학년 P반의 조종례는 이선생님이 하시는데, 학교 홈페이지에는 교무부장 선생님이 담임으로 되어 있으니 누가 담임인지 모르겠습니다. 2학년 P반의 담임은 누구인가요?”
교장은 당황했는지 굉장히 불쾌한 어투로 답을 했다.
“아니 선생님, 왜 학교 분위기를 이렇게 만듭니까? 직원들끼리 서로 이해하고 불만 사항이 있으면 사석에서 따로 대화를 해야지 왜 이 시간에 그런 질문을 합니까?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저는 이것이 교장 선생님께서 분명히 밝혀주셔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담임수당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담임 수당은 지금 어느 선생님께서 받고 계십니까? 담임이 아니면서 수당을 받는 것은 공무원의 비위에 해당하는 사안이며, 이는 관리자의 책임입니다.”
교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교무부장이 나서서 자신이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예, 제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승진을 준비하고 있는데 점수가 조금 부족한 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담임을 하는 것이 필요해서 제 이름을 올렸습니다. 담임 수당은 제가 이선생님 계좌로 매달 부쳐드리고 있습니다.”
나는 교무부장이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점수가 필요해서 그렇게 한 일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많이 놀랐다. 얼마 안 되는 적은 돈이긴 하지만 국가가 지급하는 수당을 개인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작은 사안이 아니다. 승진하려는 분이 행정의 기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나는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선생님, 수당을 대신 수령해서 계좌로 부치는 것은 공무원의 비위에 해당하는 사안입니다.”
그러자 교무부장은 다급하게 답변했다.
“그럼 제가 담임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담임을 하겠습니다.”
“예, 저도 이 문제가 학교 안에서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후 교장은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었고, 교무부장은 2학년 P반의 조종례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문제는 학내에서 해결되었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조직 사회에서 관리자와 틀어져서 매일의 일상을 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일로 질문을 했을 때 교장은 지금은 직원회의 시간이 아니라 전달 시간이므로 발언권이 없다며 공개적으로 무안을 주며 내 말을 자르기도 했다.
사실 이 문제가 학생이나 학부모에 의해 학교밖에 알려진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라는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큰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일선 학교에서의 잘못된 행정이 상급 기관의 감사를 거치지 않고 구성원들의 참여에 의해 시정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내 생각일 뿐이었다.
이 일 이후로 내게는‘학교에 비협조적’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리고 이 딱지는 내게 그 학교에 머무는 내내 내 뒤를 따라다녔다. 그 다음 해에 교감이 바뀌었고 이 분은 나와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업무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중 “선생님은 내게 듣기로는 학교에 매우 비협조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겠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학교 교사들 중에서도 이것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내가 이 학교에서 업무가 너무 많아서 개인적인 반감으로 항의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도 다른 사기업체에 비한다면 내가 감수한 것은 생활하면서 겪는 약간의 불편함과 부당함뿐이었다. 공무원의 신분 보장이 필요한 이유가 그것이 아닐까 싶다.
학교 승진제도의 불합리함은 그간 누누이 지적되어 왔다. 의사가 병원장이 되는데 따로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고, 판사가 지검장이 되는 데도 따로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조직 내부의 승진 요건에 따라 승진이 이루어질 뿐이다. 교감, 교장이 되는 데도 교사 자격증으로 충분하며 따로 교감 및 교장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평교사가 교감, 교장을 맡기도 하고 또 다시 교사직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유럽 국가에서는 교사협의회에서 교장을 선출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교장의 업무가 많기 때문에 교장이 공석인 학교도 많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년 후 그때의 그 교무부장은 결국 승진하여 다른 학교로 이동했다. 개인적으로 대했을 때 그 분이 무리하게 일을 진행한다거나 구성원들을 힘들게 하는 그런 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대 차이인지도 모르겠으나,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해내는 그런 감수성이 그 분에게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관리자가 되는 데 가장 필요한 역량은 사적 이익을 위해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 분의 행로가 많이 아쉬웠다.
지금의 학교 개혁은 교실수업 개선 등 일선 교사들에게 초점이 가 있지만, 학교 혁신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것은 승진 제도라고 생각한다. 교감 자격시험을 치르기 위해 기본적으로 채워야 할 점수를 10년 이상 관리해야 하는 교사가 과연 학생들에게 얼마나 마음을 쏟을 수 있을까. 대통령 혹은 시장이 바뀔 때 우리가 사회의 변화를 우선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것처럼, 교육현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교육감이, 그리고 학교장이 바뀌는 것이다. 승진 제도의 개선은 그래서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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