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방과후수업 꼭 해야 해요?"
J중학교에서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조금은 비참한 심정이 되었다. K고에서 학생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강제 보충수업에 회의를 느껴 중학교로 돌아왔는데 비슷한 질문을 여기에서 또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 질문이 내가 가는 학교마다 반복되는 질문이며 비슷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교사들마다 스트레스를 민감하게 받는 부분이 다 다르다. 수업에 스트레스가 많은 교사도 있고, 생활 지도나 담임 업무를 가장 힘들어하는 교사도 있고, 행정적인 업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교사도 있다. 반면에 행정 업무가 가장 편하다는 교사도 있다. 내 경우에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방과후수업처럼 정규 수업 이외에 학생들에게 배움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담임들에게 학생들이 모두 참여하도록 하라는 압력이 내려오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 N중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한번 있었다. 학교에서 갑자기 전교생을 의무적으로 방과후수업에 참여하게 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학생들이 제출해야 하는 동의서에는 두 칸이 있었다. "동의함"과 "동의하지 않음". 수요자의‘동의' 의사를 묻는 것인데 강제로 '동의함'에 모두 동그라미를 쳐오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반 학생들에게 부모님과 상의해서 의사를 표시해오라고 말했다.
우리 반 40명의 학생 중에서 10명이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학부모와 일일이 통화를 했는데, 모든 분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 아이는 원치 않는다는 확실한 의사 표시를 하셨다. 나는 그 내용을 상담록에 기록해두고, 그대로 동의서를 제출했다. 나중에 뚜껑을 열고 보니 전교 30개 학반 가운데 특별 사유로 한두 명 빠진 반이 있었을 뿐, 열 명이나 빠진 반은 전교에서 우리 반뿐이었다.
뒤이어 교장의 호출이 있었다. 이 반만 왜 이렇게 많이 빠지냐는 거였다. 나는 준비한 답변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학부모 전원과 통화했으며 학부모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의사 표현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교장도 이에 대해서는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방과후수업은 수요자 원칙이었고 N중학교는 학부모의 입김이 센 편에 속해서 교장은 이후에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7교시 방과후수업은 2학기에 저절로 없어졌다. 전교생이 각자 자기가 선택한 반으로 이리저리 흩어지다보니 학생 관리가 잘 안 될 때가 있었고 그 빈틈을 타서 화장실에서 학생들 몇 명이 약한 아이를 심하게 괴롭힌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D공고에서도 한 번 강제 방과후수업이 실시되었다. 학교에서 예산을 가장 쉽게 쓰는 방법이 방과후수업을 열고 강사료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그때도 꼭 써야 할 예산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취업 대비를 위한 싸트(SSAT) 문제풀이반이었는데 정규 수업 시간에도 집중을 안 하는 농땡이 녀석들을 7교시 후에 남겨서 문제풀이 수업을 하는 것이 먹힐 리가 없었다. 그것도 아직 취업이 먼 일로 느껴지는 1학년 학생들에게 말이다. 퇴근하다가 교문 근처에서 방과후수업에서 도망 나온 녀석들과 딱 마주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럴 때면 도망치던 아이들은 낭패란 표정을 짓고는 얌전히 교실로 돌아가곤 했다.
D공고의 방과후 수업은 두 달 정도 한시적으로 진행된 것이어서 큰 무리는 없이 지나갔다. 보충수업이 이름만 바꾼 인문계 고교의 방과후수업이 가장 큰 문제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중학교에서 다시 방과후수업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J중학교는 전교생이 반강제로 방과후학교에 참여하고 있었다. 학교평가에 큰 항목을 차지하던 방과후학교가 학교평가에서 빠진 해는 학생 자율에 맡긴다고 했다가, 학생들이 신청을 별로 하지 않자 교장은 다시 강제로 운영하기로 했고 그래서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사교육 경감과 다양한 특기적성 계발이라는 방과후학교의 취지는 좋았다. 예산을 집행하고 실적을 보고해야 하는 학교장의 입장에서 방과후학교에 가능한 한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기를 바라는 의도 또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방과후학교는 수요자가 수업료를 지불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J중학교처럼 복지 특구인 곳에서는 대부분의 강좌가 학교 예산으로 집행되므로 방과후학교는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부서 중 하나다. 하지만 수요자에게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과후학교가 반강제로 시행됨으로써 아이들의 선택권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결과를 빚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교육공무원인 교사는 수업에 있어서는 자율권을 갖지만, 행정 업무에 있어서는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철저히 시행령과 내규에 준하여 일해야 한다. 방과후수업은 수요자에게 선택권이 있으며 교사가 어떤 강요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현재의 법규이다. 그것이 타당한 이유는 학교가 자의적으로 학생들에게 필요 이상의 수업을 강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인 학교는 법과 제도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는 누군가의 개인적 견해에 의해 그 원칙이 쉽게 무시되곤 한다.
워낙 작은 학교이고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도 있어서 나는 공개적으로 방과후학교를 거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학교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동의가 있으면 참여하지 않아도 좋다고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1, 2학년 때부터 강제로 참가해왔던 터라 모두 아무 말 없이 동의서를 제출했다. 습관의 힘은 무서웠다. 그러면서도 늦게 남는 게 불만이었는지 잊을 만하면 방과후수업을 왜 하냐고 투덜거렸고, 선생님이 다 설명해주고 네가 동의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수업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면“그게 노예 계약서인 줄 몰랐어요.”하고 대답해 나를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학부모들의 생각은 저마다 달랐다. 아이가 집에서 핸드폰을 하느니 학교에 남아 있기를 원하는 분들도 있었고, 학교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말하기는 부담스러워 그냥 두었는데 우리 아이가 쉬지 못하고 학원에 바로 가는 것을 힘들어하니 선생님이 가끔 집에 보내주시면 안 되겠냐고 요청하는 분도 있었다. 그 학생의 경우 2학기에 두세 번 방과후수업을 빠지고 귀가했는데, 그걸 본 다른 아이들이 부모님을 졸라서 2학기 마지막 방과후수업이 있던 날, 내 핸드폰에는 매시간마다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선생님, OO이 엄마입니다. 오늘 OO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방과후수업을 빠지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학교는 함께 공부하는 공간이므로 학생들의 배움을 위해 꼭 강제해야 할 것들이 있다. 일상적인 규칙은 물론, 적어도 학교에서는 욕설을 쓰지 못하게 하는 등 생활면에서도 지금보다 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학교가 절대 강제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못한 것을 명확히 알려주고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설정해주는 것이 교육이 할 일이다. 그래야 아이들은 법과 제도가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의 한계를 명시함으로써 우리를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될 것 이다. 그것이 교과 공부 이상으로 소중한 배움의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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