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도서관 예술영화 상영에서 우연히 이 영화를 보고, 앞으로 어디 가서 영화 안다는 소리는 못하겠다 싶었다. 그간 본 작품들과 급이 다른, 내겐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다른 영화들이 고등학생이 만든 작품이라면 이 영화는 대학원생이 만든 듯한 느낌이다. 감독이 이 주제에 얼마나 천착하고 깊이 고민했던가가 장면 하나하나마다 묻어나는 영화였다. 프로필을 보니 감독은 이란에서 16세에 정치범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6년 후에 석방된 전력이 있었다.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이 깊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개의 영화가 독재자에 저항하는 과정을 다루었다면, 이 영화는 독재 권력이 무너진 이후의 풍경을 다뤘다. 사회가 온통 무질서의 혼란에 빠진 가운데 독재자는 손자와 함께 도피 행각을 벌이고, 그 도피의 여정에서 그는 민중들이 처한 삶의 현장과 대면하게 된다. 하나같이 아프고 처절한 장면들이었다. 그리고 그가 드디어 사람들에게 발각되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 달려들 때 감독은 전혀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해결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질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독재자가 내 아들을 내가 보는 앞에서 죽였으니 손자를 먼저 죽이고 독재자를 죽이자고도 하고, 저 놈이 내 아들을 불태워 죽였으니 저 놈도 불태워 죽여야 한다고도 하고, 갖은 분노와 원망을 쏟아낸다. 하지만 감독은 묻는다. 그것만으로 이 세계에 평화가 오겠느냐고. 우리는 엇비슷한 체제를 반복해가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다고 해서 감독은 권력자는 이 놈 저 놈 다 똑같다는 식으로 역사 앞에 냉소하지 않는다. 영화가 보여주는 민중들의 아픈 삶의 장면들은 우리로 하여금 결코 냉소할 수 없게 한다. 우리는 다만 그가 보여주는 독재 이후의 풍경에 공감하고 아파하면서, 그가 던진 화두를 가슴에 담고 영화관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
# 영화에 등장하는 언어는 조지아어라고 한다. 낯선 언어와 낯선 배경 또한 영화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한 몫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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