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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교육 관련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장은주

by 릴라~ 2018. 4. 16.




이 분야의 이론적 기초에 대한 독보적인 책. 철학자가 쓴 책답게 개념을 철저히 규명하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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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는 시민적 주체의 형성, 곧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보통의 사람들, 특히 미래 세대를 민주주의의 참된 주체인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체계적인 사회정치적 노력이 절실하다. 나는 이 책에서 바로 그러한 노력을 이제라도 제대로 시작하기 위한 나름의 이론적 출발점을 마련해 보려 한다. 그러니까 시민교육에 대한 어떤 일반론을 전개하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문제 상황에서 출발하여 우리 사회에서 시민적 주체는 왜 이토록 허약한지를 나름대로 해명해 보고, 나아가 그 시민적 주체를 새롭고 더 강하게 형성해 보려는 기획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우리는 어떤 문제들에 특벽히 주목해야 하는지 내가 일차적으로 생각하는 바를 전개해 보려 한다. p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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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의 근대성은 '개인'이 없는 근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에서는 나중에 '개인의 과잉'에 대한 불편한 자기 비판적 의식이 발전할 정도로 근대성이 개인 및 개인주의의 발전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전통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근대화된 조건 속에서도, 개인은 너무 낯설다. 유교 전통에서 개인은 처음부터 사회 질서의 의미 및 가치 체계를 깊숙이 내면화하고 사회적 규율과 기강의 논리를 자발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조화로운 사회의 성원 정도로만 이해되었다. 이런 사정은 그러한 유교 전통과 서구적 근대성의 '이종 교배'를 통해 발전한 우리의 근대적 문화 환경 속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철저히 사회적 관계 속에 통합된 개인이라는 전제 위에서 발전한 우리의 근대성은 기본적으로 '개인 없는 근대성'이다. 


그런데 전통사회에서 '입신양명'의 이상을 통해 지배체제에 대한 사람들의 자발적인 순응을 유도했던 유교 문화는, 그 근대적 형식에서는, 현세적 인간관계 속에서 얼마나 인정을 얻는 데 성공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개인의 자기완성에 대한 전망을 그리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물질적 행복 따위로 확인된다고 보았다. 이는 현세적 물질주의를 우리의 근대적인 생활세계의 문화적 문법의 핵심축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우리 근대성의 두 번째 문화적 특질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물신숭배나 과도한 소비주의 같은 문화 현상이 그저 서구의 영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근대화한 유교 문화가 잉태한 그와 같은 '우리 안의 옥시덴트'는 많은 면에서 서구 사회들에서보다 훨씬 더 물질주의적이고 물신주의적인 근대 문화를 만들어 냈다는 게 내 생각이다. pp6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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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단순히 정부 또는 지배의 형식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차원하고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이나 인성,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 방식이나 교류 형식, 심지어 사람들의 삶을 이끄는 문화적-도덕적 가치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존 듀이의 통찰처럼, 민주주의는 정치적 지배의 형식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하나의 인간적 삶의 양식, 곧 모든 성원이 인간적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그 평등한 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도덕적 목적을 중심에 둔 사람들의 공동생활 양식 그 자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p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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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상황에서 민주시민교육은 특별한 초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민주시민교육은 앞서 살펴본바 한국 근대성의 문법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문화적 장벽부터 넘어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민주시민교육은, 유교적 근대성에서 메리토크라시가 체계적으로 강요하는 모멸감과 자존감의 상실에 시달리며 습관화한 사회적-정치적 무기력과 정치적 무관심에서 우리 시민들, 특히 미래 세대를 어떻게 벗어나게 할지의 문제에 대한 해답부터 찾아내야 한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민주시민교육은 미래의 시민들이 자존감을 제대로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그 궁극적 초점을 두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고 시민적 판단 능력 및 행동 능력이나 민주적 가치관을 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존감이야말로 개인의 인간적 삶의 근본 틀을 규정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시민교육은 궁극적으로 자존감을 가진 시민적 주체의 형성을 지향해야 한다. 이런 '시민적 자존감'의 정립은 민주시민교육의 전제이자 최종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pp159-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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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원칙은 교육이 특정한 정파나 진영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정략 등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중립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공적 교육 체계가 지향해야 할 건강한 시민의 육성이라는 근본적인 정치적 목적마저 망각해도 좋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원칙은 교육에서의 정치적 진공 상태에 대한 추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에서는 정치적 목적보다 교육적 목적을 더 우선시해야 한다는 원칙일 뿐, 교육을 정치와 완전히 떼 놓으라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교육은 특히 우리의 민주적 헌정 체제 전체의 수호라는 과제와 관련해서는 철저하게 당파적이어야 하고, 그 체제의 근간이 되는 헌법과 보편적 인권을 철저하게 옹호해야 한다. p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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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인 민족주의적 애국주의는 개인에 대해 절대적인 우위를 지니는 국가라는 가치 실체를 가정한다. 그리하여 그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당연시한다. 나아가 개인이나 집단의 차이와 다양성을 무시하고 억압하며 '우리' 아닌 '남'을 배제하도록 이끈다. 심지어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은 지고한 도덕적 의무로까지 여긴다. 


이와 같은 전체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애국주의와는 전혀 다른 헌법애국주의 또는 민주적 애국주의는 우리가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단순히 그 나라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곳이어서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자유와 존엄을 보호하고 실현하려는 그 나라의 민주적 정체성을 지지하는 데에서 찾는다. p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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