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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이 쓴 책만 읽고, 남이 하는 강의만 듣는 것이 공부인가. 그건 입문과정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공부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다. 주체가 되려면 생산과 창조의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또 누구나 자기 삶은 소중하고 특별하다. 구경꾼으로 살고 싶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글쓰기를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언급했듯이, 글쓰기는 담론, 구체적으로 말하면 언어의 창조다. 언어를 창조한다는 건 곧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야 삶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워밍업은 여기까지! 이제 시작하자. 어떻게? 읽기가 그랬듯이, 쓰기도 역시 질문이 동력이다. 묻는 만큼 쓸 수 있다! 지당한 말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초짜들이 맞닥뜨리는 장벽이 바로 여기다. 질문을 어떻게 하나요? 질문이 없는데요? 질문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나요? 그래서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세상에 질문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문제는 그 질문을 생성시키는 '마음의 회로'를 열지 못한 것일 뿐. 회로를 열려면 일단 써야 한다. 그러니까 '질문이 있어야 글쓰기가 가능하다!'가 원칙이긴 하지만, 거꾸로 '쓰다 보면 질문이 탄생'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질문이 없다고? 그러면 일단 쓴다! 어떻게? 책에서 시작하면 된다. 어떤 책이건 상관없다. 그동안은 읽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쓰기 위해서 읽는다고 생각하라. 그러면 여러 본 읽었던 책도 아주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일단 줄거리 요약도 괜찮고, 씨앗문장을 찾아서 그걸 중심으로 정리하면 된다. 그냥 읽기만 할 때는 술술 넘어가던 장면도 쓰기를 전제로 하면 툭툭 걸리게 마련이다. 망치로 머리를 후려치는 것 같은 문장도 있고(오! 세상에나,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가슴에 스며드는 단어, 단락도 있고(와! 어떻게 내 심정을 이렇게 잘 표현했지?), 참을 수 없을 만큼 거부감을 주는 문장도 있다.(헐, 이게 말이 되나? 미친 거 아냐?) 그걸 붙잡는 것이다. 그 문장, 그 단락을 옮겨 적으라. 그 문장이 내 노트, 혹은 노트북에 옮겨지는 순간 이미 쓰기는 시작된다. 그 순간에 이미 나는 '마음의 회로'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왜 이 문장을 선택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질문이 탄생한다. 충격적인 문장이라면 그 충격의 내용을 적어 보고, 감동이 물결쳤다면 대체 뭐가 나를 감동시켰는지, 분노를 유발했다면 그 내용을 상세히 적으면 된다. 이것이 질문의 씨앗이다.
씨앗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싹이 트게 마련이다. 싹이 트려면 집중해야 한다. 나의 생각, 나의 감정의 회로에. 그러면 그동안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었구나.' 마음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는 것이다. 탐구가 넓고 깊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씨앗이 움터서 새싹이 되고 한 그루의 나무가 되기 위해선 최소한 봄과 여름, 두 계절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책은 함께 읽어야 한다. 혼자서는 이 시간의 마디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 때문이다. 이걸 견뎌내야 한다. 함께 읽으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질문을 발아시켜 나갈 수 있다. 그때 중요한 건 역시 '말'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공감과 반감, 이질감 등을 겪게 되면 질문의 씨앗이 움이 트고 잎이 나오게 된다. 거기가 글쓰기가 시작되는 포인트다! 책의 파동이 말의 향연으로, 다시 글쓰기를 촉발하는 식이다. pp19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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