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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스토리텔링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이만교 — 씨앗도서와 씨앗문장 찾기

by 릴라~ 2018.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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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서, 실제로는 좋은 글을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글을 써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말로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 말로는 가난할지라도 자유로운 예술가의 길을 걷겠다면서, 언제나 돈과 브랜드에 민감한 채 필수불가결하지 않은 아르바이트 따위로 시간을 허비한다. 말로는 글을 쓰고 싶다면서 예술가의 감수성과 실험정신은 전무한 채로, 중산층의 모럴과 예의바른 행동만을 생활의 모범으로 삼는다. 정말이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포즈만 취하고 있다. p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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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좋은 글을 쓰고자 원한다면, 어제와 달리 오늘부터는 하다못해 전철 타는 시간에나마 책을 펼쳐 보기 시작할 것이다. 비록 그 변화가 미미하더라도 그러나 최선을 다해 변하는 것이라면 그때 접하게 된 어떤 한 구절이, 그때 알게 된 어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정보로 인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한 발자국씩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의식뿐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사람이 되자. 의식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전념'을 실천하자. 전념을 실천해서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란 없다. 하다못해 식당 서빙을 하거나 김밥집을 시작해도 10년 내로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모든 천재들이란 자기 일에 '전념'한 사람들일 뿐이다. 천재란, 자기 일이 좋아서 하루 열 시간씩 십 년쯤 일한 사람에 다름 아니다. p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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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라도 밑줄 쳐 놓은 이들 문장을, 우리로 하여금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하게 만들고, 나아가 자신도 그런 글을 써 보고 싶게 만든 문장이라는 뜻에서 '동기 문장' 혹은 '씨앗 문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씨앗 문장'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글을 쓰게 부추기는 가장 기본적인 동인이 아닐까. (...)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 역시 방향과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이와 같은 초발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 초발심이 위치하는 곳이 바로 '씨앗 문장'이다. 글 쓰기 힘이 들 때, 자신의 글쓰기가 별다른 진전 없이 자꾸만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느껴질 때, 혹은 지나치게 초조해질 때, 다시금 이들 '씨앗 문장'에게로 돌아가 보자. 제발 자신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초조하게 만드는 유명작가를 떠올리지 말고, 자신을 위축시키는 이유들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재능을 의심하게 만드는 우울증에 사로잡히지 말고, 이들 '씨앗 문장'에게로 돌아가자. 자기에게 영향을 준 작가를 떠올리지도 말고, 자신에게 감동을 준 책 제목을 떠올리지도 말고, 보다 구체적으로 이들 '씨앗 문장'에게로 돌아가 보자. 

 

자신으로 하여금 글을 좋아하게 만든, 나아가 글을 쓰게 만든 '씨앗 문장'들을 면밀히 음미해보자. 놀랍게도 거기에는, 삿된 동기가 조금도 들어 있지 않다.

 

관찰력이 뛰어난 문장들, 묘사가 세밀하고 정확한 문장들, 정교하고도 날렵하게 다듬어진 문장들, 독특한 감성과 정서가 전해지는 문장들, 이제까지의 생각을 전복시키는 새로운 사유의 문장들, 미처 의문을 품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새로운 의문과 시각을 제공하는 문장들, 기발한 상상력이 펼쳐지는 문장들,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해학이 느껴지는 문장들, 사사롭고 잡된 생각들을 일거에 잠재우는 잠언들, 생동감과 감칠 맛이 느껴지는 문장들, 인식을 전환시키고 새로운 각오를 하게 만드는 문장들, 허심탄회하게 웃게 만드는 문장들....

 

모두가 그것을 음미하는 자체로 자유롭고 즐겁고 소중한 문장들이다. 엄밀히 생각해 보면, 우리로 하여금 글을 쓰도록 만든 주체는 '나'가 아니라 어쩌면 이들 '씨앗 문장' 속의 치열하고 사무사한 정신들 아닐까? 그 자체로 우리를 감동하게 만들고, 그 자체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고, 그 자체로 우리를 멜랑콜리하게 만드는 이들 씨앗 문장의 순수한 에너지야말로 우리의 독서와 글쓰기의 원동력이자 밑천이 아닐까. pp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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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도서'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씨앗 도서'를 매일같이 제대로 찾아낼 수 있을까. 이것만 찾아낼 수 있다면 독서는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말려도 하지 않을 수 없는, 한결 가슴 두근거리고 즐거운 '곳간 속 곶감 찾기'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뛰어난 작가가 되는 첫번째 걸음은, 타고난 재능이나 기발한 상상력이 아니라, 다만 '씨앗 도서' 한 권을 제대로 선정하여 읽는 일이다. p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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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가치와 독서량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대표적 일례가 바로 전태일이다. '전태일 평전'에 의하면 그는 거의 책을 읽지 못한 듯하다. 학력은 고작 고등공민학교(지금의 중학교) 1학년 중퇴였고, 배고프고 가난한 현실 탓에 책 읽을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꿈을 잃지 않고 그는, 값비싼 책을 한 권 구입한다. 그 책값은 2700원이었다. 전태일에겐 엄청난 거액에 해당되는 액수였다. 폭압적인 노동 현실에 눈을 뜨면서 2700원이라는 엄청난 거금을 들여 전태일이 구입한 책은 바로 한문투성이 문장으로 이루어진 어느 노동법 학자의 근로기준법 해설서였다. 

 

"한문과 법률용어 투성이여서 그는 하룻밤을 꼬박 세워 한 장밖에 못 보기도 했다. 그런에도 그는 꾸준히 읽어 나갔고, 책을 읽다가 흥분하여, 옆자리에 누워서 잠자고 있는 어머니를 깨워서 어머니에게 그것을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전태일이 다른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인생을 살기까지 읽은 책은 고작 이 책, 한문투성이 법률해설서 한 권뿐이다. 책 읽는 권수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태일은 우리에게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독서는 양적 문제가 아니다. 옆자리에 누워 자고 있는 고단한 어머니를 흔들어 깨울 만한 열정이 중요하다. 질이 아니라 양에 치우치는 독서라면 그만 멈추는 것이 낫다. 적게 읽었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고 많이 읽었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밑줄 긋는 부분, 혹은 자세를 곧추세우고 일어나 바로 앉는 각성의 빈도수와 강도가 바로 독서의 핵심이다. pp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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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글쓰기는 '경험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주제를 구현'하는 일이다. '글쓴이가 실제 경험한 내용인가?' 하는 재현의 문제보다는 '글쓴이가 실제 고민(갈등)하는 주제가 담긴 내용인가?' 하는 구현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경험을 갖고 글을 쓰기보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글을 써야 견고한 짜임새를 갖춘 글을 구현할 수 있다. 

 

어떤 작가에게 독특하고 강렬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좋은 글감이 되겠지만, 그에게 독특하고 강렬한 주제의식이 없다면 글은 기껏해야 기록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작가에게 독특하고 강렬한 주제의식만 있다면 그는 그에 걸맞은 경험을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다. 경험 중심으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실제 경험만이 글감으로 사용되지만, 주제 중심으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것 외에 주변 사람들의 경험이나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접한 경험까지도, 그리고 상상해 본 경험까지도 주제에 걸맞기만 하면 변용해서 사용할 수가 있기에 무한한 글감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p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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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은 운문과 대비된다. 운문은 말 그대로 운을 붙여서 언어의 음악성과 압축미를 강조하는 장르이고, 반면에 산문이란, 풀어헤치는 방식의 글쓰기다. 글로써 풀어 서술하면 모두 산문이다. 글로써 풀어 서술하는 것 외에, 그 밖의 어떠한 규칙도 강제하지 않는다. 장르규칙에 의존하지 않고, 내용 자체만으로 이루어지는 거의 유일한 장르다. 따로 장르규칙을 두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풀어써 나간다. 그만큼 자유로운 장르지만, 그만큼 내용 자체의 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장르다.

 

어떤 문제를 문장으로 풀어쓰기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산문은, 하이쿠나 아포리즘 못지않게, 글쓰기의 기초 장르라 할 수 있다. 문제를 풀어쓰기 시작하기 때문에, 산문을 통해서야 비로소 다양한 관찰과 사유와 상상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일상에서 관습적으로 넘어가는 문제들, 대충 뭉뚱그려 생각하는 문제들, 혹은 순간적인 불편, 짜증, 고통 정도로만 여기며 스쳐 지나가는 문제들, 혹은 너무 두렵거나 난해하거나 복잡해서 마주하지 않던 문제들을 언어로 촘촘히 풀어헤침으로써, 그 문제들이나 감정들 속에 숨어 있던 실질적 진실을 발견하고, 사유하고, 상상하는 것이 '산문'이고, 이러한 행위 정신을 '산문정신'이라 부를 수 있다. (...)

 

--산문정신은 이런저런 일상의 느낌을 보다 정직하게, 보다 또렷하게, 모다 깊이 있게, 보다 다양하게 들여다보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통념이나 관습과는 또 다른 여러 이질적인 느낌들을 감지하는 실질적 정직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면, 무엇이든 매력적인 글감이 될 수 있다. 단지 앞서 걸어가는 미녀의 종아리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많은 것을 떠올리고 생각하고 비교하고 반성하고 상상하고 성찰할 수 있다.

 

그러므로 끝없이 실질적 정직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평소 일반인들이 통념적, 관습적 차원에서 일상을 뭉뚱그려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은 모든 것을 마치 난생 처음 보는 것처럼 실질적 차원에서 정직하게 들여다보려 애쓰는 사람이며, 이러한 실질적 직시를 통해 통념적으로 여겨 왔던 일상이나 관점과는 다른 진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평소 일상과는 다른 실질적 내용을 표현하려다 보면 마땅히 평소 일상을 영위하느라 편리하게만 사용해 온 일상언어와는 또 다른 종류의 낯선 문장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낯설게 하기'는 문법적으로나 인식적으로나 필연적인 반응이다.

 

-- 실질적 정직으로서의 산문정신은, 근대적 글쓰기에서 가장 중시하는 글쓰기 자세다.

리얼리즘 정신이 잘 보여 주듯, 근대적 글쓰기는 고대 신화나 중세 로맨스문학과 달리, 현실 세계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리얼리티 있게 다루고자 하는 자세에서 비롯되었다. 근대란 신이나 도리와 같은 중세의 보편원리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주체적 관점에서 세상을 직시하려는 노력이었다. (...)

 

산문정신은 이렇듯 정직하게, 혹은 정확하게, 혹은 면밀하게, 혹은 또렷하게, 혹은 진지하게, 혹은 통렬하게 바라보는 글쓰기 방식이다. 이러한 '바라봄'은 의당 관습적, 일상적, 통념적 질서 등과 마찰을 겪기 때문에 갈등을 만들어 내고 문제의식을 만들어 내고 비로소 새로운 주제의식을 만들어 낸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자세 없이는 진정한 글쓰기 영역으로 들어설 수 없다. 또한 그가 누구일지라도 이러한 자세를 견지하고 글쓰기를 시작하면, 글쓰기의 참된 의마와 자유를 비로소 글쓰기 그 자체로서 만끽할 수 있다. 언어는 인간이 발견한 가장 섬세하고 예민한 악기여서, 쓴 문장을 꼼꼼이 들여다보면 글 쓴 사람의 내면 풍경이 너무나 정밀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자기 발견은, 장르규칙에 따른 작품의 완성도와 무고나하게, 그 자체로 의미 깊은 체험이 된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글쓰기 자체로 만족하는 행복과 더불어, 글쓰기 자체로 만족하는 행복을 계속 더 맛보고 싶은 욕망이 보태져서, 자기만의 개별적 개성과 진정한 가능성의 모색까지도 간으할 것이다. pp277-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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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공부는 단순히 직업적 글쓰기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 아니다. 한결 본질적이고 다층적이고 활용적인 훈련이다. 실질적 정직을 통해 기존의 입장과는 다른 시각과 강도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기성질서 및 일상감각을 전복하고 자기만의 새롭고 자유로운 감각, 사유,상상을 펼치는 일이다. 언제나 인식적이고 언제나 실천적인 행위이다. 쓰기를 중심으로 자신의 말하기, 읽기, 듣기 등의 언어수행 전반을 수정하고 훈련하는 일인 동시에, 언어 및 사유의 변화를 통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관계망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언제나 자신의 자양한 잠재성, 혹은 다양한 측면들이 서로 관계맺고 있는 매우 중요하고도 예민한 센서 지점을 촉발시키는 공부이고, 공부여야 하고, 공부일 수밖에 없다. 

 

언어는 너무나 다양하고 너무나 섬세하고 너무나 예민해서 단 한 글자도 허투루 나오지 않으며, 단 한 글자도 속일 수 없다. 언어에 대한 이와 같은 온전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우리의 글쓰기는 너무나 정밀한 공부이자 무척이나 원대한 공부가 될 것이다. p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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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천민자본의 횡포는 주도면밀하지만, 이러한 맞닥뜨림 역시 크고 작게 수도 없이 우리 일상에서 명멸하여 우리를 폐쇄적 욕망으로부터 탈주시켜 주고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신체가 겪는 가장 기초적이고도 본질적인 감수성은 언제나 무언가를 욕망하기 이전에, 무언가를 욕망하려 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나와 세상이, 다른 어떤 형식도 아닌, 지금 이와 같은 모양새로 존재한다는 사실. 무언가를 욕망하기 전에, 내가 이렇게 살아 있고 세상이 이렇게 역동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야말로 우리가 우리 감각을 오롯이 주시할 때 겪는 첫번째 인식이자 충격이다. 희로애락을 비롯한 우리가 겪는 숱한 감수성 중에서 가장 본질적이고도 초보적인 감수성은 존재하는 자체에 대한 경이와 신비감이다. p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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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글쓰기 관련 책이 많지만, 일상언어의 한계를 이처럼 선명하게 짚어주는 책은 보지 못했다. ## '낯설게 하기'는 일상의 자동화된 인식을 배제하고, "사물에 대한 감각을 알려진 대로가 아닌 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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