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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기록/유럽, 중동

검은 옷과 흰 옷 사이에서 / 카타르 도하 (1)

by 릴라~ 2019. 5. 14.

한밤중에 도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간 도하를 몇 차례 경유했지만 하루 시간을 내어 공항 밖으로 나간 건 처음이예요. 시내를 한번 보고 싶던 차에 카타르항공이 오성급호텔 무료 1박을 제공해서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새벽에 도착해 한밤에 나가는 일정이라 2박을 예약했습니다. 1박이 무료다보니 2박에 100불이라 괜찮은 가격이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호텔 목록을 죽 훑어보고 구시가지인 쑥와키프 안에 있는 호텔을 택했지요. 


혼자 움직일 때는 안전 때문에 밤이나 새벽에 도착하는 비행편은 꺼리는 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밤에 도착하는 일정이면 항상 공항 픽업을 미리 요청해두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바빴던 데다가 출발 며칠 전에 항공 일정이 확정되어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도하가 세계적인 환승지니 뭐, 괜찮겠지 하고 갔어요. 다행히 도하는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공항 택시가 안전하게 숙소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해가 중천에 떠서 쑥와키프의 하얀 벽돌 건물들이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호텔 식당으로 갔지요. 아침 식사가 거의 끝나가는 시간이라 서너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테이블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간 히잡이나 차도르를 쓴 여인은 보았지만, 니캅을 쓴 여인은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두 눈을 제외하고는 온 몸을 검은 니캅으로 감싸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더욱 놀랐습니다. 그녀가 식사 내내 니캅의 마스크 부분을 벗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스프 한 숟가락을 입 안에 가져갈 때마다 검은 마스크를 올려야 했어요. 한 입 먹고 마스크를 내리고, 또 마스크를 올려 한 입 먹고, 식사 내내 그녀는 그 동작을 반복했습니다. 음식물이 니캅에 묻을 것 같기도 했고, 저런 식으로 불편해서 어떻게 식사를 하나 싶기도 했어요.

 

호텔 식당은 그다지 개방적인 공간도 아니고, 또 사람도 몇 명 없었습니다. 그런 공간에서조차 식사 때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모습이 제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스카프 형식의 히잡과 두 눈만 내어놓은 니캅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도하는 세련된 도시였어요. 제가 머문 구시가지는 흰색 단층 건물들이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바다 건너 보이는 신시가지는 고층 빌딩이 빼곡했습니다. 이 현대적인 도시를 검은 차도르와 니캅을 쓴 여인들이 거닐고 있어 낯설었습니다. 알고보니 카타르는 이슬람권 중에서 상당히 보수적인 종파에 속한다고 합니다.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흰 옷을 입고 있었어요. 무릎까지 오는 긴 남방 스타일의 흰 상의에 흰 바지는 천이 얇아서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더운 날씨에 검은 천으로 온몸을 가려 무겁고 답답해보이는 여인들에 비해 훨씬 산뜻한 인상이었죠. 햇살을 가리거나 과도한 노출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여성들도 흰 옷을 입어도 좋으련만 차도르나 니캅은 하나같이 검은 색이입니다.

 

어느 글에서인가 중동 여성들에 대해 언급한 대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외모에 신경써야 하는 서구권의 분위기와 달리 그곳 여성들은 자기 몸에 대해 열등감이 없다는 내용이었어요.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도 과도한 다이어트로 죽어가는 서구 여성들이 중동 여성들보다 더 자유로운지 반문합니다. 중동 여성들이 마주한 폭력의 현실을 비서구사회의 야만성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식민주의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날 아침, 호텔에서 니캅의 마스크를 쓴 채로 느리게 밥을 먹던 여인의 모습은 옷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서구사회의 시각으로 보아서 그런 게 아니라 아니라 인간적으로 너무 불편해보였고 억압적으로 느껴졌어요. 

 

어딜 가나 모두가 똑같아지는 이 세계화 시대에 전통을 지키는 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서구와 똑같아질 필요도 없으며 자기 문화의 고유한 결을 유지하려는 이슬람권의 노력은 한편으로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것이 봉건사회의 질서를 고수하는 방향으로 가거나 여성들의 삶에 억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문제지요. 무엇이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전통일까요. 검은 옷과 흰 옷은 그들 사회의 선택이지만 제게는 남성과 여성의 삶에 놓인 그만큼의 거리와 장벽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2019년 2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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