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근교에 고분군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시내의 불로동 고분군, 고령의 대가야 고분군, 그리고 경산의 압독국 관련 고분군. 이 지역이 신라의 영향권에 들기 아주 오래 전부터 토착 세력이 있었다는 증거다. 각각의 고분군마다 확인된 무덤이 몇 백 기 이상이지만 그들의 정체는 대가야 고분군을 제외하고는 흐릿하다.
의성에는 '조문국'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남긴, 삼한 시대의 고분군이 있었다. 삼한은 여러 부족의 동맹체였고 그래서 각 지역마다 소국이 있었다. 조문국도 그 가운데 하나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등장한다고 한다. 출토된 무덤만 370여 기라 규모가 상당했다. 금성산을 위시한 주변 산세를 보면 아늑하고 편안하여 고대인들이 터를 잡을 만한 곳이었다. 고령 대가야 고분군이나 대구 불로동 고분군과 달리 평탄한 대지에 자리잡았다. 경덕왕릉이라고, 묻힌 이가 확인된 고분도 있었다.
이 고분들이 만들어진 연대는 다 비슷하게 4~6세기, 지금으로부터 약 천 오백 년 전이다. 아마 그 시기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어떤 문명이 이 일대에 꽃을 피웠던 것 같다. 박물관이 마침 휴관이라서 들어가지 못했다. 다음에 한 번 더 방문해야 조문국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을 것 같다.
조문국 사적지 인근에 놀랍게도 '국보'가 있었다. 국보 77호 탑리리 오층 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탑 형태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비례도 아름답지만 9.6미터 높이가 주는 웅장함도 일품이다. 탑 모양이 목조 양식과 석조 양식의 특징을 다 갖고 있어 석탑 연구에도 중요한 유물이라 한다. 옥의 티는 탑 바로 옆에 있는 교회의 첨탑. 멀리서 보면 시야를 가린다. 사진을 찍을 때는 교회를 등지고 각도를 잡았다.
지역 문화재에 대해 그간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있는 국보를 이제야 알다니. 기회 되는 대로 좀 더 탐사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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