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첫날, 안 그래도 정신 없는데 동료 한 분이 아파서 결근. 보강까지 있어서 6시간 수업을 한 날이다. 보강하러 들어간 3학년 교실에서 특별한 친구를 만났다.
한 친구가 맨 앞자리에서 뭔가를 하고 있길래 숙제인가 싶어 보니 웬 지도 같은 것 위에 곤충 이름이 한가득이다. 물어보니,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 학교에 서식하는 곤충, 동물을 다 조사한다 했다. 100가지 찾는 걸 목표로 조사 중인데 아직 덜 되었다고. 살펴보니 공벌레 같은 걸 제외하면 내가 모르는 이름 투성이다.
순간 답답하던 마음이 환해졌다. 공부 좀 하는 학교에서는 중3만 되어도 다들 영수에 올인하는데 자기 고유의 지적 탐구심과 흥미를 가진 아이가 아직 멸종되지 않아서다. 이런 체제에서도 자기만의 호기심이 여태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격. 그 친구에게 만나뵈서 영광이라고 칭찬 한가득하고 나왔다. 이 친구 때문에 종일 기분이 좋았다.
주입식교육에 대한 반발로 학생 수행활동 중심의 온갖 교육방법이 현장을 흔들어왔지만 그 교육적 의도와는 달리 이 또한 학습자가 어떤 기능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가로 귀결되는 것 같다. 수행평가도 애들한텐 걍 노가다가 되기 일쑤고.
내 관심은 기능의 수행이 아니라 개인의 호기심이다. 얄팍하고 자극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학교가 꼭 해야 하는 일은 개개인의 ‘지적 호기심’의 불씨를 살리고 북돋워주고 키워주는 일이지 싶다. 개인의 내면에서 활활 피어나는 호기심의 불꽃이 있기에 우린 교육을 인격적인 활동이라 부른다.
*학생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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