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마이삭이 대구를 관통한단다. 규모가 큰 태풍이라 한다. 올해 태풍이 많이 왔지만 대구를 바로 지나간 건 잘 없다. 이 지역은 비 피해도 크지 않았고. 그러더니 결국 막바지에 큰 놈 하나가 오나보다. 낮에 교육청에서 관련 공문이 왔다. 내일 전교생 10시 등교라고.
교무실에선 교감 쌤이 태풍 매미는 정말 대단했는데 젊은 쌤들은 모르지? 이런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으셨다. 경력 있으신 쌤들이 다들 한마디씩 거든다. 그러고보니 내게도 태풍과 관련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대략 20년 전 신규교사일 때다.
첫 발령 받은 학교는 집에서 꽤 멀었다.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여서 아침 6시 반이면 집에서 출발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임용시험에 턱걸이로 간신히 붙은지 얼마 안 되었고, 학교가 즐겁건 그렇지 않건 그저 날마다 개미처럼 열심히 출근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어느 날, 여름에서 가을로 바뀔 무렵, 아침에 눈을 뜨니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뉴스도 들었고, 평상시처럼 출근했다가는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지금은 월드컵대로를 비롯해서 시지 일대에 도로가 여럿 새로 생겨서 교통이 원활해졌지만, 그때는 달구벌대로 하나밖에 없었다. 출근시간이면 평소에도 담티고개쪽엔 늘 차들이 기어서 넘어갔다. 비가 오면 아예 멈춰서는 일이 벌어진다. 당시 학교 분위기에서 교사의 지각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에 늦게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출근이 걱정된 나는 바로 일어나서 아침밥도 안 먹고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빨리 학교에 가야지, 그 생각뿐이었다. 내 기억에 6시 좀 전에 버스를 탄 것 같다. 첫버스였는지도 몰랐다. 버스엔 나밖에 없었다. 버스를 타고나서 날씨는 더 나빠졌다. 바람은 점점 세게 불고 다니는 차는 없고, 가로수는 쓰러질 듯이 바람에 꺾이고. 전면과 양 옆의 유리창으로 바람이 휘몰아치는 음산한 풍경을 혼자 보면서 이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지금은 나다닐 때가 아니구나 싶었다. 중간에 내릴 수도 없고, 버스가 무사히 학교까지 갈 수 있을까 불안불안했다.
간신히 학교에 도착하고보니 교무실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나를 맞은 건 전화였다. 교무실 전화통이 울리고 있었다. 학교 가는 게 맞냐는 학부모 문의전화였다. 대구뉴스에 오늘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나왔다는 거다. 학교에서 알리기 전에 뉴스에 그 내용이 먼저 나와서 학부모들이 맞는지 확인하는 문의 전화였다. 지금처럼 학교에서 가정에 보내는 단체문자도 없고 뭔가 일사불란한 연락 체계가 없던 때였다.
얼마 안 있어 교무부장쌤 전화를 받았고, 학교 안 오는 게 맞다 하셨다. 교사도 출근 안해도 된다고. 이럴 수가! 한 시간 정도 나 혼자 학부모 전화를 받고나니 8시 가까워서 그 사실을 모르고 출발하신 몇 분이 학교에 도착하셨다. 나와 몇 분은 그날 아침, 전화를 받고 또 받았다. 끊으면 다음 전화가 바로 울리고, 또 울리고...... 집에 있었어야 했는데, 학교 못 갈까봐 걱정되어 새벽같이 나와 그 무시무시한 태풍 한복판을 뚫고 출근하다니.
그랬던 내가 딱 십년 후, 여름 어느날, 학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왜 출근 안 하냐고? 여름방학 지나 개학 첫날인데, 깜박 잊었던 거다. 도서실을 맡고 있어서 담임을 안 했던 유일한 해, 비담임이어서 개학날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날짜 세는 것도 잊고 집에서 책이나 보다가, 그날도 아침에 편안하게 커피 한 잔 하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 화장도 안 하고 학교로 뛰어갔다. 집 근처 학교라서 다행히 바로 출근했다.
십 년이 더 지난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 내일 학생은 10시 출근인데 그럼 교사도 10시 출근? 9시 정도까지? 교무실에서 몇몇 말이 오가다가 최종 결정이 교장실에서 도착했다. 교사는 정시 출근. 그러자 여기저기서 들리는 섭섭함. 내 마음은 이랬다. 뭐 걍 가지 뭐. 크게 좋은 일도 아쉬운 일도 없고 걍 하라면 하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렇게 산다.
그러노라니 문득 그리워진다. 미친 듯이 열심히 학교로 달려갔던 그 시절의 거대한 '착각'이. 열정은 착각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때는 대한민국 교육을 나 혼자 다하는 줄 알았다. 내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일을 한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만큼 진지하기도 했다.
지금은 안다. 내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를. 내가 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 또한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를. '교육'은 중요하고 누군가의 삶을 좌우하지만, 그건 한 사람이 경험하는 교육적 경험 전체가 그렇다는 것이고, 한 사람의 삶에서 내 역할은 천 분의 일도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애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사람과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그를 성장케 하는 교육적 경험은 정말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그 전체 경험 속에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차지하는 역할은 풀잎처럼 작다.
이렇게 지금의 나는 내가 처한 상황 전체를 볼 수 있고, 그 전체 속에서 내 존재의 보잘 것 없음도 안다. 살아가면서 겸손을 배웠고, 덕택에 삶이 한층 가벼워졌다. 학교를 다니는 일도 예전만큼 힘겹지는 않다. 그런데 이 저녁, 신규교사일 때의 그 말도 안 되는 '착각'이, 그 착각 때문에 짊어졌던 무거운 짐들이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태풍 마이삭이 내일 새벽에 대구를 통과한다는데, 나는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이십 년 전 그날의 태풍을 만나고 있다. 엄마는 지금처럼 할머니가 아니라 짱짱했고, 아빠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든든하게 회사를 다니고 계셨던 시절. 학교 가는 걸 신성한 의무처럼 여기며 휘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버스에 앉아 종종거리던 나. 그날 그 새벽의 모든 풍경이 영화보다 더 생생하게 한 장면 한 장면 내앞에 떠오른다. 눈가에 어리는 빗물 속에서.
2020. 9. 2. 수요일. 태풍 지나가기 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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