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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역전마을 인터뷰 2 - 여기가 제일 편하죠

by 릴라~ 2020. 11. 30.

**10월부터 경산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지역 스토리텔링 부분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총 11분을 인터뷰해서 글로 옮기는 작업인데 내가 쓴 글이라 기록으로 남겨둔다. 

 

 

여기가 제일 편하죠, 전00씨

 

감나무가 있는 집 

 

경산역 입구에서 철로를 따라 남쪽으로 역전마을에 들어서면 지나가던 걸음을 멈추게 하는 예쁜 집이 한 채 있다. 소박하지만 나무로 지어진 멋스러운 단층집이다. 집앞 마당에는 까치밥 몇 개를 매단 감나무가 그림처럼 서 있고 그 옆으로는 불 땐 흔적이 있는 아궁이가 정답게 고개를 내민다. ‘황보당’ 주인장 전00 씨의 집이다. 십 년 전에 남편 분이 이 집을 직접 지었다 한다. 집안에도 시골집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손수 짜맞춘 원목식탁이 분위기를 돋우고 베란다에는 감물로 색을 낸 커튼이 곱게 걸려 있다.

 

전00 씨는 11가구가 오손도손 모여 살던 청도 작은용방마을에서 태어났다. 운문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가족은 대구로 나왔고 전00 씨는 청도 동곡이 고향인 분과 결혼해서 스물다섯 때부터 경산에서 살았다. 장사는 생각도 못한 순진한 아가씨가 결혼하고 가게를 시작한 건 지인이 이사하며 넘긴 화장품 가게를 인수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엔 쑥스러워 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수익이 나니 그만둘 수가 없더란다. 주단학, 아모레, 피어리스, 드봉 등의 이름에 익숙해지며 칠팔 년 정도 화장품 가게를 하다가 친척이 금은방을 하는 모습을 보고 기술을 배워 금은방을 차린 지도 30년이 넘는다. 금은방 ‘황보당’은 역전네거리 도로변에 있다.

 

가게가 몽땅 털리다

 

금은방을 하며 전00 씨가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경산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 경산 시내 금은방 세 채가 나란히 도둑맞은 일이다. 그날 아침을 전문진 씨는 또렷이 기억한다. 10월이었다. 일요일 아침, 가게가 쉬는 날이라 집에 있는데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 새벽에 운동하던 사람이 금은방 문이 열린 모습을 보고 신고를 했다 한다. 경찰과 함께 금은방에 도착한 전00 씨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으셨단다. 가게 안에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진열대까지 통째로 사라졌다. 당시 CCTV는 없어도 셔터문만 건드려도 경보음이 울리는 보안시스템이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문을 열었을까 믿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피해 금액이 억 단위를 넘어갔다. 말 그대로 전재산이 사라진 셈이었다. 경찰이 지문 감식을 한다고 가게 전체에 색색의 무언가를 뿌렸지만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다.

 

전00 씨는 사는 집을 팔고 빚도 내고 해서 20년을 살던 역전마을을 떠나 집값이 좀 더 싼 영남대 부근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사셨다 한다. 부부가 마음이 잘 맞았다. 전00 씨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 남편 분을 만나고 싶으시단다. 큰 사고로 속상할 법도 하건만 남편 분은 사람만 안 다치면 된다고, 돈은 또 벌면 된다면서 의연한 모습을 보이셨다 한다. 전00 씨는 다시 금은방을 열었다. 부부가 놀러 한 번 안 가며 부지런히 벌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8년만에 역전마을로 돌아와 지금 사는 이 집, 감나무가 있는 집을 지었다. 남편 분이 건축 쪽 일을 하셨던지라 자재를 손수 들여와서 하나하나 직접 지은 집이다. 전00 씨는 역전마을이 제일 편하다 하신다. 다시 돌아왔을 때 여기가 고향이다 싶으셨단다.

 

다 내 것이 되지는 않아요

 

역전마을에 오래 살면서 어떤 추억이 생각나냐고 여쭤보니 전00 씨는 대번 봉사라고 말씀하신다. 여기 살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봉사한 것이 추억이자 보람이라고. 전문진 씨는 경산시 부녀회에서 십 년 넘게 활동하셨다. 노인체육대회, 새마을체육대회 등 행사가 있을 때 음식 준비, 보훈의 집 급식, 어르신들이나 열악한 환경에 놓인 분들을 위해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 등 누군가에게 따끈한 밥 한 그릇을 차려주는 봉사다. 귀찮고 힘들 법도 하건만 그게 그렇게 재미 있으셨다 한다. 봉사활동의 추억을 떠올릴 때면 전00 씨 얼굴에 갓 지은 밥만큼이나 따스하고 온화한 미소가 번진다. 봉사활동 공로로 새마을 여인상도 받았다.

 

도둑이 들어 가게를 몽땅 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전00 씨가 느낀 것이 있다. 내가 벌었어도 그게 다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깨달음이다. 가능하면 뭐든 다 내 것으로 움켜잡으려 하고 잘 살면 잘 살수록 욕심이 더 커지는 게 요즘 세태이다. 내가 땀흘려 얻은 것도 인연에 따라 다른 곳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 한 켠이 시원해졌다. 전00 씨가 살면서 몸소 체득한 지혜가 그 안에 담겨 있었고 그 어떤 유명한 격언보다 훨씬 삶에 위로와 격려를 주는 말씀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감사 인사를 드리는데 다음의 당부 말씀을 덧붙이신다. 황보당이 세들어 있는 건물 주인이 바로 옆에서 ‘국민이용소’를 운영하는 박00 씨인데 언제나 편하게 잘 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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